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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김병욱표 시트콤이 사랑받는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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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준하, 난 네 장면만 나오면 눈물이 난다.” 스튜디오에서 정준하(右)에게 표정 연기를 지시하는 김병욱 PD(左). [사진=김성룡 기자]

한국 시트콤의 원형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 김병욱(47) PD. 시트콤의 걸작 '순풍 산부인과'(SBS)를 '순풍 순풍' 낳았던 그는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SBS)'똑바로 살아라'(SBS)로 자신만의 시트콤 작법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그의 작품에는 가부장적이지만 허점 많은 아버지, 억눌려 사는 듯하지만 할 말 다하는 어머니, 장성하고도 부모 곁에 살며 끊임없이 말썽을 피우는 자녀들이 나온다. 김 PD가 만들어낸 푼수 사위 박영규('순풍 산부인과'에서 박영규 분)와 고집 센 영감 노구('웬만해선…'에서 신구 분) 등은 '쪼잔하면서도 훈훈한'우리네 곰살맞은 이웃의 얼굴이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거침없이 하이킥'(MBC)에서도 그의 장기는 또다시 발휘되고 있다. 인터넷 드라마 검색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김병욱표 시트콤 '거침없이…'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우리 사회 '거침없이' 담아낸다=김 PD는 "내가 만든 시트콤은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아들, 시부모와 며느리.사위 등 사람과 사람 간의 권력 관계를 보여준다"고 밝혔다. 복잡한 관계를 이루고 살며, 그래서 갖가지 에피소드를 자아내는 좌충우돌형 대가족이 그가 그리고자 하는 한국적 시트콤의 핵심이다. 그는 "현실에서는 찾기 힘든 가족 형태지만, 한국 사회를 축소판으로 보여주기 위해 대가족을 고집한다"고 했다.

'거침없이…'에서는 똑똑한 한의사 며느리 박해미가 가장 목소리가 큰 인물로 그려진다. 이전 작에서 주인공 집안의 가장은 확실하게 경제권을 거머쥔 오지명.노구였다면, 이번에는 아버지 이순재의 권력이 며느리 말 한마디에 마구 흔들린다. 어머니 나문희도 며느리를 "싹퉁바가지"라고 숨어서 욕할망정 앞에서는 "어 그래"라며 순순히 따른다. 여기에 직업도 없이 먹는 것만 밝히는 큰아들 준하(정준하 분)는 아내에게 언제나 '납작 모드'다. 김 PD는 "우리 집도, 작가의 집도 비슷한 모양새"라며 "세월이 흘러가며 변하고 있는 집안의 권력 관계도 시트콤에서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혼.실직도 '웬만해선' 피할 수 없다=시트콤 하나에 사회 전반을 고루 담다 보니, 최근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 이혼과 실직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이를 대표하는 주인공들이 한의사 아내 눈치 보며 집에서 주식 투자.온라인 게임으로 소일하고 있는 준하와 러시아에서 작곡 공부를 하겠다며 덜컥 이혼해 놓고 자기 갈 길 못 찾는 둘째 며느리 신지다. '거침없이…'의 웃기면서도 슬픈 대목은 주로 이 인물들이 만들어낸다. 친구가 증권사에 자리 하나 마련해준다고 했다가 일이 안 되자 우울증에 걸린 준하, 뮤지컬 오디션 한번 보려고 싫어하던 손위 동서 해미에게 케이크까지 갖다 바치는 신지는 '순풍 산부인과'의 박영규 못지않게 탈도 많고 이야기도 많은 인물들이다.

'거침없이…'은 초반부터 둘째 아들 민용(최민용 분)과 며느리 신지의 이혼 선언으로 시작했다. 신지는 젖먹이 아들을 시댁에 맡기고 꿈을 찾아보겠다고 나서는 철없는 며느리로 그려진다. "아기 엄마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김 PD는 "모성이란 이름으로 모든 것을 감내하는 여성 말고, 자기 욕망에 충실한 여주인공도 그려보고 싶었다"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그의 시트콤이 시청자 비판을 받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S대 나왔다"고 한 것이 서울대 졸업생으로 오해를 사 속앓이를 하는 '웬만해선…'의 이홍렬의 상황, 동생에게 "흥수 월급 170만원 받던데 그 월급 받아 언제 저축해서 새집을 사. 정신 차려"라고 외쳤던 '똑바로…'의 최정윤 대사 등이 학력지상주의, 위화감 조성이란 이유로 도마에 올랐다. 그는 "왜 그런 에피소드를 집어넣어 욕을 먹느냐고도 하지만, 현실을 반영하지 않으면 시트콤은 살아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순풍' 낳은 캐릭터들 모두 사랑스럽다=김 PD 시트콤의 또 다른 특징은 '나홀로' 주인공은 없다는 것. 에피소드 한 회를 구성하더라도 한 인물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주지 않는다. 심지어 이혼한 민용을 짝사랑하는 여교사 서민정에게도 다른 가족 구성원 못지않은 분량이 주어진다.

김 PD는 "시트콤 초반에는 보는 사람이 답답할 정도로 캐릭터의 특성을 알리는 데 중점을 두는 게 나의 작업 방식"이라며 "등장인물의 성격이 확실해지고난 뒤, 이 사람들을 맞물려가며 에피소드를 만드는 것은 농사 짓고 추수하는 심정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술에 취하면 괴물처럼 음식을 먹어치우는 '식신' 준하의 모습을 그린 에피소드와 준하가 두 아들 민호.윤호와 '무적의 3부자'를 결성해 스쿠터를 타고 시동이 꺼진 엄마 해미의 차를 향해 출동하는 장면 등은 인터넷에서 최고 인기 동영상으로 꼽히고 있다. 먹는 것을 유달리 밝히는 준하의 평소 캐릭터를 알고, 엄마 말이라면 꼼짝 못하는 마마보이 민호의 성격을 알고나면 이들의 연기는 더욱 웃음을 자아낸다는 것.

앞으로 이순재와 나문희의 부부 사이에서는 노년에 새로 발견하는 사랑을, 해미와 민호의 관계에서는 아들의 여자친구에게서 질투심을 느끼는 엄마의 모습을 끌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의 거침없는 연출이 추레한 듯하지만 알콩달콩 살아가는 재미가 있는 우리의 삶을 더욱 빛나게 보여주길 기대해 본다.

홍수현 기자<shinna@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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