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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교수·경제관료 거친 경박|사원 교육에 남다른 관심|금호그룹 박성용 회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미국 예일대 경제학박사·대통령 비서실 경제비서관·경제 기획원장관 특별보좌관·서강대 경제학 교수-.
재벌 2세라 기보다는 학자나 고위 경제관료에 걸맞을 만한 금호 그룹 박성용 회장(59)의 화려한 약력이다.
박사 재벌로 알려진 그는 재벌이라는 말이 갖는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
그는 직접 전자 계산기와 퍼스컴을 두드리고 비서를 통하지 않고 전화를 건다. 대리·과장이 회장실로 다이얼을 돌리면 회장이 직접 수화기를 든다.
회장의 업무처리가 이런 식이니까 계열사의 사장·임원들이 여비서를 두고 전화를 받을 수 없다.
그룹 내에서·계급의식이 싹틀 수 없게 돼 있는 것이다. 금호는 하의 상달이 가장 잘 되는 기업으로 꼽힌다. 학자출신답게 박 회장의 사람에 대한 교육투자는 남다르다.
서울 회현동 금호그룹 사옥 1층 현관에 들어서면 1만여 권의 서적이 꽂혀 있는 서가가 눈에 들어온다.
직원들의 독서를 위해 박 회장이 마련한 도서관이다.
지난 89년5윌 박 회장이 1천 권의 도서를 기증하면서 문을 열었다.

<비서 없이 해외 출장>
l층에 도서관을 설치한데 대해 박 회장은『오가다 책을 보기 쉽도록 하기 위해』라고 설명했다.
금호MBA과정은 인재양성을 위한 독특한 교육제도.
작년에 제도화된 금호 MBA 과정은 대리 급 이상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서울대·연대·고대에 5개월간 위탁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교육과목은 경영학·영어·일어 등이다. 작년에 1백60명이 연수를 받았다.
아침에는 매일 자율학습 시간을 두고 전 직원이 어학 공부에 매달린다.
당초 출근 시간이 오전8시였는데 회사가 30분, 직원들이 30분씩 손해보기로 하고 오전 7시30분부터 8시30분까지 1시간의 짬을 낸 것이다.
박 회장은 오전7시에 출근한다. 그는 직원들의 컴퓨터 교육에도 남다르게 신경을 쓰고 있다. 신입사원들은 한 달간 컴퓨터 위탁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는 서울 반포 동 자택에도 IBM컴퓨터를 들여놓고 있다.
박 회장의 경영스타일은 한마디로 요약된다. 합리주의.
오랜 미국유학과 학자생활을 통해 합리주의가 몸에 배 있다.
해외 출장 때는 물론 국내에서도 비서를 데리고 다니는 법이 없다. 아예 수행비서가 없다. 점심때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사옥 지하에 있는 구내식당에 나타난다. 와이셔츠 차림이다.
일반 사원들과 함께 서서 밥을 타 가고 먹성이 좋아 남김없이 먹는다.

<구내 식당서 점심도>
회장이 사원들과 나란히 줄을 서서 밥을 타 가니까 주방장이 음식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그의 건강은 타고났다.
내년이면 환갑인데도 흰머리가 거의 없다. 기껏해야 50대 초반쯤으로 보인다.
별다른 운동을 하지 않고 골프와 등산을 가끔씩 하는 정도인데도 체력이 좋은 것은 음식을 가려먹지 않는 잡식성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어느 대학교수와 양식을 먹다 그 교수가 남긴 음식까지 먹어 함께 갔던 비서실 직원이 민망해(?) 했던 적까지 있다. 스스럼없는 행동 때문에 금호그룹의 직원들은 그를 대학교수처럼 잘 따르고 있다.
사훈·사가도 없다.『격식이 싫다』는 게 그의 답변이다. 그러나 간혹「독재」를 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금호 그룹 사옥 전체를 금연 빌딩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올해부터 이 회사 내에서는 임직원은 물론 외부 손님들도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고 있다.
위아래를 막론하고 담배를 피우다 적발되면 승진에서 누락시키기로 했다. 물론 회장 스스로도 담배를 끊었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세계 최초의「금연빌딩」에 관심을 갖고 취재해 가기도 했다.
박 회장은 성질이 불같다. 그러나 화를 낸 뒤에는『내가 스스로 참지 못해서…』라고 겸연쩍어 하며 직원들을 달래주기도 한다.
그는 이같은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회장실에「정사제노」라는 글을 써두고 있다. 비서실직원들에게 지시해 서예가의 글씨를 받아 왔다.
그의 합리수의 밑에 숨겨진 독재와 불같은 성질은 반드시 단점만은 아니다. 기업 경영에서는 이같은 그의 성격이 추진력으로 나타난다.
84년 선친인 고 박인천 회장이 작고한 뒤 회장에 오른 그는 9개의 계열사를 4개로 통·폐합 하는 피나는 자구노력을 기울었다.
금호실업과 삼양타이어를 합병, (주)금호를 만들었고 금호 건설과 광주고속을 합쳐 (주)광주고속, 금호화학과 한국 합성고무를 금호 석유화학으로 통합, 발족시켰다.
그러나 86∼88년의 호황과 감량 경영에 힘입어 사세가 급격하게 확장되고 있다. 현재 계열사는 23개에 이른다.
88년 재계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제2민 항 아시아나 항공의 설립은 제2창업 신화의 대표적인 사례다.
박 회장은 아시아나 항공 설립 과정을 둘러싸고 뒷말이 많은데 대해『당시 정부에 신청 서류를 냈던 기업은 금호뿐이었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재계·관계·학계에 걸쳐 발이 넓다. 이는 그의 화려한 경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재계인사들 중에서는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 구자경 럭키금성 그룹 회장 등과 가깝다. 최창락 전경련 부회장과는 고교·대학 동창이다.

<4형제가 경영 참여>
따라서 비서실에는 별도로 정보 팀을 두고 있지 않다.
작년도 금호 그룹의 매출액은 1조4천억 원. 올해는 2조2천억 원으로 늘려 잡고 있다.
현재 매출액 대비 기술개발 투자비의 비중이 2%를 밑돌지만 올해 3%, 수년 후에는 7%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그룹 경영에는 정구(54·그룹 부회장 겸 광주고속 사장)·삼구(46·아시아나 항공 사장)·찬구(43·금호 몬산토 사장)씨 등 4형제가 나란히 참여하고 있다.
5남 종구씨(33)는 아주대 교수.
형제들간에는 지분 율이 정해져 있어 새 회사를 만들 때 똑같이 참여한다. 형제간 불화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다.
다행스럽게 4형제가 아들을 한 명씩 만 두고 있어 3세 체제에 들어서도 지분을 유지에 큰 어려움이 없을 전망이다.
박 회장은 더구나『아들(21·미국 유학 중)에게 기업 경영을 맡기지 않고 학자로 키울 생각』이라고 밝히고 있다. <길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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