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칸칸모리'에 살면 모든 가구가 한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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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고령화가 진행되는 일본에선 각자 프라이버시를 지키면서도 연령이 다른 여러 가구가 공동의 생활공간에서 가사(家事)를 돕는 생활 스타일이 주목받고 있다고 조선일보가 15일 보도했다. 바로 한 지붕 아래서 서로 모르는 가구가 독립된 주거공간에 살면서, 식당과 현관 등은 함께 사용하는 집합주택(collective house)인 '칸칸모리'다.

신문이 예로 든 12층 건물의 양로원 2.3층에 들어선 한 칸칸모리에는 모두 23가구 36명이 살고 있다. '대가족'의 구성은 어른이 32명(여자 24명, 남자 8명), 어린이가 4명. 젊은 부부 세 쌍과 두 모자(母子)가구도 포함됐다. 직업도 회사원.영화평론가.광고대리점 운영.대학원생 등 다양하다. 식사 준비와 장 보기, 집안 청소 등 가사는 어른 3명이 한 팀이 돼서 번갈아 맡는다.

한 60대 부부는 "공동 저녁 식사에 꼭 참석해야 한다는 의무는 없지만, 젊은이들과 어울릴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보육원 교사 히코사카 사나에(彦坂早苗.29)씨는 남편(30)과 상의 끝에 4년 전 이곳으로 옮겼다. 그는 "단독주택에 살 때는 이웃들과 관계도 없었고 아이들 키우는 데 고립감을 느꼈는데, 여기선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친하게 지내 부부가 맞벌이해도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칸칸모리 주민의 생활 수준은 도쿄 전체에서 중상층에 속한다. 가족 단위의 독립 공간(임대료 월7만 ̄17만엔) 외에 공용 시설로 부엌.채소밭.놀이터.컴퓨터 방.세탁실.어린이 놀이터.게스트 룸 등이 갖춰져 있다. 사적(私的) 공간을 유지하면서도, 서로 '이웃 이상'의 정(情)을 나누자는 취지다.

이런 주거 스타일은 일본에선 1995년 한신 대지진 이후 피해자용 부흥 주택에서 처음 소개됐고, 이후 일본 전체로 확대되고 있다. 친구를 만들어 노후를 즐겁게 보내고 싶은 노인들과, 어린이를 편하게 맡기고 맞벌이 생활을 계속하려는 부부들에게 인기가 높다.

주거 전문가인 '커뮤니티 네트워크 협회'의 사사키 도시코(佐佐木敏子)씨는 "집합주택은 노(老).장(壯).청(靑) 세대 간의 교류와 육아 지원이 가능한 독특한 시도"라면서 "이른바 '표준 세대(월급쟁이 남편과 전업주부, 아이 2명으로 구성된 가구)'가 무너지면서 이런 생활 스타일이 계속 관심을 끌고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 [digit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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