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베를린 심퍼니(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통일독일의 무대가 되었던 베를린의 이름은 「새끼곰」이란 뜻에서 유래되었다.
이런 설화가 있다. 지금부터 8백년전 한 사냥꾼이 산에서 큰 곰을 만났다. 시냥꾼은 곰을 쫓아 곰의 굴속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굴안에는 어린 새끼곰이 어미곰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냥꾼은 곰사냥을 단념하고 그 부근에 집을 짓고 마을이름을 새끼곰(Barlein)이라 붙였다.
자칫하면 이산의 운명을 맞을 뻔한 어미곰과 새끼곰이 다시 만난 자리가 오늘날 동·서독일 재결합의 무대가 되었다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한때 대프러시아제국의 수도로,또 한때는 대독일제국의 수도로 화려한 영광을 누렸던 베를린. 그 베를린이 2차대전의 종결과 함께 동·서독으로 분단된 것은 정치적 기능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의 기능까지 분단시킨 것이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음악의 도시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던 수많은 오페라와 오키스트라의 동서분할이었다.
그중에서도 베를린 시민들의 가슴을 가장 아프게 한 것은 유명한 베를린 국립가극장과 베를린 필하머니가 동·서베를린으로 각기 갈린 것이었다.
특히 유서깊은 베를린 필하머니를 서베를린에 넘겨주게 된 동베를린 시민들은 그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베를린필에 필적할 세계적인 콘서트 전문 오키스트라의 탄생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바로 1952년에 창단된 베를린 심퍼니 오키스트라(BSO)다.
당시 동독에는 드레스텐 국립관현악단,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같은 세계 정상급 교향악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기네 수도에서 활약했던 베를린 필을 서베를린에 「빼앗긴」 동베를린의 자존심은 그보다 수준높은 교향악단을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따라서 BSO는 창단초기부터 수준높은 연주를 베를린 시민에게 들려줄 수 있었고,이러한 기초작업이 있었기에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정상급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같은 BSO 성장은 특히 60년대 명지휘자 잔데를링크가 지휘봉을 잡고부터 더욱 눈부셨다. 베를린은 그 옛날의 영광을 다시 찾은 것이다. 그 음악의 수도를 대표하는 베를린 심퍼니 오키스트라가 중앙일보 초청으로 내한,오는 11∼12일 서울에서 연주회를 갖는다. 기대가 크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