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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땐 표적사정 엄포놔 한나라에 100억원 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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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손길승(孫吉丞)SK그룹 회장이 지난 대선 때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공한 것과 관련,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 표적 사정할 수 있다는 식으로 나오는 바람에 (1백억원을)주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고 11일자로 발매된 시사주간지 '주간동아'가 보도했다.

주간동아는 기사에서 "孫회장이 SK그룹 관계사 신임 팀장 및 부.차장 연수교육에서 강연한 내용"이라며 "SK의 보안조치로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발언의 폭발력으로 인해 조금씩 새나오기 시작한 것을 취재했다"고 보도경위를 밝혔다.

SK는 지난 8월 말부터 10월 하순까지 SK아카데미에서 수차례에 걸쳐 孫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교육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간동아에 따르면 孫회장은 "(한나라당에 1백억원을 준 것은)자의가 아니라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김대중(DJ)정권 4년 동안 민주당엔 1백40억원, 한나라당엔 8억원이 갔다. 정치자금은 여당 60%, 야당 40% 정도로 나눠주는 게 관례다. 아니나 다를까 한나라당이 지난해께부터 자꾸 우리 그룹을 못살게 굴더라. 확인해 보니 돈을 더 내라는 거였다.

대선 때 할당된 양이 그만큼이라며 1백억원을 얘기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한나라당이)집권할 경우 표적 사정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 나오는데 안 줄 수 있었겠느냐"며 "김창근(金昌根)구조조정본부장과 내가 책임지는 것으로 하고 처리했고, 민주당도 25억원을 요구하기에 다 줬다"고 밝혔다.

孫회장은 또 "정치자금과 관련해서는 고(故) 최종현(崔鍾賢)선대 회장 때부터 늘 내가 그룹 창구였다. 선대회장은 대통령만 만났다"며 "깨끗한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누군가 청소를 맡아야 한다. 이번 건도 최태원(崔泰源) SK㈜ 회장에게는 '내용만 알고 있어라. 방법은 알 필요 없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최도술(崔導術.구속)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게 11억원을 준 것과 관련해선 "대선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이영로씨가 이전부터 생명공학사업 자금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해 왔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니 안 줄 수 없었다"며 "그게 어떻게 최도술씨에게 가면서 문제가 이렇게 커졌다"고 주장했다.

검찰의 비자금 수사와 관련, 孫회장은 "지금껏 정권이 바뀔 때마다 큰 어려움 없이 적응해 왔고 검찰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386 검사들의 변화를 못 읽은 것이 큰 문제가 됐다"며 "상층 라인이 오히려 평검사들에게 당할 수도 있음을 예상치 못한 것으로, 한마디로 말해 파워 시프트(권력 이동)를 읽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대 비자금 사건은 DJ가 막아줬는데 우리는 방패막이가 없었다. 결론적으로 개혁 주도권 싸움 와중에 SK가 크게 걸리고 말았다"고 검찰 수사에 대한 불만을 털어놨다고 주간동아는 전했다.

이에 대해 SK그룹 홍보실 김만기 부장은 "孫회장이 최근 회사 연수원에서 간부들을 상대로 회사 현안 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정치자금 등 얘기를 했을 수는 있으나 구체적인 자금의 액수를 밝히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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