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세계바둑오픈' - 옛날 얘기 같은 曺-趙의 실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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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제8회 세계바둑오픈 8강전
[제4보 (52~68)]
白 조훈현 9단 : 黑 조치훈 9단

초등학생 때 일본에 건너갔던 두 사람. 그 중 조훈현은 한국의 일인자가 되었고 조치훈은 일본의 일인자가 되었다. 마치 지어낸 옛날얘기 같은 실화다. 세월이 많이 흘러 초로의 모습으로 두 사람은 다시 만났다. 다시는 보기 힘든 명승부의 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온다.

말은 한마디도 없다. 평생의 숙적을 대하듯 그렇게 마주앉아 있다. 여유롭던 바둑판 위에서는 서서히 바람이 일고 있다. 조훈현9단이 54, 56의 수순으로 흑 모양을 우형으로 만들려 하자 조치훈9단도 57로 따내며 굴복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한다.

54, 56은 약간 지나쳤을까. 이 수가 기대한 것은 '참고도' 흑1의 연결. 그러나 이것은 백2 한방으로 흑의 형태가 포도송이로 변한다. 백4, 6으로만 움직여도 바로 수가 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일류기사가 이 같은 참혹한 우형을 감수할 것인가. 그런 점에서 54, 56은 너무 일방적인 주문이었다는 해석이다.

曺9단은 끝내 적당한 팻감을 발견하지 못하자 58의 옆구리에 붙여 변화를 구했다. 그래도 백은 결국 59의 단수에 잇지를 못하고 60(54의 곳)으로 따내지 않을 수 없었고 이 수를 본 趙9단은 61로 빵 때려냈다.

"백이 당했습니다"라고 유창혁9단은 명쾌하게 결론을 내린다. 얼핏 58, 62로 흑집이 무너진 것 같지만 61로 따낸 수가 매우 두터워 전체가 개운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흑63의 침입이 통렬하다. 단순히 집을 깨는 정도가 아니라 백을 허공에 번쩍 들어올려 곤마로 만들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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