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귀금속 상|8천여 세 공장 "예술품 창조" 자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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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종로3가 단성사 극장과 종묘 시민 광장일대는 귀금속 제조·판매상이 밀집해 있는 국내 최대의 귀금속 판매 시장이다. 다이아·루비·사파이어 등 4백여 귀금속상의 쇼윈도에 진열된. 각종 금은제품의 현란한 광채가 본능적으로 귀금속을 선호하는 여자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이 거리에서 전국 귀금속 가공품의 80%이상을 생산합니다. 반지만 해도「민짜」부터 다이아까지 2천여 종이 넘지요』
17년째「우수사」금은방을 경영하는 김평수 사장(40)의 설명.
전국 3만여 귀금속 판매상에 금은 제품을 도매로 넘기는 이 거리 금은방의 특징은 제품가격이 모두 50만원 이하라는 점.
『50만원이 넘으면 60%의 특별 소비세가 붙어 배보다 배꼽이 크지요』
이 거리가 본격 형성된 것은 86년부터.
종묘시민 광장 자리에 흩어져 있던 귀금속 상들이 건물철거와 함께 이 거리로 몰려든 것.
『조선조 때부터 이 지역에 귀금속 세 공업이 발달했다는 기록이 있지요. 당시 종로 3가 일대에는 기생집이 즐비한 화류의 거리였답니다. 기생 등 화류계 여성들이 몸치장을 위해 금은제품을 즐겨 찾았고 이같은 수요에 맞춰 귀금속 세 공업이 발달했답니다』
S귀금속 상 하정인씨(38)가 전하는 거리의 역사다.
사람들이 금은 제품을 선호하는 것은 제품의 희귀성·불변성·환금성 때문이다.
『6·25동란 이후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환금성 때문에 금제품을 선호했지요. 금반지·목걸이의 경우도 몸에 붙이기보다 장롱 깊숙이 감추어 두는 게 상례였으니까요.』
그러나 80년대 들어서면서 환금성보다 패션위주로 귀금속을 선택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전국 귀금속 제조업 협회 손한규 사무총장(60)은『최근에는「토틀 패션」바람이 불면서 옷과 구두에 맞는 모양·빛깔의 금은 장신구 선호 경향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그러나 발지 같은 것은 만들지 않지요. 장인정신이 용납하지 않거든요』
이 거리에는 줄잡아 8천여 명의 세공 장인이 몰려 있다.
손재주 하나로 나름대로 독특한「예술품」을 창조하고 있다.
『주물을 만들어 다듬고 깨알같은 다이아·사파이어 등을 매끄럽게 끼우기 위해서는 10년 정도 수련기간이 필요하지요.』
망치질부터 시작한지 20년이 넘었다는 김창수씨(38)는 이제 일류 디자이너로 변신했다.
금은 장신구가 유행을 타면서 똑같은 모양만을 계속 만들어 낼 수 없어 외국 패션잡지도 보고 지난해에는 이탈리아에 가 본 고장의「세공」을 둘러봤다.
금은 세공의 생명은 정교함과 미세함이다. 때문에 세공장인들은 대부분 안경을 끼고 있다. 건강도 크게 해쳐 정년은 40세.
오세한씨(32)는 귀걸이만을 15년째 만들어 온 장인.
깨알(작은 구슬형 귀걸이) 에서부터 주먹만한 것까지 6백∼7백 종의 귀걸이를 혼자서 디자인해 만들고 있다.
『99%가 핀형이에요. 아무래도 귀를 뚫은 사람은 귀걸이가 필수 아니겠어요.』
그러나 이 깨알같은 귀걸이에도「14K」라는 함량표시와 함께 세원 사라는 상호를 꼭 새겨 넣는다.
『4백 개 업소 모두 자신들의 상호를 새겨 넣지요. 그만큼 자부심이 대단하지요.』
이 거리 출신 2천여 명의 금은 세공장인이 현재 일본에서 일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깨알같은 큐빅(인조다이아)하나 박는데 임 가공 료가 5천 원이지만 우리나라는 6백원선.
따라서 솜씨 좋고 노임이 싼 한국의 장인들이「수출」되고 있다는 것이다.<박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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