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안전 장치 발명가 박광종씨|주산 강사가 차 충격 완화 장치 개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우리는 가끔 교통사고 현장에서 휴지처럼 구겨진 채 버려져 있는 자동차를 보곤 한다.
자동차 안전 문제를 새삼 생각게 하는 광경이다.
지난 10여년간 자동차 안전 장치 연구에만 매달려 온 재미교포 발명가 박광종씨(32·요한전자 책임연구원)는 이런 자동차 사고를 볼 때마다 마치 자신의 과실인양 가슴아파한다.
『자동차의 충격 완화 장치가 실용화되면 저런 참변만은 막을 수 있을텐데….』
자동차 안전 장치 연구에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박씨는 자신이 특허로 출원한 자동차 안전 장치 발명품들이 국내 자동차 업계의 안전에 대한 무관심으로 지난 3년여 동안 외면 당해 온 사실을 아쉬워했다.
지난88년 자동차 안전 장치에 대한 특허를 출원한 뒤 자동차 회사를 돌아다니며 필요성을 역설했던 박씨는 그들의 냉담한 반응으로 모두 허탕쳤다.
그러나 박씨는 이에 굴하지 않고 미국으로 가 89년 뉴욕 발명품 전시회에서 그의 고안품이 금상을 수상하는 등 성공을 거둔 뒤 귀국, 지난달에는 상공부가 고시한 국책 핵심 기술과제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룩했다.
이제는 오히려 자동차 회사에서 자신을 찾는다고 말하는 박씨의 눈엔 지난날의 어두운 시절이 생각나는 듯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현재 박씨가 40여개국에 출원한 특허중 대표적인 것은 자동차 바깥부분인 지붕·범퍼 등을 헬륨가스로 채운3중 특수 고무 튜브로 대체하고 이들을 가스 이동관으로 연결, 충격을 단계적으로 흡수하는 동시에 분산시키는「충격 완화 장치」다. 그 외에도 차체에 가이드레일을 만들어 회전 및 좌우이동을 할 수 있는「정지 차량 좌우 이동 장치」, 압축 공기가 충전돼 가슴과 머리를 보호하는「에어 핸들 커버」등이 있어 특허 출원한 것은 모두 5건.
이중 충격 완화 장치는 이번에 국책 과제로 선정된 것으로 이미 미국 기업에 10여년간 52억원의 연구자금을 받는 조건으로 특허권 일부를 양도했고 에어 핸들 커버는 국내 중소 기업인 요한 전자가 상품화해 미국·일본 등에 수출하고 있다.
경기도 양평군의 농가에서 5형제 중 넷째로 태어난 박씨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진학하지 못하자 고입·대입 검정 고시를 거쳐 주산 교사 자격증을 딴것이 학력의 전부.
박씨가 자동차 안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주산 학원 교사로 일하던 80년 봄 우연히 자동차 사고 현장을 보고 나서부터. 트럭과 충돌한 승용차가 휴지처럼 구겨졌고 승객 2명은 피투성이가 된 채 형체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자동차가 문명의 이기이면서 달리는 흉기라는 것을 깨달은 박씨는 안전한 자동차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던 어느날 어린이들이 유치원에서 목마를 타고 놀면서 서로 부딪칠 때 다치지 않으려고 튜브를 목마에 대는 것을 본 박씨는 자동차에도 특수한 튜브를 대면 훨씬 안전해질 것이라고 보고 충격 완화 장치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 뒤 4년여 동안 주위사람들에게 미쳤다는 소리도 들어가며 봉급 전부를 투자해 연구한 끝에 87년10월 처음으로 충격 완화 장치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발명품을 직접 만들어보기 위해 국내 자동차 회사를 돌아다녔던 박씨는 『폐차라도 좋으니 실험용으로 한대만 지원해달라』는 자신의 요구가 회사들의 냉담한 반응으로 무참히 깨지는 아픔을 맛보아야했다.
『텁수룩한 제 모습을 보고 믿음이 안갔겠지만 자신들의 제품에 관심을 갖고 찾아오는 발명가들을 푸대접하는 기업풍토는 큰 문제입니다.』
하는 수 없이 박씨는 결혼한지 한달도 안돼 아내 몰래 20만원짜리 중고 마크W 한대를 구입하고 또 자신의 발명에 관심을 보였던 서울시립대에서 제공한 차로 시험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용접기로 사르고, 붙이고, 실패를 거듭하며 밤을 새우던 박씨는 시작한지 한달만에 시험차를 만들었다.
정면충돌·측면충돌·방탄테스트 등 모든 시험이 대성공이었다.
이 소식이 알러지자 각 매스컴은 박씨의 발명품 소개기사를 크게 다뤘다.
박씨는 매스컴을 통해 충돌테스트 등 실험을 하면서 자신의 차와 기존차의 안전도를 유감없이 보여주었으며 이로 인해 안전도에 무관심했던 국민들을 일깨우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에도 불구하고 자동차회사들은 여전히 냉담했으며 오히려 기존차의 안전도가 낮다는 것을 부각시키는데 불만을 나타냈다.
『차가 잘 팔리는데 돈들이면서 그런 장치를 할 필요 없다는 거예요. 사고는 운전자 잘못이지 차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는 거지요. 기술개발을 위해서는 수백대의 시험차가 더 필요했던 박씨는 어쩔 수 없이 아내를 남겨둔 채 88년 가을 미화40달러와 특허 서류 가방만을 들고 미국 로스앤젤레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다행히 박씨의 발명품은 미국매스컴을 통해 소개되면서 특허비 전액이 기증되는 등 선풍을 일으켰고 40여개국에 특허를 출원하게 됐으며 89년 한국특허청 요청으로 뉴욕 국제 발명품 전시회에 출품해 금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때도 한국대표로서 국산차에 발명품을 장착하려던 박씨의 꿈은 국내기업의 거절로 뜻을 이루지 못한 채 결국 기증 받은 캐딜랙으로 출품하게 됐다.
그 뒤 박씨는 자신의 발명품에 관심을 보이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PMC(미국부동산회사)에 특허권 일부를 양도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특히 새로 구상한 발명품의 기술개발을 지원 받기 위해서도 PMC와의 유대 관계가 필요했다.
그러나 박씨는 10여년간 52억원의 연구자금을 받는 조건으로 특허권을 양도하긴 했지만 만일 한국기업이 내수용으로 사용할 경우 무료로 기증한다는 단서조항도 잊지 않았다.
지난해 자신의 발명품을 상품화하겠다는 요한 전자의 요청으로 2년여만에 귀국한 박씨는 또 다른 아픔을 겪어야했다.
방송국 요청으로 출연하게된 프로들이 당초 황금 시간대에 방송되려던 것이 아침 방송으로 바뀌거나 심지어 국내 승용차 충돌 실험을 정면 충돌이 아닌 30도 측면 충돌로 교묘히 속여 방송되는 것이었다.
『국내기업들은 당장 눈앞의 이익만 생각해요. 자동차만 해도 검사항목이 미국 52가지, 일본 48가지에 비해 우리나라는 6가지밖에 안돼요. 그래서 수출용과 내수용을 다르게 만드는 편법을 씁니다. 사실 미국이 52개 항목을 책정한 것이 안전에 필수적이어서지 쓸데없이 만들어놓은 것은 아닙니다.』
박씨는 자신의 발명품이 국책 과제로 선정되면서 현재는 국내 자동차사의 협조요청이 쇄도하고 있다며 올해부터 상공부 산하 부품 연구소 주관으로 쌍용자동차와 요한 전자가 참여하는 기술 개발이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10여년전 미국포드사가 살인죄로 기소된 일이 있어요. 새차의 기름탱크 위치가 잘못돼 충돌 때 인명피해를 낸다는 거죠. 그러나 국내자동차는 안전에 필수적인「임팩트 빔」(Impact Beam·차문에 대는 강철봉)도 비용이 올라간다고 내수용에는 달지 않고 있으며 차체도 안전도가 떨어지는 여러 조각으로 돼 모델변경을 쉽게 하려는 얄팍한 상혼까지 있죠.』뒤늦게라도 자동차안전에 관심을 가져준 정부와 업체에 감사드린다는 박씨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국내 자동차 안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글 이원호 기자 사진 김주만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