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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에디터칼럼

가진 자를 궁지로 몰았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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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어느 날 그는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험담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람을 부려 먹고 차별대우한다는 것이었다. 열심히 일하는 장씨와 손재주가 좋은 나씨에게 새경을 좀 더 준 것을 놓고 하는 소리였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원칙을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성실함과 남다른 기술로 자신에게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는 두 사람에게 돈을 더 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 부자는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불평이 사그라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상황은 더 악화돼 갔다. 일부는 최 부자의 흠을 캐고 다니기 시작했다. 돈만 아는 그가 시주 왔던 스님을 쫓아버린 적이 있으며, 심지어 그가 젊었을 적 동네 처녀를 겁탈하려 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최 부자는 마음이 크게 상했다. 근거 없는 소문이 퍼지면서 밤잠을 설치는 경우도 늘어났다. 고민하던 그는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짓던 농사를 절반으로 줄였다. 그래도 먹고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일하던 사람도 당연히 그만큼 줄였다.

최 부자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싫어 저잣거리나 주막에 가는 것도 삼갔다. 대신 다른 마을로 구경을 다녔으며, 그 길에 필요한 물건도 사왔다. 마을 상인들은 매상이 줄었다며 울상을 짓기 시작했다. 인력거꾼도 벌이가 전 같지 않다고 했고, 주막집도 마찬가지였다. 최 부자를 궁지에 몰았더니 그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타격을 받는 엉뚱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21세기에 들어섰는 데도 비슷한 일이 재현됐다. 부자들을 백안시하는 풍토가 번졌다. 좋은 집에 살고 비싼 차를 타는 것이 부모 잘 만난 덕이고, 그들의 부(富)는 깨끗하지도 않다고 손가락질했다. 일군의 무리들은 "가진 자들을 흔들어대야 못 가진 사람들의 형편이 나아진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킨다며 특별히 서울 강남 일부 지역의 아파트를 겨냥했다. '세금 폭탄'을 비롯한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그것이 보통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덜어주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집값 불안의 확대재생산이었다. 강남 아파트값을 잡은 게 아니라 다른 지역 아파트 가격까지 끌어올린 것이었다. 이들은 실패를 덮기 위해 무리수를 거듭 뒀다. 불과 보름 전에도 스스로 말이 안 된다고 했던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정책을 전면적으로 밀어붙였다.

가진 자들은 점점 그들로부터 등을 돌려버렸다. 유학 보낸 자식도 볼 겸 해외로 자주 놀러 나갔다. 골프도 거기서 쳤다. 국내 백화점에서 쓸 돈은 외국 공항의 면세점을 이용했다. 골프도 쇼핑도 그게 더 싸기도 했으니 일거양득이었다. 그 결과 해외에서 지출된 돈은 매달 신기록을 세웠다.

국내에서 돌 돈이 해외로 빠져나갔으니 내수 경기가 시들해진 건 당연했다. 음식점도, 택시도, 중소업체도 장사가 안 돼 죽을 맛이라고 했다. 경기가 나빠지자 기업들은 신규 채용을 멈추고 기존 직원도 줄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늘 색안경을 끼고 기업을 봤다. 돈을 버는 기업이 애국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몰랐거나 부정했다. 돈을 벌어 세금을 잘 내는 것이 첫째 애국이고, 번 돈으로 공장을 확장해 일자리를 만드는 게 또 다른 애국인 데도 말이다. 그 결과 젊은 실업자들이 발에 차일 정도가 됐다. 가진 자를 공격했더니 엉뚱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또 벌어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오늘도 우리는 못 가진 당신을 위해 열심히 애쓰고 있습니다"고 떠들고 다닌다.

심상복 국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