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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평] 대학의 미래, 국제화에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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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999년 볼로냐 선언을 시작으로 가시화된 유럽의 교육통합 움직임은 지난 9월 독일의 베를린회의를 통해 더욱 구체화하고 있다. 볼로냐선언은 2010년까지 유럽의 학생.교수.연구자, 교육 및 연구기금 등이 포르투갈에서 러시아 극동지역에 이르기까지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그야말로 국경 없는 교육공동체 형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목표가 달성된다면 수백년 전통을 자랑하는 유럽의 2천여개 대학과 1만여개 고등교육 기관이 하나의 교육 시스템으로 통합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거대한 유럽 교육공동체의 형성을 의미하며, 유럽연합(EU)이 향후 미국과 함께 국제 교육시장을 양분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언어면에서나 역사적으로 가까운 남미국가들은 이미 EU와의 교육 연계를 모색하는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행보 빨라진 유럽의 교육통합

유럽의 교육통합은 유럽 국가들의 통합과정이라는 의미 외에도 국제사회에서 교육시장의 확보와 수지의 확대라는 시장 논리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외국대학에 유학하고 있는 학생 가운데 3분의1이 미국에 집중돼 있으며, 이들 유학생이 미국 경제에 가져다주는 순 경제효과만도 연간 1백20억달러를 상회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럽의 교육통합 노력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유럽의 교육통합은 교육의 경쟁력 제고와 이를 위한 교육의 국제화 전략이라는 측면에서도 파악돼야 한다.

유럽의 교육통합 노력은 교육시장 개방을 앞두고 경쟁력있는 교육 시스템 수립이 절실한 상황에 처해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올해 유학으로 인한 우리나라의 교육수지 적자는 공식적으로 20억달러에 달하고 있으며, 비공식적으로는 그 배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우리가 한 해 해외유학에 지출한 비용은 외국인이 한국유학에 쓴 비용의 약 1백20배에 이르고 있으며, 서비스수지 적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교육수지 적자는 해마다 약 50%씩 증가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하에서 교육이 서비스상품으로 분류돼 교역대상에 포함돼 있으며, 그 결과 우리의 교육시장이 개방의 압력에 직면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상황은 교육시장의 확보와 국가경쟁력 제고라는 차원에서 더욱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요구받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장기적인 교육정책의 수립과 대학 차원의 자구노력이 동시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2003년 현재 미국대학의 유학생 중 가장 많은 학생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위 5개국은 인도.중국.한국.일본.대만 등 모두 아시아권으로 이들 국가 출신의 유학생 수는 전체의 45%를 상회하고 있다. 또한 한 연구에 의하면 2025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유학생 수가 지금의 세배가 넘는 7백만명에 달할 것이며, 이중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권 출신이 7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수치는 우리에게도 잠재적 교육시장이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국제화된 교육 시스템의 확립을 통해 세계 유학생의 절반을 차지하는 아시아권에서 교육의 허브로 자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싱가포르 대학의 국제화 노력은 눈여겨 볼 만하다.

*** 잠재적 교육시장 장점 살려야

싱가포르의 대학들은 동남아국가를 대상으로 교육의 틈새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해 나가고 있다. 학부학생의 20%, 대학원생의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외국 유학생 중 대부분이 동남아시아 출신이라는 사실은 교육에서 아시아시장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국가경쟁력의 원천은 교육분야의 경쟁력에 있다. 한국 대학이 생존하는 길은 국제화일 수밖에 없으며, 외국 저명대학 및 연구기관들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외국 학생을 유인하고 국내 학생의 탈출을 막아야 한다. 질 높은 교육, 경쟁력 있는 연구, 효율적인 학사행정 등 국제기준에 걸맞은 대학으로 탈바꿈하지 않으면, 우리의 대학은 국제교육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대학의 국제화에 대한 정부의 비전과 지원, 그리고 대학 스스로의 노력이 가일층 요구된다.

이승철 한양대 국제학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