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개헌, 대통령 힘빼기… 여론은 글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한나라당 지도부와 핵심 중진들이 개헌 카드를 꺼냈다. 노무현 대통령의 힘을 빼기 위해 내년 4월 총선 전에 현행 대통령 중심제를 분권형 대통령제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국민투표가 盧대통령식의 재신임을 묻는 방법이라면 개헌은 한나라당식으로 盧대통령 재신임을 묻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개헌 얘기는 12일 오전 최병렬 대표와 서청원 전 대표, 김덕룡.강재섭 의원의 극비 조찬회동에서 나왔다. 盧대통령이 조성한 재신임.대선자금 정국에서 한나라당이 계속 끌려만 다녔다는 자성론과 함께 향후 정국 대응방안을 논의하면서다.

徐.金.姜의원은 "지금 정치권이 온통 대선자금 문제에 함몰돼 있는데 이대로 가면 당도 망하고, 나라도 망가진다"면서 "정국을 풀어가는 해법을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곤 "큰 틀의 대응이 필요하다"면서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추진하자고 했다 한다.

崔대표도 "내 생각도 기본적으론 다르지 않다"며 공감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당내에서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지 않느냐"며 "나를 믿고 시간 여유를 달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崔대표는 얼마 전 사석에서 "한두 달쯤 뒤엔 개헌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장담하다시피 말한 적이 있다. 당내 서열 2위인 홍사덕 원내총무는 총선 전 개헌을 벌써 몇 차례나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이날 회동한 네 사람은 지난 6월 당대표 경선 때 1~4위를 했다. 그런 그들이 개헌을 추진하자는 데 원칙적인 합의를 했다면 당론으로 발전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이를 위해 徐전대표는 지난주부터 하순봉.목요상.맹형규.안택수.엄호성 의원 등 40여명의 의원을 만났다. 김덕룡 의원도 상당수 의원을 만나 개헌 문제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지도부와 중진들이 구상하는 개헌은 盧대통령의 임기는 보장하되, 그 권한을 내년 총선 이후부터 대폭 축소하는 것이다. 총리직은 원내 다수당에 돌아가도록 한다는 게 한나라당의 생각이다.

한나라당은 개헌을 추진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민주당 의원 다수가 분권형 대통령제에 찬성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민주당 박상천 대표는 지난 10일 TV토론에서 "개인적으론 (분권형 대통령제)개헌을 추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힘을 합칠 경우 국회 의석의 3분의 2가 넘는 만큼 개헌안을 통과시키는 데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국민여론이 변수다. 내각제와 이원집정부제에 대한 여론은 그동안 부정적인 쪽이었다. 게다가 한나라당과 민주당.자민련이 공조해 국회를 통과시켜도 국민투표라는 또 다른 벽을 넘어야 한다. 청와대나 열린우리당도 가만있을 리 없다. 崔대표가 12일 중진회동에서 시간을 달라고 한 이유도 여론조성 등 충분한 정지작업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상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