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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배출 오염물질(구멍뚫린 수질관리: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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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우리가 버린물 되마시는 셈”/합성세제 사용량 급증/생활하수처리 고작 30% 그쳐/마구버리는 폐비닐… 하천 썩어
주부 정혜숙씨(30·서울 신림동)는 8개월전부터 집에서 합성세제를 쓰지 않고 있다.
부엌용세제 대신 밀가루나 뜨물을 사용하고 샴푸·린스대신 밀가루·식초를 쓰며 빨래도 비누를 이용,손빨래를 한다.
『처음 비누로 머리를 감았을땐 때가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아 개운치 않았으나 6개월이 지난뒤부터 샴푸를 쓸때보다 더 상쾌하고 머리카락에서 윤기가 나는 것 같습니다.』
정씨는 처음엔 불편한 점이 없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합성세제 없는 생활」이 더 깨끗하고 경제적이라고 느끼고 있다.
정씨가 이런 생활을 하게된 것은 지난해 3월초 갑자기 손등에 부스럼이 나고 손바닥이 갈라진 것이 계기였다.
인근 병원에서 진찰받은 결과,인체에 무해하다고 선전하던 모유명회사의 합성세제를 맨손으로 사용해 생긴 「주부습진」이었다.
정씨는 이를 계기로 여성단체들이 개최하는 환경교육에 참가하게 됐고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많은 오염물질이 나오고 있는가,또 이들 오염물질이 자연과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가등을 알게 됐다.
그후부터 「나와 이웃」을 위해 조그마한 불편을 참고 되도록 환경오염물질을 만들어내지 않는 「무공해생활」을 하기로 다짐했다.
그러나 정씨같은 시민은 그리 많지 않다.
합성세제·비닐 등 대표적 공해물질이 가정에서 마구 쏟아져나와 수질오염의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10년새 3배로
전국에서 하루에 배출되는 생활하수는 1천3백60만t에 이른다. 전체 폐수량의 60%를 넘는 생활하수 가운데 처리되는 양은 전국 17개 처리장에서 3백여만t에 불과하다. 70%에 해당하는 1천여만t의 하수는 오염된 그대로 흘러나간다. 합성세제의 경우 국내생산량이 80년 7만3천2백t에서 89년 25만9천t으로 10년사이 2.5배나 늘었다. 이에 따라 합성세제와 비누의 판매량비율이 4대6에서 6대4로 역전돼 생활수준의 향상과 함께 합성세제가 과거 비누의 자리를 차지했다.
합성세제의 사용범위도 세탁용세제를 비롯해 그릇·과일등을 씻는 주방용합성세제·샴푸와 린스·무스·스프레이·표백제 등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최근 2∼3년간 주부교실중앙회·시민의 모임·YWCA등 소비자단체들의 조사를 종합해보면 대부분의 가정에서 적정세제사용량보다 3∼15배나 많은 과도한 양을 쓰고 있다. 금방 분해돼 오염원인이 되지 않는 비누와 달리 합성세제는 미생물에 잘 분해되지 않고 강물을 공기로부터 차단해 생태계를 치명적으로 파괴한다.
합성세제는 또 물속에서 부영양화를 촉진시켜 이에 따른 적조현상을 몰고와 하천을 썩게 한다. 인체에 축적돼 돌연변이를 일으킨다는 보고도 있다.
얼마전 강원도 한 국민학교 과학반에서 합성세제에 오염된 물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간단한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올챙이를 각종 합성세제 0.1%가 들어있는 물에 넣고 관찰한 결과 주방용세제가 든 물에서는 6분31초만에 죽었고 샴푸·세탁용세제에서는 20여분만에 물위에 떠올랐다. 가정에서 쏟아버리는 합성세제는 결국 강물로 흘러들고,그 강물을 정수·소독한 물이 식수로 가정에 공급된다. 시민들이 버리는 세제물을 시민들이 다시 마시는 셈이다.
그런 오염물질을 우리가정에서는 무작정 쏟아내고 있다. 환경선진국의 경우 합성세제의 위험성이 알려지면서 80년초부터 시민들이 앞장서 사용규제운동을 벌이고 있다.
○생태계도 파괴
합성세제와 더불어 대표적 생활환경오염물질로 폐비닐과 폐건전지를 들 수 있다.
89년 현재 전체 생활폐기물 가운데 폐비닐이 차지하는 비율은 15.1%로 연탄재 및 주방·채소쓰레기에 이어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가정이나 상점에서 필요 이상으로 비닐봉지를 사용,큰 환경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폐비닐은 농토에 묻힐 경우 50∼1백년동안 분해되지 않고 땅속에서 물과 공기의 흐름을 막아 농작물의 성장을 억제할 뿐 아니라 하수구나 강바닥에 버려지면 하수도를 막히게하고 어패류의 서식을 저해한다.
○지하수에 침투
폐건전지의 하나인 수은전지도 연간 1백60만개이상 버려지고 있으나 재활용되는 것은 10%미만으로 알려져 있다.
폐건전지에서 나온 수은은 지하수나 토양을 오염시켜 농작물·어패류에 축적,수은중독을 일으킨다.
그밖에 최근 사용이 급증하고 있는 1회용 기저귀도 자연상태에서 분해속도가 3백∼5백년이나 걸리고 인근 지하수를 오염시켜 전염병을 초래할 수 있다.
이들 환경오염물질은 생활하수나 쓰레기등을 통해 대부분 아무런 여과없이 하천에 흘러들어가거나 토양에 해마다 축적되고 있다.
또 생활쓰레기중 청량음료병등 몇가지 종류를 제외하고 재활용되는 오염물질은 거의 없다.
이같이 정부가 정화시설이나 재활용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시민들의 건강은 누가 지킬 것인가. 환경소비자단체들을 중심으로 비닐봉지 덜쓰기,무공해세제 쓰기등의 시민운동이 2∼3년전부터 벌어지고 있는 것은 자연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자구운동 확산
대한YMCA·전국 주부교실중앙회등은 매년 비닐봉지사용 억제를 위한 공청회를 열고 「헝겊 장바구니 보급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성루대 김정욱교수(환경학)는 『생활오염물질 배출억제는 장기적으로 보면 정부가 정화시설을 갖추는등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해결이 가능하나 당분간은 자구적인 시민운동밖에는 현실적으로 기대할 데가 없다』고 했다. 가정의 일상생활에서 오염배출을 가능한한 줄이고 깔끔한 뒤처리를 하는 것만이 공해로 가득찬 환경에서 시민들이 스스로의 건강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란 얘기다.<이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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