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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쉽고「얇게」쓴 마르크스 역사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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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우리는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는 모두 마르크스주의자들이다』라는 말이 있다. 일견 기이하게 들리는 이 주장은 현대사회과학 지식 중 그 학파와 상관없이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지 않고 부분적으로도 그의 주장을 흡수하지 않은 지식은 거의 없다는 의미다.
이 표현대로 마르크스는 그의 사상에 동의하든, 안하든간에 현대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상가중 일인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특히 현존 사회주의사회의「탈사회주의화」와 마르크스주의의 총체적 위기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그의 저작을 다시 한번 읽어보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제 마르크스의 저작들은 그 의미를 상실한「잊혀져야 할 고전」들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그들의 현재적 의미는 어떠한 것일까.
마르크스하면 으레 연상되는 것이『자본론』이지만『자본론』은 그 분량에 있어서나 난이도에 있어서 일반 독자의 접근이 어려운 책이기 때문에 마르크스 정치학 내지 역사학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얇은 정치 팸플릿『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을 권유할 만하다. 이 고전은 마르크스의 프랑스 혁명사 3부작 중 하나로 1848년 프랑스의 2월 혁명이 51년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보나파르트의 쿠데타를 통해 군사 독재 체제로 귀결되는 과정을 분석한 저술이다. 이 책은 특히 우연적 사건들의 연속인 것같이 보이는 역사의 전개를 어떻게 꿰뚫어보아 그 속에 내재한 의미와 본질을 과학적으로 파악해내느냐 하는 역사 분석 방법론과 우리의 문제와 밀접히 관련된 적실성, 즉 자본주의사회에서 국가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문제, 특히 제3세계와 한국에서 일상화 되어온 군사독재체제를 어떻게 인식해야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관련돼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현대사회에 유례없는 마르크스의「금서화」라는 한국적 특수성 덕분(?)에 필자가 이 고전을 처음 접할 수 있었던 것은 80년 미국 유학 시절이었다. 신문기자 시절 12·l2와 80년 광주의 비극을 접하고 왜 우리사회는 이 같은 비극을 반복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에 봉착, 유학길에 오른 필자에게 세계사적으로 최초의 근대적인 군사독재체제라고 할 수 있는 보나파르티즘에 대한 이 책의 분석은 많은 것을 새롭게 생각하게 해주었다.
이 책의 첫 구절, 즉『어디에선가 헤겔은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은 두번 반복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즉 그것이 첫번째는 비극으로, 두번째는 희극으로 반복된다는 것을』이라는 분석은 5·16쿠데타가「비극」이었다면 이미 비극을 넘어「희극」이라고 할만한 80년의 상황을 어느 의미에서는 적절히 상징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역사분석이라는 것이 지나치게 사관만 내세울 뿐 구체분석이 맞지 않는「이론재단주의」나 역으로 현상적 사건이나 인물에 함몰되어「긴호흡」의 구조적 맥락과 의미를 사장시키는 미시적 사건사 연구의 양 편향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 반면 이 고전은 역사 유물론이라는 사관에 충실하면서도 계급·계급분파·계층·정당·사회집단들간의 갈등과 투쟁이 어떻게 해서 2월 혁명을 쿠데타와 독재체제로 귀결시켰는가하는 역사의「하향과정」을 생동감 있게 추적함으로써 역사의 거시분석과 미시분석을 변증법적으로 통일시킨 역사(특히 동시대사)분석의 모델이라 하겠다. 또『인간이 그들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 그러나 그들이 항상 자신이 원하는 대로 역사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라는 유명한 이 책의 구절처럼 이 책은 역사 발전의 구조적 인과관계와 역사발전 주체로서의 민중 스스로가 역사를 만들어 가는 능동적 측면을 어떻게 총체적으로 파악할 것인가를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이유에서 이 책은「당시의 생동하는 역사를 이렇게 탁월하게 파악한 것이 사실상 유례가 없는 진실로 천재의 작품」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다음에 관심을 끄는 것은 보나파르티즘의 원인을 사회세력간 팽팽한 힘의 균형상태에 의해「모든 계급이 무력하고 한마디 말도 못한 채 총부리 앞에 무릎꿇을 수밖에 없었던」사회적 교착상태에서 찾고 있는데 이 같은 경우 자본가 계급은「독재냐, 무질서냐. 자본가계급은 당연히 독재를 선택한다」는 분석이다. 즉 보나파르티즘의 원인을「자유·평등·박애」를 내걸고 혁명을 주도했던 부르좌의 위선성에 대항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활성화와 편협한 자기이익에 혈안이 된 다양한 자본 분파간의 갈등으로 야기된 사회적 교착상태와 무질서로 파악함으로써 토착자본가 계급의 취약성으로 인한 사회적 교착상태의 구조화에서 제3세계에서 독재체제가 정상적 국가형태가 되는 원인을 찾으려는 일부 현대 정치이론의 이론적 초석을 제공해주고 있다.
자본주의적 국가에 대해서도 마르크스는 보나파르트 하에서「국가는 그 자신을 완전히 독립적으로 만든 것 같다」고 분석, 그 자율성에 주목하면서도 보나파르트가 보수적인 농민들의 지지를 받아 국민투표에 의해 지배를 정당화시킨 것과 관련해『국가권력은 허공에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보나파르트는 프랑스 사회에서 가장 수적으로 많은 계급인 분할지 농민계급을 대변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또 동시에『보나파르트는 모든 계급의 가부장적 시혜자로 보이고 싶으나 한쪽에서 빼앗지 않고는 다른 한쪽에 줄 수가 없었다』『그는 부르좌 질서를 수호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느꼈다. 부르좌 질서의 힘은 중간계급(부르좌)속에 있었고, 따라서 그는 자신을 중간계급의 대변자로 보고 그 같은 의미에서 법령을 내렸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 같은 분석은 자본주의 국가가 갖는 상대적 자율성과 이를 지지하는 계급적 지지기반, 그리고 그 객관적 기능이라는 일견 상호 모순적으로 보이는 국가분석의 제측면들을 어떻게 통일시켜 파악해야할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위의 분석들은 현존 사회주의의 위기에 따른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와는 별개로, 또 이들 분석에의 동의 여부와는 별개로, 계속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는 뛰어난 역사 및 정치분석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점은 그 물망같이 사회의 모든 제도 기구를 얽어매 모든 숨구멍을 질식시키게 하는 경악스러운 기생적 기구를 통해「사회의 가장 보편적 존재양식으로부터 개인적인 사적 생존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시민사회를 얽어매고 통제하고 조정하고 감독하며 교육시키는」보나파르트 국가에 대한 그의 신랄한 비판이 아이로니컬하게도 현존사회주의의 국가에 그대로 들어맞는 비판이라는 사실이다.
현존사회주의 체제들이 복합적 이유에 의해 마르크스가 꿈꾸었던「진정한 민주주의」로서의「사회주의적 민주주의」로부터 멀어져 국가가 만능적 기생체로「시민사회」위에 군림하는 사회로 변질되어 버림으로써 현재의 위기를 가져오게 된 것이 아닐까. 현존 사회주의의 위기를 바라보며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브뤼메르 18일』을 다시 한번 읽는 것은 색다른 의미가 있다 하겠다.【손호철<전남대 정외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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