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긁어 부스럼 만드는 주택정책/신성순(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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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해부터 금년에 걸쳐 공교롭게도 미국과 일본 두나라의 경제가 똑같이 부동산경기 침체로 홍역을 앓고 있다.
미국에서는 2백여개의 부동산금융회사가 도산,일반금융계로 파문이 확산되고 있고 일본에서도 대형 부동산회사와 단기 금융회사들이 잇따라 도산하는 수난을 겪고 있다.
미국의 경우는 전반적인 경기침체로 부동산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감소,돈을 빌려 집을 지었던 부동산업자들이 빚을 갚을 수 없게된 때문이고 일본에서는 지나친 부동산가격 상승에 대해 정부가 금융 및 세제상 규제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경기침체로 총체적 난국론까지 나왔던 89년에도 부동산가격이 하락했다거나 새로 지은 주택이 분양이 안돼 건설업자들이 애를 먹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오히려 아파트가격 폭등으로 건설부장관이 교체되고 신도시건설계획이 서둘러 마련되는 등 심각한 상승파동을 겪었다.
지금도 부동산가격은 상승일로다. 땅값은 토지공개념 입법과 거래에 대한 직접규제,그리고 대기업그룹 보유 부동산에 대한 초법규적 매각조치 등으로 다소 진정된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주택가격은 올들어 3개월동안에도 이미 서울에서 4.1%나 오른 것을 비롯,전국적으로 3.3%나 뛰었다는 주택은행의 보고서가 나왔다.
중앙경제신문의 자체 조사결과에 따르면 서울의 아파트 평당가격은 88년 4월 평균 2백88만원에서 91년 4월,즉 올봄에는 7백27만원으로 3년사이 2.6배가 올랐다. 같은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5%였던 점을 감안하면 아파트값이 일반 물가상승률을 10배나 앞지른 셈이다. 강남의 어느 아파트는 최근 69평짜리가 11억원에 거래되어 평당 가격이 1천5백94만원을 기록했다는 보도도 있다.
아파트 한채에 10억원이 넘는다니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정부가 주택문제를 정책의 최우선 과제중의 하나로 꼽고 문제해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가운데 이처럼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88년부터 주택 2백만가구 건설 5개년계획에 착수,당초 예정보다 빠른 속도로 사업을 진행시키고 있으며 건설경기의 과열이 문제가 되고 있을 정도다.
또 지난 2년간 다섯차례나 주택공급규칙을 고쳐가면서 새로운 아파트공급이 주택가격 안정으로 이어지도록 애를 쓰고 있다.
그런데도 주택,특히 아파트가격이 고개를 숙이기는 커녕 오히려 일반 물가상승을 크게 앞질러 경제·사회적 불안요인이 되고 있다니 우리의 주택정책이 어딘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우리의 경우 집값은 구조적으로 오르게 돼 있다.
주택의 절대물량 부족으로 전체가구의 30% 정도가 내집을 갖지 못하고 있으며 서울의 경우 그 비율은 40%를 넘는다. 게다가 매년 40만쌍 정도의 신혼부부가 탄생,핵가족화 함으로써 신규수요를 늘려나가고 있고 농촌인구의 도시진출도 주택난을 가중시킨다. 뿐만 아니라 소득수준의 향상으로 셋방살이에 머무르던 사람들이 내집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주택공급 물량이 전례없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시점에서 값이 오히려 더 치솟는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정부의 주택정책이 근본부터 잘못되어 있지 않나하는 의념을 갖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사실 정부의 정책에 선뜻 납득 안가는 점이 없지 않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시가보다 훨씬 낮은 아파트분양가격의 책정이다. 지금 정부의 주택공급 정책의 기본틀은 다세대주택인 아파트의 물량확대에 초점을 맞춰 모자라는 택지를 공영개발 방식으로 조성,건설업자에게 싼값에 공급하고 그 대신 건설되는 아파트의 규모와 가격을 정부 통제아래 두는 것으로 돼 있다.
그리고 아파트분양가격을 시가보다 훨씬 싸게 책정함으로써 일반 주택가격의 안정을 유도하고 동시에 시가와 분양가의 차액중 일부를 채권입찰방식으로 흡수,모자라는 주택건설사업의 재원으로 충당한다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채권입찰 금액까지 합쳐도 시가를 크게 밑도는 이같은 분양가격체계는 주택가격을 안정시키는데 기여하기 보다는 오히려 당첨자에게 엄청난 불로소득을 안겨줌으로써 신규아파트를 투기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당첨만 되면 한꺼번에 수천만원 혹은 수억원의 이익이 생기는데 누가 이런 기회를 마다하겠는가. 결국 정부의 현 주택정책은 투기와 사행심리를 조장하고 불요불급한 주택잠재수요를 투기현장으로 불러내 가수요를 유발하는 한편 일반아파트와 분양아파트간의 가격상승작용으로 전체 아파트값을 천정부지로 끌어올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더욱 이해가 안가는 대목은 정부가 무엇때문에 복지차원을 넘어선 30∼40평의 중형아파트나 50평이상의 대형아파트 분양에까지 직접 개입,왜곡된 가격체계로 투기를 부추기느냐는 점이다.
주택문제가 복지정책의 주요과제임에는 틀림없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집없는 영세민에게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주거공간을 확보해주는 일이지 정부의 지원없이도 내집을 마련할 수 있는 계층의 집문제까지 걱정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본다.
더욱이 지금처럼 부작용만 일으킬 바에야 아예 손을 떼고 시장기능에 맡기는 편이 낫지 않을까 여겨진다.
주택정책의 전환에는 물론 일시적 충격으로 집값 상승등의 부작용이 따를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근본이 잘못되어 있다면 한때의 충격이 두려워 손을 못댈 일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앞으로의 주택정책은 물량공급을 계속 늘려나가되 복지차원의 영세민 주거공간 확보는 정부가 책임지고 중산층 이상의 주택공급은 시장기능에 맡겨 거래의 정상화가 이루어지도록해 근원적인 공급부족에 따른 투기의 소지는 재산세 과표현실화로 해결해 나가는 방안을 검토해볼 단계에 오지 않았나 싶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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