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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혼미 헤쳐나갈 정치없다(난국 이것이 문제다: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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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치권에 대한 불신/현실진단 능력없어 불만 누적/민주화·개혁 노력만이 해결책
시국상황이 혼미를 거듭하면서 통치도 없고 정치도 없다는 국민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그렇잖아도 그동안 수서비리사건·낙동강 식수오염 사건 등을 치르면서 정치부재를 실감해온 국민들로서는 최근 강경대군 치사사건으로 야기된 난국에 대한 정치권의 함량미달인 처방전을 바라보며 이같은 불만이 누적되고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가중되고 있다.
난국한파를 몰고온 강군사건은 우발적이라기보다는 필연적인 사건이라는 것이 사회구성원 대부분의 공통된 인식이다.
여야 정치지도자들은 무절제한 대권욕에 사로잡혀있고 핵심권력층은 눈앞에 닥친 현안보다 대통령의 퇴임후 문제에 더 골몰하다 보니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참정치는 실종되고 말았다.
이 때문에 날이 갈수록 국민들의 정치권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을 헤매고 공직사회의 기강해이와 이로 인한 잇따른 비리사건이 꼬리를 물면서 국민저항과 공권력만능의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이 와중에서 강군사건은 예정된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난국을 하루빨리 헤쳐나갈 방도는 진정한 민주화와 철저한 개혁밖에 길이 없다.
6공정부는 출범때부터 권위주의의 청산과 민주화를 표방하면서 무엇보다 엄정한 공권력의 행사와 깨끗한 공직자의 기강확립을 수없이 되풀이했다.
그러나 지난해 3당합당후로는 권위주의가 다시 부활되고 6·29이후 다소 유연성을 보이던 정부가 지난해부터 밀어붙이기식의 강경정책으로 선회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최근의 정국위기는 3당 합당후 가속화하고 있는 정부·여당의 강경책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기도 하다.
「공안통치」로 일컬어지는 정부의 강력한 공권력행사,즉 힘에 의한 물리적 대응은 악순환만을 되풀이할 뿐이다.
이런 공권력에 의한 통치방식의 강화는 집권후반기의 권력누수,퇴임이후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런 쓸데없는 기우가 통치를 그르치는 것이다. 민주화의 끊임없는 추구만이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현재의 정국위기를 낳는 앞으로의 정치구도에 대한 불명확성을 제거해야 한다.
따라서 여야 지도자들은 이제부터라도 대권문제등 권력문제에만 신경쓸게 아니라 이제부터는 민생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처방을 내는 「실천적 정치」의 자세를 보여줘야한다.
정치의 안정을 위한 가장 큰 문제는 국가통치의 기간조직인 행정조직의 안정과 정화에 있다. 공무원사회내부에 점점 심화되고 있는 부패·부정심리는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다.
수서사건과 뇌물외유사건에서 보듯 이제 그 병균을 치유하기 위한 대대적인 정화작업이 있어야 한다. 걸핏하면 나오는 사정·숙정작업이 통치편의적으로 이용돼서는 안되는 것이다.
아직 우리의 정치관행이나 행정스타일은 구시대적·권위적 행태를 완전히 씻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조금만 국민감시가 소홀해지면 권력의 폭력성,관료의 부패,정경간의 유착 부정이 되살아나고 있다. 이것을 규제하면서 정치문화의 전진을 이루기 위해서는 집권층의 부단한 개혁의지의 재확인과 국민들의 끊임없는 감시가 필요한 것이다.<정순균기자>
◎비민주 추방에 여야 합심해야/전문가 의견
◇한배호 교수(고려대·정치학)=여야가 민주화라는 공통목표를 위해 건전한 합의에 의해 이 난국을 헤쳐가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추진해온 민주화의 길로 계속 가느냐,또는 후진하느냐의 갈림길에 있다.
보다 나은 민주화를 위해 여야가 목표와 방법에 대해 합의,슬기롭게 해결돼야 한다. 이 합의과정에 대통령도 한몫을 해야한다.
이와 함께 6공정부가 내세웠던 민주화약속과 개혁을 이루어나가야 한다.
민주화를 위해서는 개혁밖에 없고 가장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도록 해야지 비민주적인 방법이 동원돼서는 안된다. 여야가 국민을 안심시키는 정치를 하기위해서는 개혁을 이루어야 한다.PN JAD
PD 19910508
PG 05
PQ 02
CP HS
SA P
CK 04
CS A01
BL 2510
GO 권영빈칼럼
GI 권영빈
TI 권력에 대한 공포와 향수(권영빈칼럼)
TX 암담했던 권위주의시절을 살아온 우리에게 있어 정치권력이란 대체로 두개의 상반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권력에 대한 공포와 향수가 그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위기의 가파른 고개위에 올라서게되면 정치권력에 대한 상반된 인식은 더욱 첨예하게 대립한다.
권력이 법과 질서의 회복이라는 이름으로 강경한 자세를 취할때면 그것이 곧 권위주의에로의 회귀 또는 공안통치의 징후라고 직감하는 반응이 첫번째 인식이 될 것이다. 비록 정당한 법질서의 집행이었다해도 정치권력이 강력한 모습으로 등장하면 일단 공포와 의심을 동시에 품게된다. 아! 무슨 일이 일어나겠구나 하는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다.
6공화국에 들어와서 우리는 두차례의 이러한 위기의식을 느꼈다. 한번은 3당통합이 있었던 지난해 초였고 최근의 치사정국이 두번째 위기상황이라고 판단한다. 3당통합은 밀실담합으로 이뤄지기는 했지만 적어도 위법·탈법은 아니었다. 여소야대의 힘없는 권력으로는 국가대사를 치를 수 없다는게 합당의 명분이었다. 그러나 합법과 명분이 일치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장기집권 음모 또는 권위주의에로의 복귀를 두려워했다.
올해의 위기상황도 공안세력의 등장이라는 어휘에서 시작됐다. 임기말의 권력누수현상을 막고 범죄와 폭력의 뿌리를 뽑는 강한 정부가 되겠다고 약속한 다음,곧이어 언론·방송·예술에 대한 보이지 않는 통제와 외압이 되살아났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기이하게도 두해째 강한 권력,강한 정부의 현실적 등장과 함께 권위주의와 공안통치에 대한 공포감·거부감이 확산되면서 위기의 현실로 나타났다. 이미 20여년을 억압과 통제의 권력밑에서 살아봤기 때문에 울너머 툭하면 호박이라는 직감이 발동하고 강한 권력,곧 권위주의 회귀라는 확신으로 바뀐다. 이것이 권력에 대한 우리의 첫번째 반응이고 시각이다.
이와는 정반대의 반응과 시각이 우리의 두번째 권력인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강한 정치권력에 오랫동안 익숙해왔던 지난 관습때문에 정부의 통제가 약해지거나 대학가의 시위가 격해지면 두려움을 느끼고 옛날의 강한 권력이 좋았다는 쪽으로 돌아서는 자세다.
강한 권력에 보호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이런 의식은 특히 노사분규가 극심했던 2년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로 확산되었다. 격렬한 임금투쟁과 법질서의 테두리를 벗어난 흉흉한 시위현장,노동해방을 외치는 살벌한 구호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공포와 위기의식을 느꼈다. 사실상 산업은 침체되고 수출은 저하되었으며 범죄가 창궐하고 물가가 뛰기 시작했다. 공권력이 무얼하고 있는가,법질서가 회복되어야 한다,대통령이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강한 권력에의 기대와 보호 욕구가 어느정도 채워질 시점에서 강경대군 참사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시국을 바라보는 관점도 강한 권력에 대한 시각과 인식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강한 권력에 대한 공포는 공안통치가 학생을 죽였다고 보고 공안정권의 퇴진을 요구한다. 학생의 화염병보다는 전경의 쇠파이프를 비난한다.
강한 권력에 대한 향수는 쇠파이프 이전에 화염병이 있었음을 강조하고 화염병이 유죄라고 주장한다. 화염병과 쇠파이프 논전은 닭과 달걀의 관계처럼 그치지 않고 계속될 뿐이다. 작년이 그러했고 올해가 그러하며 내년이 또 그럴 것이다.
다만 경찰이 죽으면 쇠파이프론이 강세를 보이고 대학생이 죽으면 화염병론이 우세를 보이는 차이일 뿐이다.
화염병이 강세를 취하면 권위주의 회귀론이 주춤하고 동의대사건처럼 쇠파이프론이 우세하면 공안통치 분위기를 작동하기 시작한다. 정치권력은 줄타기하듯 곡예를 부리며 권력에 대한 공포와 향수심리를 이용하고 자극한다.
화염병이 강하면 민주화를 약속하고 쇠파이프가 강하면 공안통치가 고개를 든다. 화염병 쪽이면 개혁입법을 서두르고 쇠파이프 쪽이면 강건너 불이 된다.
우리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정권이 시류에 따라 권위주의의 마각을 드러내고 형편에 따라 발톱을 숨기는 작태때문에 권력에 대한 공포와 향수가 춤을 추게 된다. 정권을 반대하는 세력 또한 자신들의 형편이 유리하게 돌아가면 퇴진과 전복을 촉구하고 노동의 해방과 새 시대의 도래를 외쳐댄다. 쇠파이프론의 소수 공안회귀세력과 화염병론의 소수 극렬론자들이 벌이는 세력다툼속에서 경제는 시들고 민심은 불안에 떤다.
우리 사회를 혼란과 불안으로 몰아가는 폭력의 주체는 하나가 아니고 둘이다. 시들어가는 학생시위에 불길을 댕기며 강한 권력에 대한 공포를 자극하는 운동권의 핵심과 강한 권력만이 침체된 경제를 살리고 범죄와 폭력을 막을 수 있다고 권위주의 시절의 향수를 부추기는 공안세력의 핵심이 위기현실의 주범이다. 이것은 양비론이 아닌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다. 폭력의 두 주체가 사라지지 않는한 권력에 대한 공포와 향수,화염병과 쇠파이프의 대결은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다.
폭력의 두 주체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시민이,민주적 질서,문민정치가 자리잡아야 한다. 바로 이 목표를 위해 우리는 항의하고 분노하고 경계해야 한다. 비록 그 길이 멀고 당장 얻어지지 않더라도 한발짝씩 쌓아가야 한다.
하나가 아닌 두개의 폭력을 동시에 거부하는 일이 민주화 작업임을 화염병과 쇠파이프사이에서,4·19와 5·16사이에서 다시 한번 확인한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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