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쌀시장 “빗장” 흔들/충격던진 「개방불가피」 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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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열면 파장 엄청나 정부 불가입장/대책검토중… 「의도된 언급」 가능성
국내쌀시장은 계속 굳게 닫고 있을 수 있는가,아니면 결국 열리고 말 것인가.
우루과이라운드(UR) 농산물협상 재개와 관련,정부부처를 포함한 이곳 저곳에서 「최소한의 수입 불가피론」「개방에 대비한 논(답) 휴경보상제」 등이 거론되면서 쌀시장 개방문제가 다시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재외공관장회의에 참석차 일시 귀국한 박수길 주제네바대사는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전체국가이익을 고려할 때 시장개방에 대한 편협한 생각은 버려야한다』고 전제,현재 UR협상 추이에 비춰볼 때 『쌀도 시장의 3∼5%는 개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최소한의 쌀시장 개방을 시사해 파문을 일으켰다. 워낙 예민한 문제라 정부가 발칵 뒤집혀진 것은 물론이다.
농림수산부는 즉각 외무부측에 박대사의 발언에 대해 항의를 제기하고 『UR에서도 현재 쌀에 대해 개도국 우대사항은 아직 논의단계에도 가지 않았다』며 『식량안보차원에서 쌀시장을 결코 개방할 수 없다』는 점을 공식으로 재확인했다. 외무부측도 서둘러 박대사의 발언은 사견이며 와전된 것이라고 부인하고 나섰다.
그러나 박대사의 발언은 일본의 쌀시장 개방을 전제로 했고 사후부인도 하긴 했으나 UR협상에 관한 우리측 대표의 언급이라는데서 예사롭게 넘길 일은 아니다.
사실 작년말 농산물협상과 관련,UR타결 실패의 화살이 한국과 일본에 쏠리면서 정부는 큰 곤욕을 치렀다.
이에 따라 절대개방 불허품목(NTC)을 당초 15개에서 「쌀+α」라는 불특정의 「몇개 품목」으로 축소,새로운 협상카드를 최근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사무국에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쌀시장 개방문제는 정부에서도 견해차가 적지않고,특히 우리의 의지대로만 이 문제가 결정될 수 없다는데서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현재 정부의 공식입장은 쌀만큼은 「절대 개방불가」로 특히 주무부처인 농림수산부는 『쌀만큼 수익이 큰 작물도 없고 여기에 농민대다수의 생존이 걸려있다』며 완강한 고수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협상은 상대가 있게 마련이고 협상진전 여하에 따라 상황도 가변적이어서 이에 대비해 정부가 「여러 경우의 수」를 내밀히 검토해온 것도 사실이다.
현 단계로선 현실성은 없으나 최근 거론된 논휴경보상제도 그중 하나로 쌀시장을 개방하게 되더라도 국내생산조절을 함으로써 수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GATT 11조 2항 C를 원용해보자는 방안이다. 이에는 경제기획원측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 대안의 하나로 실무적 검토를 완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대외협상의 창구역할을 하고 있는 외무부도 미국등 농산물수출국의 외압이 워낙 강해 협상에서 보다 유연한 태도를 강조하는 쪽이다.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일본정부도 공식적으로는 개방불가입장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이미 2∼3년전부터 개방이 될 수도 있다는 여론조성을 해왔고 최근에 일본 경단련은 『총리의 결단만 남았다. 필요하다면 대외무역 마찰을 피하기 위해 쌀시장 개방에 관한 결단을 촉구하겠다』고 말할 정도다.
또 확인될 수 없는 일이나 지난 4월초 부시­가이후 미 일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가 깊숙이 논의돼 일본이 상당한 양해를 했다는 이야기도 흘러 나오고 있다.
일본의 문이 열리면 한국은 더 입장이 고립되며 따라서 박대사의 발언도 이같은 점을 감안한 「의도된 언급」이라는 의구심이 생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쌀이라고 해서 무한정 시장을 닫아둘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도농격차 뿐 아니라 농업구조조정이 말만 무성할 뿐 답보상태인 현 상황에서 쌀시장 개방이 농촌에 몰고올 충격은 짐작이 어렵지 않다.
또 하나 우려는 개방압력에 밀리기만 하면서 국내적으로는 「다른 소리」를 해온 정부의 태도다. 우리경제의 국제화·개방화가 시급하다해도 쌍무·다자간 통상협상에선 분명히 「주고 받기」가 있게 마련이며 국내정책상 양보할 수 없는 선은 있는 것이다.
현 시점은 국내농업에의 타격을 그나마 적게 하려면 정부로선 부처간 견해차를 드러낼 게 아니라 강한 대응논리의 재구축이 더 필요할 때다.<장성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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