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파탄 주범 몰릴 과오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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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무현(얼굴) 대통령이 4일 언론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노 대통령은 "감시받지 않는 유일한 권력이 오늘 한국의 언론 권력"이라며 "공직 사회가 이 언론 집단에 절대 무릎 꿇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제가 갈등 친화적 인물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있는 동안 계속 시끄러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새해 첫 외부 행사로 정부 과천청사에서 경제점검회의를 한 뒤 3급 이상 공무원 200여 명과 함께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였다. 노 대통령이 과천청사를 찾은 것은 취임 첫 해인 2003년 12월 이후 3년 만이다.

노 대통령은 언론을 불량 상품에 비유한 뒤 "불량 상품은 가차없이 고발해야 한다"고까지 했다. 마무리 발언은 당초 예정된 25분을 훌쩍 넘겨 47분 동안 계속됐다. 작심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음은 발언 요지.

?"참여정부의 언론 정책 괘씸죄에 걸려"=제가 가장 힘들어 하는 상대들이 누구인지 곰곰이 헤아려 주면 고맙겠다. 그렇다. 찍힌 거다. 참여정부의 언론 정책이 괘씸죄에 걸린 것 아닌가.

어제도 신년 인사를 했다. 돼지 한 마리를 잘 그렸다고 생각했는데, 돼지는 어디 가 버리고 보도에 나온 것을 보니까 꼬리만 딸랑 그려놨다. 그것도 밉상스럽게 그려놨다. 지금 소비자 주권이 행사돼야 할 산업 분야가 어디인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실하고… 부실한 상품이 돌아다니는 영역이…. 내 생각에는 미디어 세계인 것 같다. 사실과 다른, 엄청난 많은 사실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기사로 쏟아지고, 누구의 말을 빌렸는지 출처도 불명한 의견이 마구 나와 흉기처럼 사람을 상해하고 다니고, 그리고 아무 대안도 없고, 대안이 없어도 상관없고, 그 결과에 대해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배상도 안 하는 상품이 하나 있지 않나. 감시받지 않는 생산자, 감시받지 않는 권력자, 이게 가장 위험하다.

인터넷이 어느 정도 제어를 해 주고 있다. 여러분 너무 기죽지 말라. 견제받지 않는 권력, 아무도 소비자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 권력은 절대로 용납해선 안 된다.

이만한 정부 권력이라도 가지고 있는 집단에서 소비자 노릇을 제대로 해 주기 바란다. 불량 상품은 가차 없이 고발해야 한다. 그리고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제일 나쁜 것이 유착이다. 유착하지 말라. 간곡한 부탁이다.

?"큰 과오 발견 못해"=뭘 잘못했나 매일 매일 돌아보고, 돌아본다. 그런데 적어도 국정 파탄의 주범으로 몰릴 만큼, 국정 위기를 초래한 책임자가 될 만큼 그렇게 큰 과오는 발견하지 못했다.

시행착오야 물론 있다. 그게 다른 시대의 정부 수준에 현저히 못 미치는 부실인가라고 생각해 보면 어쩐지 인정하기 싫다.

이 나라에는 3개의 정부가 있다. 저와 우리가 보는 정부, 야당이나 언론이 말하는 정부, 보통의 국민이 보고 듣고 느끼는 정부다. 현실에서 3개의 정부 사이엔 엄청난 격차가 있다. 그런 게 저의 어려움이다. 제 부족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렵고 힘이 든다.

?"부동산 잘 관리할 역량도 있고 긴장도 있다"=다음 정부에 혹시 부담을 줄까 걱정하는 것은 부동산.금융.환율 정도다. 지금 미리부터 잘 대응하고 있고, 잘 관리해 나갈 것으로 생각한다. 위험요인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위험요인을 충분히 관리할 만한 역량도 있고 긴장도 있다. 그 문제는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 세계 경제구조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특히 소득구조가 빠르게 변한다. 1970년대 초반부터 미국의 소득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해 중산층이라는 사람들이 중하층으로 떨어졌다.

일본은 95년부터 성장하던 중산층이 성장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있다. 중류층은 없어지고 중하류로 떨어지고 말았다.

한국도 그런 경향이 빠르게 그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난 4년간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에게 좋은 평가를 듣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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