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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언 장관 「대권 행보」빨라 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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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박철언 체육 청소년부 장관의 움직임이 최근 들어 급속도로 빨라지면서 정가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지난해 4월 김영삼 민자당 대표 최고 위원에게 어설프게 도전했다가 난타 당해 정무 장관직을 사퇴한 이후 한동안 정치적 발언이나 행동을 자제해오던 그가 이번에는 상당히 정교하게 전열을 가다듬고 있기 때문이다·
박 장관 진영의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은 여러 곳에서 포착되고있다. 우선 사람을 끌어 모으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다.
박 장관의 핵심 참모인 강재섭 의원 (민자당 기조실장)이 대지회란 것을 구성, 민자당내 원내 인사를 적극 흡수하려 하고 있고 박 장관의 사조직인 월계수회도 원내 인사와 원외 지구당 위원장을 대거 영입하고 있다.
대지회는 당초 골프 모임으로 출발했으나 내막적으로는 외부 시선 때문에 월계수회 가입을 꺼리는 현역 의원을 망라하고 있다. 최운지 (회장) 조영장(총무)박우병 안영기 이상득 황윤기 장영철 박진구 고세진 황성균 박지원 이영문 김길홍 김종기 강재섭 의원 등 18명인데 별도의 사무실을 갖고있다.
박 장관측이 최근 들어 월계수회와 그 방계 조직에 대한 조직 정비 및 강화 작업을 은밀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도 범상치 않은 조짐이다.
박 장관측은 지난 2월 박 장관이 정무 장관으로 재직할 당시 정무 차관을 지냈던 언론인 출신 이재원씨를 책임자로 해 월계수회 조직을 보다 체계화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조직폭력배 관련설로 문제가 된 이후 지역의 지탄받는 인사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인사들에 대한 정비 작업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박 장관 자신이 각종 체육 청소년 관련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 자신의 얼굴알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으며 여권의 금단 지역인 광주에 내려가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는가하면 부산·전주 등 전국 주요 도시 순회를 빈번히 하고있다.
박 장관 진영의 이 같은 움직임은 이미 14대 총선에 대비한지지 기반 확보 차원을 넘어섰다는 것이 정가의 일치된 평가이며 사실상 「포스트 노」를 겨냥한 대권 도전에 나섰다고 보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박 장관 본인은 짐짓 『정치에 병든 환자도 아니고 내 나이나 현재의 상황으로 보아 그렇게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며 차기 대권 도전설을 직접적으로는 부인하면서도 『난마처럼 얽힌 금년 하반기 정국을 여야 지도자가 잘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 정관하고 있다』고 말해여운을 남기고 있다. 한술 더떠 민자당내 민주계측이 조기 전당 대회 소집과 당권의 조기이양요구를 정당화 시키기 위한 명분 축적용으로 박 장관 대권 도전설을 부각시켜 전술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박 장관 진영의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여러 가지 움직임들은 자세히 보면 박 장관이 차차기가 아닌 차기 대권을 꿈꾸고 있다는 반증들이 수두룩하다.
박 장관 캠프가 이처럼 「포스트 노 전략」을 서둘러 차기 대권을 겨냥키로 한 배경은 크게 보아 세 가지로 분석되고 있다.
우선 금년 6월 광역 의회 선거가 끝나게 되면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되고 조기전당 대회 소집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민주계의 압력 때문에 김영삼 대표가 입장 표명을 강요받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고 이에 맞서 박태준 최고 위원이나 이종찬 의원 등 대권을 내심 염두에 두고 있는 민정계 중진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경쟁을 선언하지 않겠느냐는 상황 판단 때문이다.
이 경우 14대 총선을 전후하여 벌어질 민자당내 헤게모니 쟁탈전은 대권 경쟁 참여를 공개적으로 표방한 세력중심으로 편성될 수 밖에 없고 그때 미리 당내 주도권 경쟁에 끼어들지 않은 쪽은 중심권에서 밀려날지 모른다는 점을 의식한 것 같다.
둘째로 김 대표가 3당 합당의 전제 조건인 내각제 개헌을 물 건너가게 한 마당에 노 대통령의 사후 문제가 걸린 6공의 마무리 작업과 6공을 7공으로 연결시키는 문제에 김 대표의 독주를 수용할 수 없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물론 박 장관은 현재의 분위기로 보아 노 대통령이 김 대표를 차기 후계자로 지명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차기 후계자는 노 대통령이 자기의 손을 들어주기 바라는 김영삼 대표의 생각과는 달리 자유 경선을 통해 선출될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이다.
그렇다면 현재 민정계내에서 김 대표와 대결할 뚜렷한 인물이 부각되지 않은 터에 먼저 뛰는 쪽이 상대적으로 유리하고 잘하면 승산까지 바라볼 수 있다는 계산을 했음직하다.
마지막으로 박 장관의 절대적 후원자며 사실상 힘의 원천인 노 대통령이 물러났을 경우 자신이 받게될지도 모르는 정치적 탄압을 적극적으로 방어하기 위해서는 김 대표와 가급적 빨리 동일한 반열 위에 올라서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아무튼 박 장관 진영은 최근 들어▲대여론 이미지 개선▲원내지지 세력 확대▲사무처 요원 확보▲전국적 세를 과시할 수 있는 조직 강화에 행보가 빨라졌다.
이 같은 정치적 사전 정지 작업이 이루어질 것을 전제로 박 장관측은 대권 도전을 향한 몇 가지 다음 단계 전략을 수립해 놓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선 현행 대통령 직선제가 고수될 경우에 대비한 전략이다. 박 장관 캠프는 광역 의회 선거가 끝난 7∼8월중 김영삼 대표를 비롯한 민주계가 어떤 형태로든지 당권 보장 요구와 김 대표의 여권 내 위상을 강화시키려는 강공을 펼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정치적 이해 관계가 있는 이종찬·이춘구·이한동 의원 등 민정계 중진들을 비롯한 범민정계 세력이 본능적으로 반발하고 나설 것이고 이들과 공동 전선을 구축, 일단 김 대표측의 기도를 무력화 시키겠다는 전략이다.
두 번째 전략은 내각제 개헌을 다시 추진한다는 전략이다.
14대 총선 결과가▲물갈이 또는 세대 교체론의 의미를 부여할 만한 징후가 뚜렷하고▲13대 총선과 비교해 양 김씨의 세력이 현저히 감소했을 경우 양 김씨 스스로 자신들의 정치생명 연장을 위해 내각제 개헌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박 장관측은 보고 있다.
이 경우 내각제로의 개헌은 공개리에 추진, 성사시킬 수 있으며 3김씨 중 1인을 초대 수상으로 추대, 3김 시대를 마감한 후 차기 수상직을 박 장관이 맡도록 한다는 것이 박 장관 진영의 2단계 전략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박 장관의 이 같은 대권 구도가 과연 현실화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아직도 부정적인 시각이 더 많다. 우선 그의 힘은 뿌리가 없고 정계 등장 초기의 여러 가지 실수로 인해 대중적 이미지도 별로 좋은 편이 아니다.
그래서 김영삼 대표와 비교할 때 현재로는 악명이든 호평이든 우선 알려 놓고 보자는 속셈이다.
또 무엇보다도 민정계 내부에 반김 대표 세력 못지 않은 반박철언 그룹이 엄존하고 있고 이들이 과연 박 장관의 깃발아래 모일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김 대표측이 박 장관의 대권 도전은 민정계의 구심점을 분산시킬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불리한 것 만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도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30년 이상 대중 정치에 익숙한 김 대표측은 지금은 노 대통령의 지원을 따내기 위해 참는 것이지 박 장관을 상대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단숨에 결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있다.
박 장관이 14대 총선 공천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할 경우 김 대표는 물론 민정계 중진들이 강력히 반발할 것이고 그 경우 박 장관측의 의도대로 원내지지 세력을 확보할 수 있겠느냐는 점도 의문시되고 있다. <문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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