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북한대표 12년 "최고 골잡이"|국제 경기 120회 출전 72골 기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우리민족의 국기나 다름없는 축구에서 분단 46년만에 처음으로 남북 단일팀인 코리아청소년축구팀이 탄생, 세계무대에 첫선을 보이게 된다.
7천만 겨레의 온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 코리아 청소년 축구팀의 사령탑을 맡게 된 안세욱(43·북측·사진) 감독은 과연 어떤 인물일까.
남한에서는 축구인들조차 안 감독을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으나 북한에서 안 감독의 존재는「아시아표범」으로 명성을 떨치던 이회택 포철 감독과 같다.
북한에서는 안 감독이 66년 런던월드컵대회에서 세계축구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던 박두익(현 이명수 체육단부단장) 이후 가장 명성을 떨친 축구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또 안 감독 집안은 스포츠가족이어서 더욱 유명하다.
안 감독의 바로 윗형인 안세복씨(48·현4·25체육단 여자축구팀감독)도 66년 런던 월드컵축구대회에서 GK로 활약했으며 부인 이복성씨(42)도 국가대표선수는 못했지만 배구선수 출신이다.
안 감독의 세 아들 모두 현역선수다. 큰아들 영빈(18)은 기관차팀의 축구선수이며 둘째 영일(16)은 피겨스케이팅 선수이고 막내 영무(11)도 국민학교 축구선수.
안 감독이 축구를 시작한 것은 형의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워낙 소질이 뛰어나 학교지도교사의 권유에 따른 것.
중학교 때까지 평범한 학생이었지만 체육활동이 뛰어났던 안 감독은 고등학교에 전학한 64년부터 축구를 뒤늦게 시작했다.
그러나 타고난 재질과 끈기 있는 노력으로 기량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 68년에는 청소년대표팀의 주전 골게터로 부상했으며 69년부터 국가대표로 뽑혀 80년5월 현역에서 은퇴할 때까지 북한의 최고골잡이로 화려한 선수생활을 거쳤다.
74년 제7회 아시안게임(이란 테헤란) 에서는 이회택 감독과, 78년 제8회 아시안게임(태국 방콕)에서는 차범근 감독과 각각 남북대결을 펼치기도 한 안 감독은 12년간의 대표선수 활약 기간 동안 국제대회 1백20게임에 출전, 72골을 터뜨려 북한선수 중 가장 많은 국제경기참가와 함께 최다골의 기록을 갖고있다.
72년 4·25체육단 축구팀에 입단한 안 감독은 주 공격수로 맹활약했으며 80년10월부터 소속팀의 지도원(코치)을 맡아 지도자 길에 나섰다.
4·25팀을 북한최강으로 이끈 안 감독은 지난해 4월부터 청소년대표팀 감독을 맡아 세계선수권대회 출전 티킷을 따냈고 이번에 구성된 코리아 팀의 감독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된 것이다.
안 감독은 지난 74년 축구에 대한 공로로 국가훈장을 받아「영웅체육인」이 되었으며 55세까지 월80원(보통 회사원의 월봉이 1백50원)의 연금을 받게 되었다.
북한 축구인들은 안 감독을『김정일 비서가 직접 불러 격려한 몇 안되는 체육인중 한사람』이라면서 앞으로 북한축구는 안 감독이 이끌게 될 것이라고 설명, 그의 위치를 단적으로 표현했다.<임병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