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사라의KISSABOOK] "아빠가 왜 필요해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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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노는 데 정신이 팔려 해가 꼴딱 넘어가도 모르거나, 창피한 성적표에 부모님 도장을 받아와야 할 때면 옛날 아이들은 아버지한테 혼날까봐 전전긍긍했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의 허락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지체 없이 엄마한테 달려간다.

"도대체 아빠가 왜 필요한 거예요?" "아빠들은 돈을 번단다." "우리 집 돈은 전부 엄마가 버는 걸요."

"아빠는 운전을 하지." "울 엄마도 할 수 있어요."

"아빠는 고장 난 물건을 고친단다." "그건 엄마도 할 수 있다니까요."

랑힐 닐스툰의 '아빠가 길을 잃었어요'(비룡소)에 나오는 가슴 뜨끔한 대목이다. 행글라이더도 타고, 자동차 경주도 하고, 사막까지 헤매다니다가 간신히 자기 자리를 찾아 온 동화 속의 아빠.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설 자리를 잃고 위축된 현대 아빠들의 서글픈 모습은 아닐까.

아빠 부재의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은 '권위'에 대해 알지 못한다. 세상에는 부정적인 의미의 권위주의뿐 아니라 질서를 잡아주는 건전한 권위도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아빠의 존재 가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는 아이와 함께 오늘 강정규의 '다섯시 반에 멈춘 시계'(문원)를 읽어보자.

아무나 손목시계를 찰 수 없던 시절, 인규는 경호의 손목시계가 부러워 빌려 찬다. 그만 시계는 재래식 변소에 빠지고, 인규는 시계를 빼돌렸다는 누명을 쓴다. 억울해서 병이 난 아들을 보다 못한 아버지는 똥지게를 지고 나간다. 시계를 찾을 때까지 몇 날 며칠이고 똥을 퍼내는 우직한 아버지. 웃음이 날 것 같은데 코 끝이 찡한 건 웬일일까. 우리 모두의 내밀한 기억 한 편에도, 인규가 어른이 되도록 간직한 고장난 시계가 하나씩 숨어 있다. 그런 든든한 아버지의 사랑으로 아이들은 뼈가 굵어가는 것이다.

윌리엄 암스트롱의 '아버지의 남포등'(소년한길)에는 아들이 비루한 삶을 딛고 아름답게 성장해 갈 수 있는 원천이 돼준 아버지가 등장한다. 가족을 먹이기 위해 도둑이 된 아버지. 감옥에서 간신히 풀려나 쓸쓸하게 죽어간 아버지에게 아이는 속삭인다. "애쓰셨어요. 애쓰셨어요. 아버지."

자식들 입에 넣을 세 끼 양식을 벌기 위해 고단한 삶을 살다 간 남루한 시절의 이름 없는 아버지들. 사랑한다는 달콤한 말이 없기에, 부성은 더욱 깊은 울림으로 남는 걸지 모르겠다. 대상연령은 아직 아빠에게 한 번도 사랑한다고 말한 적 없는 12세 이상의 어린이와 디딜 자리를 잃어버린 고단한 아빠, 그 자리를 채우느라 고달픈 엄마들.

임사라<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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