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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진단] 단독개업은 ‘멀고도 험난한 길’ (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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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 하늘의 별이 된 ‘로펌 변호사’
■ 사무실 유지비 월 평균 1,000만 원 마련 급급
■ 변호사 세계도 심한 양극화
■ 브로커 유혹 뿌리치기 어려운 구조가 문제
■ 대기업 사내 변호사제도 늘고 채용도 급증

우리 사회의 변화 속도는 가히 초고속이다. 직업의 세계도 변화의 물결로 요동치고 있다. 전통적인 우리 사회 主流 직업의 현재는 과거와 현저히 달라졌다. 그 외양과 속내를 샅샅이 해부하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그 첫 번째, 변호사!


“내가 이러고 있을 때인가?”

T(40) 변호사는 가슴까지 답답해졌다. 검사로 근무하던 2006년 9월 어느 날의 일이다. 날마다 일에 파묻혀 있다 모처럼 집에서 쉬어 보는 휴일 오전이었다. 느지막하게 일어났지만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머릿속은 마치 실타래가 제멋대로 뒤엉켜 있는 느낌이었다. 검사를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 밤새 뒤척인 까닭이다.

고민의 근원은 돈 문제였다. T검사의 월급은 300만 원대. 검사 경력 10년이 다 돼가지만 그 수준이었다. 가족 생활비로도 빠듯했다. 중학생인 딸과 초등학교 고학년인 아이 둘이 크는 만큼 과외비가 늘었다. 가계부에는 점차 빨간색이 짙어졌다.

그는 아직 집이 없다. 법원·검찰청이 가까운 서울 서초동 32평형 아파트를 보증금 2억5,000만 원에 전세를 얻어 살고 있다. 다 알려진 대로 최근 몇 년 동안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검사 월급으로는 지금 사는 동네에서 도저히 집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절망스럽다.

T검사는 그로부터 한 달쯤 뒤인 10월 중순께 결국 옷을 벗었다. 돈 걱정에서 해방되려면 그 길밖에 없었다. 그리고 직전까지 근무하던 서울 시내 한 지원 앞에 곧 변호사 간판을 내걸었다. 변호사로 성공하려면 유능한 사무장이 꼭 필요하다는 충고를 여러 선배 변호사로부터 들었지만 변호사 업계에서 소문난 ‘베테랑’은 쓰지 못했다. 월급이 예상보다 ‘셌기’ 때문이었다.

▶8,400여 명에 달하는 한국 변호사들의 심장부인 서울 서초동 대한변호사협회.

2006년 11월 초 ‘영업 준비’는 그런대로 마쳤지만 여전히 걱정이 태산이다. 이제부터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한 달에 최소 2,000만 원은 벌어야 한다. 20평대 사무실 월세에 사무장과 여직원 인건비, 기타 잡비를 합해 한 달 사무실 유지비만 대략 1,000만 원 선이다. 생활비와 자신의 용돈까지 합치면 또 그만한 액수의 돈이 필요하다.

개업 후 1주일여 동안 T변호사는 그야말로 책상을 지키고 앉아 파리만 날렸다. 주변의 선배 변호사들이 이런 모습을 보기가 안 됐던지 가끔 위로 겸 덕담(?)을 건넨다. 대체로 “검사 출신이어서 ‘전관예우’를 기대하는 의뢰인이 적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조금 겁나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전관예우도 같이 근무하는 검사가 남아 있을 때 통한다. 그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 평생 먹고살 돈을 벌어야 한다. 그것도 현직 판·검사가 뒤따라 옷을 벗지 않았을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T변호사는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 관할 법원과 검찰에서 부장급 이상 판사 1명과 검사 2명이 ‘더 이상 승진을 기대하기 어려워’ 옷을 벗는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어서다. 그것이 현실화하면 평검사 출신인 T변호사는 그들에게 ‘끗발’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검사 옷 벗어던진 T변호사의 고뇌

T변호사는 사건 수임을 위해 사무장의 조언을 얻어 직접 발로 뛰고 있다. 명색이 범죄를 다스리던 검사 출신으로서 ‘브로커 활용’이라는 불법은 저지르고 싶지 않아서다. 개업 후 한 달여 동안 브로커로 보이는 네댓 명이 제 발로 찾아왔지만 일단은 다 물리쳤다. 자신의 능력으로 버틸 때까지는 버텨 보자는 심산이다.

그러나 짧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결코 만만찮은’ 변호사시장의 냉엄한 현실을 깨닫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브로커의 유혹에 넘어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점점 커지고 있다. T변호사는 지금 검사 시절보다 더 깊은 고뇌의 바다에 빠져 있다.

T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5년 전에만 변호사 개업을 했어도 현재 하고 있는 고민은 거의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막상 세상 밖으로 나와 보니 청사 안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변호사를 해서 돈을 번다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기왕 벗을 검사 옷이었다면 왜 이렇게 늦었는지 지금은 후회가 된다. 한마디로 현재 우리나라 변호사시장은 수요와 공급 모두 포화 상태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인근 지하철 교대역 4거리를 중심으로 변호사 사무실이 밀집해 있다. 사진 속의 변호사 이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

그의 말대로 우리나라의 변호사는 최근 들어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현재 한국의 변호사는 총 8,402명이다. 2006년 6월9일 현재 대한변호사협회에 회원으로 등록된 수가 그것이다. 국내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려면 반드시 대한변협에 회원 등록을 해야 하므로 국내 전체 변호사 현황이라고 봐도 좋다.

대부분 개인회원(7,623명)이고 준회원(779명)이 이 안에 포함돼 있다. 준회원은 변호사 자격은 있으나 일시 휴업 중이거나 판·검사 등 공직에 근무 중이어서 변호사 업무를 수행하지 않는 경우다.

또 실제 변호사 활동을 하는 개인회원 중에는 법무법인 구성원(2,255명)이나 소속 변호사(951명)로, 또는 공증·합동법률사무소 구성원(306명)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46%로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 그 나머지(4,111명)가 혼자 사무실을 운영하는 ‘단독개업’ 또는 ‘고용’ 형태로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다.

변호사의 급증은 2001년 시작된 사법시험 합격자 1,000명 시대와 함께 본격화했다. 2006년 994명을 포함해 지난 6년 동안 사시 합격자만 5,899명에 달한다. 2년 동안의 사법연수원 수료 후 곧바로 변호사 활동을 시작한 수가 해마다 400~500명에 이른다. 한마디로 최근 들어 변호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변호사가 많다 보니 진로를 놓고 사법연수원 시절부터 경쟁이 시작된다. 진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성적이다. 특히 사법시험 성적에 2학기 기말고사 성적, 4학기 기말고사 성적을 합산한 결과가 사법연수원생들의 진로를 결정한다.

‘단독개업 싫어!’ 예비 변호사 Q씨의 도전

사법연수원 김종민(부장검사) 교수는 최근 수료생들의 진로 선택에 대한 새로운 경향을 이렇게 설명했다.

“공공기관·기업체와 같은 비법조 직역에 대한 진출자와 진출 기관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대형 로펌으로 진로를 선택하는 성적 상위권자가 늘어난 것도 달라진 현상이다. 2007년 2월 제대를 앞둔 군 법무관들도 대부분 판·검사를 지망했던 과거 경향과 달리 대형 로펌 진출을 선호하고 있다. 최근 사법시험 합격자가 늘면서 법률 전문가 저변이 확대되고, 그 결과 법률 서비스 영역이 다변화하는 현상의 반영으로 본다.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변화로 생각한다.”

2007년 2월 사법연수원 수료를 앞둔 예비 변호사 Q(여·26)씨. 그가 요즘 벌이고 있는 취업 도전기는 신참 변호사들의 달라진 생각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는 2006년 10월 말 사법연수원 4학기 기말시험이 끝난 후 자신의 성적이 판·검사를 지원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신입 변호사를 뽑는 이른바 ‘대형’ 법무법인 13곳을 취업 목표로 삼아 모두 지원서를 냈다. “일을 많이 배울 수 있는 큰 로펌에 가는 것이 길게 볼 때 변호사로서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12월 중순까지 모두 7곳으로부터 ‘거절’ 응답을 이메일로 받았다. 그때까지 단 1곳에서 면접시험을 봤지만 취업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그가 지원했던 나머지 법무법인에서는 지금껏 아무런 연락이 없어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성적이 로펌에서 원하는 기준에 못 미치고, 영어도 내세울 만큼 능통하지 못한 보통 수준이어서 불합격한 것 같다”고 나름대로 진단하고 있다.

그 뒤로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회계법인을 상대로 취업 도전을 하고 있다. 그는 2006년 12월 말부터 오는 3월 말 사이에 변호사를 뽑는 공공기관 취업에 더 큰 희망을 걸고 있다. 사법연수원생들 사이에서는 공공기관 중에서는 헌법재판소·감사원·재정경제부·금융감독원·공정거래위원회 등이 인기 직장이다. “일의 전문성이 높고, 어디에서나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으며, 지방 근무가 없다는 점이 매력으로 꼽힌다”고 그는 말했다.

단독개업에 대해 그는 “지금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경험이 부족해 성공에 자신이 없는데다 아직 더 배워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그것을 “지금 생각으로는 가능하다면 가장 피하고 싶은 진로”로 여긴다.

변호사의 활동 형태는 크게 단독개업·법무법인·고용 등으로 나뉜다. ‘단독개업’은 말 그대로 변호사 혼자 사무실을 열고 혼자 활동하는 것이다. 흔히 로펌으로 불리는 ‘법무법인’은 말 그대로 회사다. 소속 변호사는 회사 내 지위와 하는 일에 따라 일정한 보수를 받고 회사를 위해 일한다.

‘고용’은 단독개업 변호사로부터 월급을 받는 변호사로, 업계에서는 흔히 ‘새끼 변호사’로 불린다. 합동법률사무소는 여러 명의 변호사가 비용 절감, 정보 공유 등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사무실을 함께 쓰는 것일 뿐 변호사들의 활동은 단독개업과 다를 바 없다.

하늘의 별이 된 로펌 변호사

Q씨의 도전기에서도 나타나듯 요즘 변호사들에게 로펌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사법연수원 수료자 중 2006년(35기) 181명, 2005년(34기)에는 178명이 로펌으로 향했다. 특히 2006년에는 단독개업보다 69명이 많은 역전 현상을 나타내 그 인기를 실감케 하고 있다. 이는 젊은 변호사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이른바 전관예우를 받을 위치에 있는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은 줄줄이 로펌행을 택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변호사가 20명 이상인 16개 대형 로펌에 소속된 판·검사 출신 변호사는 무려 347명에 이른다. 그중 국내 최대 법률사무소로 꼽히는 ‘김&장’에만 가장 많은 79명이 포진해 있고, 화우(45명)·태평양(34명)·바른(34명)이 그 뒤를 이었다. 이는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2006년 11월21일 발표한 ‘로펌의 지배와 사법감시’ 자료에서 드러난 것이다.

이에 따르면 로펌행 판·검사 출신 변호사는 16명(2004년), 44명(2005년), 48명(2006년 8월 현재) 등으로 해를 거듭하며 급증해 최근 5년 사이에만 161명에 달했다. 그들의 재조 시절 직급도 무척 화려한 편이다. 법관 출신 변호사 98명 중 대법관급 이상 8명, 법원장급 12명, 고법 부장급 5명, 지법 부장급 31명이었고 일반 판사급은 41명이었다. 검사 출신 변호사도 마찬가지로 42명 중 검사장급 이상 13명, 고등검사급 25명, 평검사급 26명 등으로 집계됐다.

한마디로 ‘잘나가는 변호사’는 대부분 로펌에 모여 있는 셈이다. 로펌에서 그들에 대한 예우는 연봉으로 따져 6억~27억 원 수준으로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2006년 국회 법사위원인 김동철(열린우리당 광주 광산) 의원이 국정감사 과정에서 공개한 것이다. 그들의 월평균 급여는 구체적으로 대법관 출신은 8,000만~2억 원, 법원장급 7,000여 만 원, 부장판사급 6,500여 만 원, 일반 판사급 5,000여 만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대체 로펌이 어떤 곳이기에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한국에서 성공적인 로펌 변호사로서 한 전형을 보여주는 법무법인 태평양의 이형석(40) 변호사를 통해 그 내부를 한번 들여다보자.

▶예비 법조인들의 산실인 경기도 일산 사법연수원. 2001년 사시 합격자 1,000명 시대 이후 1년에 400~500명의 변호사가 양산되고 있다.

그는 현재 태평양 내에서 ‘구성원(파트너) 변호사’다. 태평양에서 구성원은 회사 내 거의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소득도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거해 나눠 갖는 로펌의 주인이다. 반면 ‘소속(어소시에이트) 변호사’는 구성원 변호사에게 고용된 월급쟁이다.

그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이듬해인 1988년 사법시험(제31회)에 합격했다. 공군 법무관을 제대하던 해인 1995년 태평양에 입사했다. 그는 애초에 판사를 희망했고, 성적도 판사로 임용될 수 있을 만큼 우수했다. 그러나 그는 공군 법무관으로 근무하면서 생각이 바뀌어 진로를 로펌으로 급선회했다. 그때 ‘바뀐 생각’을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법조 직업도 전문가가 돼야 살아남을 수 있는데, 로펌으로 가야 내가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사회의 지배체제가 관에서 민으로 전환하는 현실에서 로펌 변호사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업무와 교육으로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방법으로 여겨졌다. 태평양은 판·검사로 임용될 수 있는 성적과 능력을 요구하는데, 그 관문을 통과해 입사했다.”

사내 변호사도 인기 짱!

태평양에는 현재 업무영역별로 20개 팀이 있다. 입사 1년차와 2년차 때 자신이 원하는 2개 부서를 경험하게 한 후 자신의 전문 영역을 결정하도록 한다. 그 역시 그 과정을 거쳐 기업 전문가로 성장해 기업 일반, 기업 인수합병 분야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그는 또 태평양의 해외연수제도를 한껏 활용해 2001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 기회에 그는 미 캘리포니아주 웨스턴대 대학원에서 법학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동시에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따내 전문성을 높였다.

“로펌에서 성공하려면 업무 능력이 뛰어나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태평양에서는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일을 잘해야 한다. 로펌이 윤리나 애국심을 저버리고 돈만 좇는다는 비판이 있지만, 클라이언트의 정당한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태평양에서 업무는 혼자가 아니라 팀을 이뤄 추진한다. 그래서 태평양에서는 내부 구성원 간 ‘인화’를 중시한다. 그리고 구성원 변호사가 되려면 소속 변호사의 업무 능력 제고를 위해 교육할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로펌은 업무 강도가 높기로도 유명하다. 이 변호사는 태평양을 예로 들어 “밤 12시를 넘기는 것이 다반사일 만큼 일이 많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가정에 소홀하지 않도록 배려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대형 로펌이 변호사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이유를 이 변호사의 말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최근 들어 변호사의 기업체 진출 또한 급속히 늘어나는 추세다. 사내 변호사제도가 그것이다. 사내 변호사는 기업체에서 직원으로 상근하는 변호사를 말한다. 사내 변호사제도는 국내에서는 삼성그룹이 1990년대 말에 처음 도입했고, 그 영향으로 2000년대 들어 여러 기업체에서 경쟁적으로 이 제도를 받아들였다는 것이 변호사 사회의 정설이다.

사내 변호사는 법률만능사회인 미국에서 발달한 제도다. 미국 씨티그룹은 1,500여 명, 제너럴일렉트릭(GE)은 1,000여 명에 이를 만큼 미국에서는 사내 변호사제도가 거의 일반화돼 있다. 미국사회에서는 사내 변호사가 ‘회사 권리 보호의 최후 보루’라는 인식이 강하고 그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국내 기업체에서도 법무실·법무팀·법제팀 등의 이름으로 사내 변호사 조직을 공식적으로 설치·운영하는 것이 낯설지 않은 현상이 됐다.

물론 삼성그룹을 비롯한 사내 변호사의 주력은 판·검사를 역임한 이른바 재조(在曹) 출신들이다. 이종왕 법률고문 겸 법무실장으로 대표되는 삼성그룹 법무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1999년 2월 사법연수원 수료자(28기)를 대상으로 처음 공채를 실시해 사내 변호사 7명을 뽑은 곳도 삼성그룹이었다. 그 이후 삼성그룹은 연수원 수료 변호사를 한 해도 거르지 않고 2~9명씩 뽑고 있다.

사법연수원 수료자 중 기업체 진출자가 35기(2006년 2월 수료)만 하더라도 895명 중 총 47명에 이른다. 사법연수원 집계에 따르면 기업체 진출자가 2002년 2월 수료생인 31기 때는 17명이었지만 25명(32기), 38명(33기), 52명(34기) 등 해마다 단위가 달라질 만큼 많이 증가하고 있다. 진출 기업체도 13개(31기), 15개(32기), 23개(33기), 41개(34기), 33개(35기) 등으로 대폭 확산하는 추세는 마찬가지다.

이 통계에서 보듯 사내 변호사제도가 진로를 고민하던 신참 변호사들에게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변호사들은 자신들의 활동 무대가 기업체로까지 넓어졌다는 점에서 이 현상을 ‘직역 확대’로 받아들이고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것은 분명 변호사 사회의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다.

기업체 입장에서는 “투명경영 시대에 법률을 잘 몰라 회사가 떠안지 않아도 될 부담을 사전에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예방 강화 차원에서 사내 변호사를 받아들이는 데 매우 적극적이다. 과거 기업의 변호사 활용은 고문 변호사나 로펌 변호사들에게 사건이 발생한 후 뒤처리를 위임하는 수준에 그쳤다.

사내 변호사는 단순히 각종 수사나 소송에 대응하는 송무 업무를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CEO가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법률적 조언자’ 역할을 하거나 핵심 사업의 경우 추진 초기 단계부터 관여해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 사내 변호사들의 주장이다.

한화그룹 구조조정본부 정상식 변호사는 사내 변호사의 임무를 “회사의 제반 경영과 관련한 법적 위험을 방지하거나 최소화하고, 상업적 기회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정리했다.

“단순한 법률 서비스는 외부 변호사들이 더 잘할 수 있다. 그러나 사내 변호사는 소속 기업의 일반 현황과 생리 등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훨씬 효율적이고 구체적인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이다.”

변호사에 대한 기업체의 대우는 판·검사 경험 유무, 변호사 경력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기업체의 변호사 대우는 그 전문성을 인정해 대체로 후한 편이다. 갓 연수원을 마친 변호사도 대기업에 입사하면 최소한 과장 대우는 받는다. 앞에서 말한 정상식 변호사는 2005년 9월 한화그룹에 입사해 현재 직급이 상무이사다. 1993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정 변호사는 1996년부터 만 10년간 검사로 근무한 경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계속>

윤석진 월간중앙 기자 [gra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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