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9일 오전 청와대에서 대통령 4년 연임제를 골자로 헌법 개정을 제안하는 대국민 특별담화문을 발표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말 "할 일 열심히 하겠다"에서, 연초 "합법적 권력을 마지막 날까지 행사하겠다"까지의 발언은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제안 자체가 전격적인 만큼 개헌 논의의 초기 주도권은 노 대통령이 쥔 모양새다.
개헌론이 갖는 이슈의 파괴력은 정치권으로 향하고 있다. 선제 탈당론 등으로 흔들리던 열린우리당은 "개헌 찬성"이라며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도 논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어떤 정략적 의도도 없다"고 했지만 이미 정치권은 개헌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이 이 바람에 휩쓸리지 않겠다고 한 건 정국 주도권 다툼에서 밀릴 수 없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대선 정국을 뒤흔들 '노무현 변수' 중 하나가 등장했다"며 "여권으로선 밑질 게 없는 수"라고도 했다.
개헌 카드가 여권 내부를 다잡고 한나라당 중심의 대선 흐름에 제동을 거는 정치적 노림수라는 분석이 제기되는 건 그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권은 노 대통령의 다음 수에 주목하고 있다. 청와대는 개헌론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정치권.학계.시민단체 등을 대상으로 여론몰이에 나설 움직임이다. 한나라당 대선 주자들을 향한 공세도 예고했다. 노 대통령은 담화에서 "단지 당선만 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책임 있게 국정을 운영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개헌을 지지하는 게 사리에 맞을 것"이라고 복선을 깔았다.
특히 한나라당의 반대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개헌이라는 초대형 이슈를 던진 만큼 반대론을 돌파할 다음 수까지 준비해 놓지 않았느냐는 분석도 있다. 청와대 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개헌을 조건으로 임기 단축(하야), 탈당, 정치 불개입 선언 등이 뒤따를 수 있다는 관측이 꼬리를 물고 있다. 노 대통령은 2005년 7월 대연정 제안 때도 "모든 권력을 한나라당에 넘겨줄 수 있다"며 수위를 높여간 전례가 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시작"이라는 청와대 관계자의 말처럼 막 상륙한 개헌론이라는 태풍이 앞으로 어떤 경로를 그려 나갈지 정치권은 주시하고 있다.
박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