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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 "토론 거부는 민주주의 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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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노무현 대통령은 11일 기자회견에서 '4년 연임제' 개헌 제안과 관련해 정치권 등에서 제기되는 논란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노 대통령은 "결국 이 개헌을 반대하는 정치세력이 명분을 잃을 수도 있다"며 "'노무현의 정략'이란 식으로 오래 반대할 수 없을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적 지지를 통해 (반대) 입장을 바꿀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개헌이 돼도 나는 출마할 수 없는데 '대통령이 임기를 연장하려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 깜짝 놀랐다"고도 했다. 다음은 문답 요지. (※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

-개헌 추진을 위해 탈당을 검토하나. '임기 단축' 카드를 쓸 것이란 말도 나온다. 개헌안 부결을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으로 판단해 조기 하야할 가능성이 있나.

"당적 문제는 야당들이 개헌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해 온다면 고려할 수 있다. 임기 단축은 하지 않겠다. 임기를 단축하겠다고 하면 한나라당에서 찬성하려다가도 안 할 것이다. 개헌 부결 시 임기를 그만두겠다고 하면 부결시키고 대선을 빨리 하고 싶어 하지 않겠나. 개헌 부결을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도 보지 않는다. 개헌안에 신임을 걸었을 때 불신임인 것이지, 나는 신임을 걸지 않는다. 발의권을 가진 대통령으로서 향후 개헌 논의를 가능케 하는 개헌을 제안하는 것은 역사적 책무라고 생각한다."

-중대선거구제 개편도 강조해왔는데 추가로 어떤 제안을 할 건가.

"개헌은 어느 당에도 불리하지 않지만 중대선거구제 도입과 비례대표 확대는 한나라당에 불리하다. 지역적 독점권을 가진 정당의 결정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선거구제는 설득과 토론이 안 된다. 하지만 개헌은 '우리가 잘 가고 있는 시기에 골치 아픈 의제가 나와 혹시 무슨 사고가 날지 모른다'는 수준이라 대화가 가능하다고 봤다."

-야당은 '정략적 제안'이라며 반대하는데.

"지금 정략적 제안이라고 하는 이들이 다 과거엔 이 제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내 임기 중엔 안 된다는 말은 최근에 하기 시작했다. 필요하다고 했던 이들이 지금 와서 안 되겠다는 게 오히려 정략적이다. '우리 당의 여론 지지가 앞서고 있는데 왜 복잡한 걸 꺼내느냐'는 건데 이 제안은 당에 대한 지지나 대선과 관계가 없다. '혹시…'하는 가능성 때문에 못 하겠다는 건 너무 이기적이다. 중앙.조선.동아일보가 과거 사설과 칼럼으로 필요하다고 썼다. 노무현 대통령이 하는 일이니 기를 죽이려고 반대하자는 것 아니냐. 부결되더라도 대통령이 기 죽을 일 없고 헌법상 권한이 소멸될 리도 없다. 나는 헌법상의 권한 이상을 행사한 적이 없다.

내가 1990년 김영삼 대통령의 3당 합당에 안 따라간 것도 정략이냐. 92년 14대 총선을 모두 낙선할 것이라던 부산에 가서 치른 것도 정략이냐. 98년 종로에서 국회의원 당선된 뒤 2000년 다시 부산으로 갔는데 그것도 정략이냐. 95년 경기도지사 후보 여론조사에서 1위를 했다. 당에서 내가 하겠다고 뻗으면 못 뻗을 것도 없었지만 부산으로 갔다. 정략이라면 미래를 꿰뚫어 보는 탁월한 지도자로 봐줘야 할 것 아니냐. 나는 몰랐다. 양심의 지시대로 그때그때 그 자리에 섰을 뿐이다. 탄핵도 한나라당 스스로 함정에 뛰어들어 놓고 내가 무슨 공작의 대가인 것처럼 얘기한다. 나는 정략으로 정치하지 않는다."

-지난해 2월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산행에서 "개헌 문제는 이미 대통령의 영역에서 벗어난 일"이라고 했는데 갑자기 왜 제안했나.

"그때는 개헌을 제안해도 되기 어렵다고 봤다. 개헌 얘기를 했더라면 논의가 무성해져 지난해 국정 운영에 지장이 있었을 수 있다. 당시엔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았다. 하지만 임기 1년을 남기고 마무리할 것을 챙겨보니 개헌을 못 본 척 할 수 없었다. 안 될지도 모르지만 이 시기가 아니면 개헌이 어렵기 때문에 대통령으로선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심한 거다. 갑자기 했다는데 이런 제안은 갑자기 나올 수밖에 없다. 미리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며 다른 일도 안 되게 시끄럽게 할 필요가 있나."

-정치에 '올인'하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는데.

"개헌을 정략으로 보면 정치이지만 국가의 근본제도로 보면 정책이다. 개헌 문제를 정치 얘기로 깎아내리지 말아달라. 부동산.민생.경제.한미FTA.북핵.한미관계 다 열심히 하겠다. 어느 나라 대통령이 한 가지 일에만 매달리나. 컴퓨터 쓰는 이들이 '멀티태스킹(※몇 가지 작업을 동시 수행하는 것)'이라고 하듯 동시에 할 수 있다. 개헌이 국정에 지장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게 지장을 준다면 2002년 월드컵 때는 국정이 마비됐을 것이다. 국민이 개헌에 대해 좀 들여다보고 토론하더라도 생업이나 국정에 지장이 없다."

-헌법 개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우리는 60년 동안 아홉 번 개헌했는데 독일은 비슷한 기간에 51번 했다. 규범은 사회 변화에 따라 바꿔야 한다. 87년 직선제로 넘어오면서 엉겁결에 만든 헌법이라 사회적 필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20년 동안 민주주의와 경제가 발전했고 사회.문화적 가치도 변했다. 그에 맞춰 개정해줘야 한다. 일단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맞춰놔야 나중에 헌법 논의를 할 수 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임기 문제가 걸려 향후 20년간 개헌 논의를 할 수 없게 된다."

-향후 계획은. 야당 대선후보를 만나 설득할 생각은 없나.

"국민을 설득하기 위한 여러 노력을 할 것이다. 대선주자들과도 만나 얘기하고 싶지만 초청에 응할지 등을 검토해 제안하든지 하겠다. 분명한 것은 어느 정당이 대화도 토론도 안 하겠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안 하겠다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던진 중요한 국가적 의제에 대해 말도 안 하고 깔아뭉개겠다는 것이야말로 공당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노 대통령은 기자회견 전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오찬에서도 "대화도, 토론도, 표결도 하기 싫다는 건 독재시절의 발상이다. 국정의 한 축을 담당하는 유력 정치세력이 여론만 믿고 안하무인의 정치를 하는 걸 보니 나라의 장래가 걱정스럽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제를 하는 나라 보다 내각제를 하는 나라가 부럽다"고 했다고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이 밝혔다.)

정리=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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