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40년 '投身의 문학'을 評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소설가 황석영의 문학 이력과 인생 역정을 섣불리 압축해서는 자칫 많은 것을 잃게 된다.

문학평론가 최원식이 "요즘 읽어봐도 쨍쨍하다"고 표현한 단편 '입석부근'으로 스무살인 1962년 '사상계'를 통해 등단한 후 황씨의 행보는 한곳에 안주하기를 마다한 적극적인 투신(投身)과 반대급부로 찾아온 역경, 그에 대한 문학적 결산으로 점철된 고난에 찬 것이었다.

문학평론가 임홍배는 60년대 베트남전 참전, 70~80년대 민주화운동, 89년 방북으로 이어진 황씨의 경험을 험난한 시대의 중압을 자기 몫의 삶으로 감당하느라 가장 혹독한 수업료를 치른 경우로 표현했다. 값비싸게 얻어진 '삼포가는 길''무기의 그늘' 등 황씨의 대표작들은 작가.평론가 등 이 시대 문단 구성원들이 최고의 작품으로 꼽고 있다.

올해는 황씨가 환갑을 맞은 해다. 출판사 창비는 황씨의 갑년(甲年)을 계기로 40년 문학세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평론집 '황석영 문학의 세계'를 출간했다. 현실과의 정면대결을 통해 갈수록 작품세계를 깊게, 풍요롭게 하는 황씨의 저력의 원천이 어디에서 연유하는지를 찾아보자는 취지다.

3백여쪽의 평론집은 황씨의 출생과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 성장과정과 작품 집필 뒷얘기, 방북체험 등을 최원식씨에게 털어놓은 대담 '황석영의 삶과 문학'으로 시작한다. 1.2부에는 국내.외 평론가.작가들의 황씨 작품론 12편을 모았고, 마지막 3부에는 소설가 송기숙씨 등 지인들의 황씨에 대한 인상기를 실었다.

황씨 작품에 대한 작품론들 중 미국.프랑스.일본의 평론가.작가들이 한결같이 '무기의 그늘'을 분석 대상으로 선택한 점이 인상적이다. 임씨의 지적대로 '무기의 그늘'이 평자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점은 그만큼 문학적으로 풍요롭다는 방증일 것이다.

일리노이 주립대의 시어도어 휴즈 교수는 '혁명적 주체의 자리매김'이라는 글에서 남한의 독자들이 '무기의 그늘'을 읽으며 베트남민족해방전선과 스스로를 동일시하기를 바라게 된다고 분석했다.

또 '무기의 그늘'은 장이 바뀔 때마다 안영규가 주인공인 탐정소설에서 팜민이 주인공인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평론가 오타 마사쿠니(太田昌國)는 '무기의 그늘'을 통해 베트남 체험에 있어서 일본에서 반전운동을 하던 '자신들'과 한국의 '황석영들' 사이에 결정적인 낙차가 있었음을 절감하게 됐다고 밝혔다.

한편 이달 말에는 황씨의 새 장편소설 '심청, 연꽃의 길'이 출간된다.

신준봉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