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노사평화 위한 노·사·정 역할 세미나 요지|노사 소모성 대립 이제 그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전노협 등 재야노동단체가 시국상황과 연계해 전개했던 5·18 연대파업투쟁이 한바탕 회오리를 일으키며 지나갔다. 노동자·기업주·노동당국은 일단 한고비를 넘겼다는 점에서 긴장감을 풀고 한숨 돌리는 듯한 분위기지만 사태가 그리 간단치만은 않은 것 같다. 재야 노동계는 모처럼 전 재야 세력의 역량이 결집된 마당에 계속 공세적 입장을 취하려할 것이고 노동당국은 파업 주도·선동세력에 대해 미뤄뒀던 사법처리에 착수할 움직임이다. 게다가 임투는 아직 초기 단계이며 살인적인 물가고, 전세값 폭등과 싸우고 있는 일반 노동자들은 정부의 강력한 한자리수 임금 인상 지침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국민 경제사회협의회(공동의장 김윤환)는 최근 이 같은 상황에서「90년대 노사평화를 위한 노·사·정의 역할」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어 주목을 끌었다. 참석자들은 이 자리에서 한결같이『노·사·정·이 모두 맡은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서 자신들의 입장만 목소리 높여 주장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노·사·정이 가야할 정도를 제시했다.<정리=김동균 기자>
◇노조의 역할(김수곤 경희대경영학과 교수)=노조는 우선 경제적 조합주의에 충실해야 한다. 우리나라와 같은 정치현실에서 노조가 정치 단체화 하거나 그렇게 이용당할 구실과 유혹은 항상 있게 마련이지만 정치적 압력 단체로서의 역할에서 더 나아가서는 안된다.
노조의 정치활동이 정당화되고 이것이 극한적 투쟁방법에 호소하게 될 때 노조는 혁명의 도구로까지 전락할 수 있다. 노조는 어디까지나 근본적 설립목적인 실용주의적 경제조합 노선에서 이탈해서는 안된다.
노조 집행부는 어용성 시비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고 소신껏 조합활동을 꾸려나가야 한다. 노조 집행부는 노조내 소위「실세그룹」과의 선명성 경쟁으로 인해 합리적인 요구와 타협을 외면하는 수가 많다. 이로 인한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는 집행부 구성후 1년간은 불신임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등 법제도의 개선을 고려해 볼만하며 조합원들도 경제적 이슈에는 관심이 없고 일신의 정치적 출세도구로 노조를 이용하려는 사람을 자신들의 대표로 뽑는 일이 없도록 유의해야 한다.
우리나라 노조는 이밖에도 ▲조합내 민주화를 이루고 집단이기주의의 속성을 버려야하며 ▲직업훈련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하고 ▲산재·직업병·공해예방에 신경을 쓰는 등 내실을 다져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부의 역할(박세일 서울대 법대교수)=정부는 노와 사의 중간 입장에서 조정·통제기능을 수행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의 공정성과 효율성에 대한 노사의 신뢰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의 상황은 그렇지가 못한 것 같다. 정부정책은 중립성과 전문성이 결여된 채 일관성을 잃고있어 노사양측에 불신과 피해의식만 높이고 있다.
정부는 우선 현재의 주택·토지정책과 한자리 수 임금인상정책을 재고해 보아야한다. 도시근로자의 37%가 전세, 20%가 월세로 살고있고 집값·땅값은 터무니없이 뛰고 있는 상황에서 주택 2백만호 건설 등 장기적이고 원론적인 정책만 내놓고 마냥 기다리라고 해서는 안된다.
또 우리나라의 임금상승률이 높은 것은 상당부분 인력수급의 불균형으로 인한 노동 시장적 요인 때문인데도 한자리 수 임금정책만 고집, 임금안정화에 기여도 못하면서 임금체계만 왜곡시키고 있다. 이에 대한 인식전환이 시급하다.
또 노동행정이 일원화되고 노동정책의 중립성·전문성이 제고되어야 한다. 노동행정과 정책이 경제개발행정(상공부·경제기획원 등)에 종속되거나 불끄기식 치안행정(검찰 등)에 좌우되어서는 안된다.
정부는 또「강한 노동」과「강한 경영」이 있어야만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다는 점을 명심, 이를 위해 도움을 주어야 한다.
「강한 노동」을 위해서는 ▲제도권인 노총과 비제도권인 전노협 등으로 분열되어있는 노조운동의 통일 ▲노조 지도부의 대표성과 민주적 리더십강화 ▲중앙집권적 단체교섭구조 확립,「강한 경영」을 위해서는 ▲기업 과보호적 노동행정관행 철폐 ▲경영의 독자성과 전문성제고 ▲정경분리를 통해 건전하고 도덕적인 기업상 정립 등이 요구된다.
◇사용자의 역할(김식현 서울대 경영대교수)=우리나라기업은 이제까지 저임금·초과 근무 등 노동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성장해 왔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또 이 같은 조건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 조직의 확산을 줄곧 경계하고 통제해 왔음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내적으로는 민주화, 대외적으로는 개방화의 물결이 높아짐에 따라 더 이상 이런 방식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기업은 최소한 다음의 두가지 사항을 명심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 정치의 민주화에 적극 지원을 해야한다. 정치기관과 행정기관이 정당한 경쟁의 룰을 만들고 그것을 공정하게 시행하게끔 해야 기업들도 올바른 기업윤리에 바탕을 둔 경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노조를 기업 경영에 꼭 필요한 동반자로 인식, 그에 걸맞게 상대하고 교섭해야 한다. 노조를 일정한 시기에 단체 교섭만 하면 되는 상대로만 여기지 말고 평소 기업의 사정과 정보를 알리고 협조를 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강력하고 건전한 노조의 존재는 기업이 소아적 이기심으로 기업경영에 임하는 것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근로자들의 주인의식을 고취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근로자들의 평소 고충관리에 철저를 기해 근로자들의 불만이 소리 없이 쌓여 어느 사이에 높고 두터운 불신의 벽으로 되지 않도록 유의해야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