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실 일치하는 야당상 세우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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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1야당인 평민당이 신민당으로 간판을 바꿔달고 새 출발을 다짐하는 것을 보면서 이제 정치도 명분과 실체가 일치하지 않으면 정당한 평가를 받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절실해 진다.
김대중 총재는 신민당의 출범을 67년 통합야당인 신민당 등장이래 24년만의 쾌거라고 주장하고 「통합야당」「지역당탈피」에 비중을 두지만 신민당이 당명을 바꾼 것외에 그 내용이 달라졌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은것 같다.
우리는 김총재나 신민당 스스로 이런 점을 모를리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남들이 믿거나 말거나 겉으로나마 새로운 표방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신민당의 고충에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선거 패배후 지역성에 힘입어 제1야당이 된후 평민당의 당세가 신장되었다거나 지역성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실적을 올렸다고 평가될만한 징후는 별로 발견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뇌물외유·수서사건 등을 겪으면서 정치의 뒷면에 감추어졌던 야당의 속성이 있는 그대로 드러남으로써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야당이라면 무조건 한점 접어주고 보던 프리미엄마저 잃어가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결과가 기초의회 선거의 패배로 나타났다는 지적을 신민당은 겸허히 받아 들이는 것이 신민당 출범으로 도모하려는 목표를 이룩하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때문에 집권을 지향하는 제1야당이라면 쇄신을 위해 낡은 껍질을 벗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지역당과 김대중 개인정당이란 약점을 극복하려면 진실로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점이다.
우리가 보기엔 당명을 바꾸고 이미 김대중 비판적 지지세력으로 소문나 있던 재야인사 및 지역구 사정이 여의치 않은 영남인사 몇명을 맞아들인다고 해서 신민당의 실체가 달라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김대중 총재가 좀 더 말과 행동에 일관성을 가지고 지역당 극복쪽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아무리 다급하더라도 정당개입이 금지되어 있는 기초의회 선거때 광주·전주에 내려가 『우리당 후보를 당선시켜 달라』는 식의 언동은 하지 않아야 한다.
또 문제가 생길때마다 확고한 지지자 몇만명을 동원한 군중집회를 열어 놓고 자기 당을 지지하는 민의가 충천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은 자제되어야 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정책·자금·조직·인물 구하기 등이 김총재 개인의 필요와 기준에 의해 집중 운용되는 1인지배의 사례들을 줄이려는 가시적인 개혁이 내부로부터 솟아나기를 바란다.
이런 점들에 대한 성실한 후속노력없이 말로만 『극우 극좌를 배제하고 안정속에 개혁을 추진하는 중도개혁정당』이라고 외쳐봐야 설득력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
아울러 지적하고 싶은 것은 지금 민자당이 국민의 눈살에도 아랑곳 없이 비정상적인 내부적 대권경쟁을 하고 계파싸움을 멈추지 않는 이유중 하나가 바로 제1야당이 허약하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여당이 정신 못차리고 제1야당이 왜소화되면 기존의 정당정치는 점점 더 신뢰의 바탕을 잃어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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