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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 「KAL 007 참사」 이즈베스티야기사 게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동해 2백m 해저서 잔해 확인”/7년만에 소 신문서 추적 보도/“한소관계 해친다”곳곳서 압력
일본 강담사가 발행하는 주간지 『프라이데이』 29일자는 소련전투기에 의해 지난 83년 격추된 대한항공 보잉 747기의 바다밑 잔해를 담은 사진을 소련 이즈베스티야지로부터 입수,전재하면서 동지 사회부장 안드레이 일레슈씨의 기고문을 함께 실었다. 다음은 그 요지<편집자 주>.
여러분은 지금 동해 깊숙히 무엇이 감추어져 있는지,그리고 소련 잠수부가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를 알려주는 처음 공개되는 중요한 사진을 보고 있다.
83년 가을 동해 해저 2백m에서 촬영한 이 사진은 비극적인 대한항공 007편 보잉 747기 잔해다.
2백69명의 승객을 태운채 83년 9월1일 바닷속으로 사라진 수수께끼의 007편.
이 사진은 사건발생 2주후 촬영에 성공한 것이다.
수호이15 전투기 파일럿 겐나디 오시포비치 전 소련 방공군중령은 사할린 상공에서 1시간 이상 대한항공의 보잉 747기를 추적,지상의 지령을 받아 2발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렇게 시작된 비극의 원인은 오랫동안 세계의 이목을 모은 반면 소련에서는 일반인에게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건발생 7년만에 소련 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야가 처음으로 이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게 된 것이다.
오시포비치는 자신의 앞을 나는 비행기에 『민간인이 탑승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술회했다.
그리고 오시포비치의 발언은 오랫동안 소련군의 변명성 주장을 뒷받침했다.
오시포비치는 83년 당시 미군 정찰기에 의한 영공침범이 빈발하던 때라 이를 놓친다면 상부로부터 엄청난 책임추궁을 면키 어려웠기 때문에 사할린 상공의 밤하늘에 나타난 비행물체는 「적」으로 볼 수 밖에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는 과연 모든 진실을 알고 있을까.
그의 입을 열게하는 유일한 열쇠는 그의 심리적 변화며 발사버튼을 누르도록 명령한 인물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명할 기분이 있는가에 달려 있다.
물론 그 역시 모든 진실을 알고있진 않다.
그러나 그는 왜 사건발생 3일째 사할린에서 새로운 임지로 전근된 것인가.
소련 방공군 총사령관은 오시포비치 전 중령과 그의 가족의 이동을 위해 전용기를 대기시켰고 현재 이들 가족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연금생활을 보내며 딸기재배를 하고 있다.
취재중 우리들은 군관계자들로부터 몇번이나 같은 질문을 받았다.
『신문은 소련군의 권위와 국민의 신뢰를 실추시킬 일을 왜 하는가』『그러한 기사는 지금의 한소 관계를 해칠 뿐이다』라고.
결국 나는 이들 군당국자들로부터 이러한 발언외에 아무런 증언도 얻어내지 못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우리들의 취재에 관심을 표명하고 응원해주기로 했다. 또 많은 독자들과 일련의 사건관계자들로부터도 지원의 말을 들었다.
우리가 이 수수께끼의 사건을 풀려고 하는 것은 미국의 사건관련을 부정하기 위함이 아니다.
실제 83년 가을 모네론섬 근처 해안에서 실시된 수색작업은 그야말로 우리들의 죄를 숨기려는 듯한 것이었다.
보잉기의 추락현장에는 수십척의 선박이 집결했고 소련측 선박만도 50척을 넘었다.
미국과 일본의 선박도 상당수 있었다. 각국 선박의 미사일 발사대는 발사준비상태로 포탑은 커버가 벗겨져 있었다.
이들의 최대목적은 다름아닌 블랙박스를 회수하는 것이었다.
해저에서는 잠수부들이 작업에 참여하고 간혹 해군 잠수함들도 있었다.
2백m의 심해에서 1개월 이상 특별한 잠수시설에 머문다는 것은 이들 잠수부에게 있어서도 처음있는 경험이었다.
기체의 파편은 1.5㎞ 정도 범위에 걸쳐 널려있었고 그속엔 의류,어린이용 샌들,기체의 표면,비행기타이어 등 온갖 것이 포함돼 있었다.
해상에 올려진 물체들은 사진·필름 등에 수록된 후 군부가 회수해갔다.
그러나 아직 동해 해저에서 기체파편 등이 발견된 사실을 공표하고 있는 소련기관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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