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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광과 미크로의 세계」 석권|"렌즈는 우리 것 이상 없다"|일 니콘 카메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흔히 일본 장인, 일본의 기술자는 모방의 천재라고 말한다. 그러나 일본 장인의 모방은 모방 플러스 알파의 고부가가치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쌍안경·망원경 등 전전 군수 물자 하청 공장에서 출발, 카메라 분야에서 세계 제일이었던 서독을 누르고 초정밀 기계 분야에서 미국을 압도한 니콘사는 일본의 기술이 21세기에는 세계 무적일 수도 있다는 한 실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사진기의 대명사」처럼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니콘 카메라가 세계를 석권한 것은 기묘하게도 한국 전쟁 때부터다.
당시까지만 해도 일제 카메라는 독일제나 미국제의 모방·복제품 취급을 받아왔기 때문에 사진 전문가들에게는 장난감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 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세계에서 몰려든 사지기자들은 대개 「로라이플렉스」「라이카」「콘탁스」등 독일제 카메라를 자랑스럽게 메고 다녔으나 라이프지 사진기자가 의외로 일본제 니콘S 카메라가 성능이 뛰어나다는데 주목했다.
당시 뉴욕타임스지는 이를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라이프의 카메라맨은 한국전쟁에서 사용한 일본제 카메라와 렌즈가 지금까지 사용한 독일제보다 훨씬 우수하다』고 말했다. 카메라의 외관은 콘탁스와 똑같았으나 콘탁스와 라이카의 좋은 점만을 딴 데다 새로운 강치도 가미했다.
과거 일본 카메라는 외관만 아름답지 내부는 조잡하고 성능이 나빴으나 니콘은 정밀하고 뒤처리도 잘 돼있다.
일본이 전쟁에 패해 그때까지 군사용 광학 메이커였던 일본광학 (니콘의 전신)이 민수용 카메라 제조공장으로 전환한 게 46년이니 꼭 5년만에 고지를 탈환한 셈이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서독제 카메라를 그대로 분해, 모방·조림하는 단계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종래의 방식인 35mm 2안 반사(리플렉스)형으로 값도 엄청나게 비싸 대량 보급은 힘든 상태였다.
현재와 같은 자동 초점 (AF·오토 포커스)·자동 노출 (AE·오토 익스포저)의 1안 반사형의 개발에서도 니콘은 독일을 앞섰다.
니콘 카메라의 가장 대표적인 명품은 「니콘 F」 시리즈를 꼽는다. 현재까지 F, F2, F3, F4…, F801로 이어지는 「F 시리즈」는 니콘을 세계 제일의 카메라 메이커로 정착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최상의 품질」「사용하기 좋고 다기능인 최상품」「자동화의 추구」라는 목표를 내걸고 니콘사가 F시리즈를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40년 전인 50년대부터다.
니콘사를 다른 회사와 차별 화시키는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후지이 (등정달웅)이사 겸 카메라 사업부장은 『고품질·고기능·시장의 필요에 응하는 상품, 이 세상에 없는 니콘, 오리지널 상품으로 승부 하는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만큼 니콘사는 자신 있는 상품만을 생산한다.
니콘사의 사업 영역은 무척 넓다. 크게 영상 정보 분야, 산업 기계 분야, 건강 의료 분야를 망라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광과 미크로의 세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상품들을 내놓고 있다. 현재 니콘사의 매출액 구성에서 카메라가 차지하는 비율은 42%에 지나지 않고 그밖에 반도체 관련 기계 23%, 안경 제품 8%, 현미경 7%, 망원경 4%, 측정기·광학유리 3%, 측량기 3%로 다양하다.
90년 3월 총매출액이 2천4백11억엔 규모로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45·9%나 되는 해외형 기업이다.
니콘사의 오늘이 있기까지에는 세 차례의 큰 구조 변혁이 있었다고 후지이씨는 말한다.
처음은 군사용 광학 기계에서 민수용 광학 기계로의 변신, 곧 소비재로의 전환 단계로 1917년 창업이래 축적된 광학 기술과 정밀 가공·조림 기술을 베이스로 그때까지 만들던 쌍안경·현미경에 추가해 카메라·안경을 상품으로 내놓던 시기다.
두 번째는 산업용 기계로의 진출이다. 65년 전후부터 이미 「카메라 산업 사양론」이 나오기 시작했고 카메라 일변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 수요가 무한한 생산재·산업용기기로의 다각화를 꾀했다.
이는 니콘사가 단순한 카메라 생산 중소기업에서 인세기형 첨단 기업으로의 대 변환을 시도한 시기로 꼽힌다.
이때 개발한 반도체 관련 기계 초LSI제조 장치 (NSR스테퍼)는 그때까지 세계 시장을 독점한 미국 메이커를 누르고 니콘사를 21세기에도 살아 남는 기업으로 만드는 「니콘 제2의 명품」으로 탄생했다.
NSR스테퍼는 80년에 등장, 첫해에 단 세대 생산했던 것이 2년째는 20대, 3년째는 70대, 4년째는 1백50대, 5년째는 3백40대로 비약적으로 판매량이 증가했다. 단가 1억엔에서 2억엔을 넘어가는 초 고액 상품으로 매출고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85년을 분기점으로 카메라를 능가할 정도였다.
세번째의 전환기는 85, 86년에 찾아왔다. 세계적인 반도체 불황 시기가 엄습한데다 엔고로 수출이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그때까지 달러 권에서만 70%이상 수출한 카메라가 크게 타격을 받았고 반도체 산업의 불황은 스테퍼 매출 대수를 85년에 2백대, 86년에 1백60대로 크게 삭감시켰다.
현재 회장직을 맡고 있는 후쿠오카 시게타나 (복강성충)당시 사장은 이때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당시로서는 정공법 밖에 탈출 방법이 없었다. 고품질·고부가가치 노선을 관철한다는 것이다. 개발 부문에 대한 적극적 투자를 계속하는 한편 시장 규모에 맞춰 감량 생산 체제를 재 구축했다.』
후쿠오카 사장의 머리 속에는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좋은 상품이라면 비싸도 팔린다」는 원칙을 기술자들에게 재삼 호소하고 새로운 상품의 개발로 맞서자는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89년에 들어서자 경영 상황은 일변했다. 83년부터 개발을 시작, 이때 내놓은 최고급 카메라 「F801」과「F4」가 히트하기 시작했고 반도체 제조 장치도 반도체가 16메가, 64메가 시대를 지나 초LSI시대를 맞으면서 더욱 각광받아 매출이 급증한 것이다.
부가가치가 높고 개성 있는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세계에 공헌하는 니콘사가 되기까지에는 각 연구 부서의 독특한 분위기와 비강의 연마 기술도 특기할 만하다.
세계 제일의 스테퍼 방식 반도체 제조 장치를 만들어내는데는 「초정밀 기술에 도전하는 장인 집단」의 공헌을 꼽는 사람이 많다.
니콘이 오랜 기간 축적해온 렌즈제조의 비법은 세계 어느 기업도 따라잡기 힘들 정도의 고도 기술로 정평이 나있다. 한 예로 반도체 제조 장치에 사용되는 렌즈는 lmm의 두께사이에 1천2백76개의 선을 해상 할 수 있을 정도로 초고 해상력 렌즈다. 니콘은 이를 이미 60년대 초에 실용화, 마이크로필름 복사 장치에 써왔다.
일반 카메라 렌즈는 40개에서 50개 정도의 해상력을 지닐 정도이며 반도체용 기계 장치에 쓰이려면 울트라·미크로·니콜이라는 니콘사 렌즈로만 가능하다.
니콘사가 세계 제일의 카메라, 초LSI 반도체 기계 장치에 쓰이는 초고정도의 렌즈를 만드는 비결은 아직 어느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은 비법에 속한다.
혼슈 남쪽 이즈 (이두) 반도에 면한 사가미하라 (상모원) 공장에는 니콘이 가장 아끼는 장인들이 모여있다.
71년부터 가동한 이 공장은 니콘에서 사용하는 모든 렌즈를 생산한다. 초정밀 기계의 생명은 균일하고 투명도가 높은 렌즈에 있다. 때문에 렌즈 연마의 기술을 기계에만 의존할 수는 없어 대대로 기술을 전수 받은 장인들이 담당한다.
이들 연마공은 보통 4∼6개월의 수습 기간을 거치는데 렌즈 연마만 20년 이상 한 베테랑 선배들이 이들을 지도한다.
한 공원은 걸프 전쟁에서 위력을 발휘한 하이테크 무기에 일본제 반도체 부품이 많이 사용되었다는 얘기도 전하면서 니콘이 없으면 앞으로 반도체 생산도 힘들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기술 전쟁의 시대에 장인을 키우는 니콘의 저력은 정말로 놀랍다. 【동경=방인철 특파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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