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NIE] 문화재는 나라의 얼·역사 담긴 상징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의 국보급 작품 21점이 포함된 화첩이 지난달 독일에서 영구 임대 방식으로 우리나라에 돌아왔다. 독일인에게 헐값으로 유출된 지 82년 만의 일이다. 해외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는 얼마나 되며, 이 문화재를 되찾아야 하는 이유 등을 공부한다.

해외 유출 문화재 현황=우리나라는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문화재가 해외로 반출됐다. 문화재청은 해외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가 모두 7만5311점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출된 우리 문화재를 소유한 국가는 20여 개국으로 일본이 3만4369점(45.6%)으로 가장 많고, 미국 1만7803점(23.6%), 영국 6610점(8.8%) 등 순이다.

현재 정부와 민간단체가 해외 유출 문화재를 돌려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따라 7월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국보 151호)이 기증 형태로 일본에서 환수됐다. 같은 달 임진왜란 때 진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김시민(1544~1592) 장군의 공신교서(왕이 신하에게 공신 칭호와 상을 내린 기록서)도 국민 모금 운동을 통해 일본에서 돌려받았다.

정선의 작품 '부자묘로회(夫子廟老檜. 29.5×23.5 cm)'. 공자를 모신 사당 앞 중앙에 소나무를 과감하게 배치한 뒤 나무 줄기 가운데를 하얗게 비우고 양 옆에 짧은 선으로 가지를 표현했다. [중앙포토]

어떻게 유출됐나=우리 문화재가 해외로 유출된 이유와 경로는 다양하다. 문화재청은 유출 문화재를 크게 불법 또는 적법 절차에 따라 반출된 경우로 나눈다.

불법 유출 문화재는 강대국이 약소국의 문화 유산을 도굴 또는 약탈 등의 형태로 앗아간 것들이다. 우리 문화재의 경우 임진왜란과 구한말(조선 말기~대한제국), 일제시대에 일본이나 서구 열강에 의해 많이 약탈됐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보관 중인 외규장각(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하기 위해 1781년 강화도에 설치한 규장각의 부속 도서관) 도서는 프랑스가 1866년(고종 3년) 병인양요 때 빼앗아갔다. 병인양요는 조선 국법을 어긴 천주교도를 처벌하자 프랑스가 함대를 파견해 강화도를 불법 침범한 사건이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유출된 문화재는 대개 구한말과 일제시대 때 일본과 서양 외교관.선교사 등이 문화재의 가치를 잘 모르는 백성들에게 헐값으로 사간 경우다. 정선의 화첩도 이런 사례에 속한다.

그러나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는 강대국이 무력 침탈과 식민지 상태에서 약소국의 문화재를 반출하거나 헐값으로 사간 것까지 유출 문화재 범주에 포함시킨다.

유출 문화재를 찾아야 하는 이유=일본과 프랑스.영국 등은 제국주의 시절에 약탈한 우리 문화재에 대해 "유출 문화재는 문화보편주의 관점에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자국에 둬야 한다"며 "유출 문화재가 자국에 들어온 지 오래돼 '귀화 문화재'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문화재는 인류 보편적 가치에서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 게다가 한 나라의 문화재 소유권은 함부로 침탈할 수 없는 고유 권리다. 문화 유산은 민족의 얼과 역사.문화 등이 집약돼 있는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된 외규장각 도서는 우리 문화 유산의 보고다. 이 도서는 조선왕조 600여 년 동안 국가와 왕실이 시행한 주요 행사와 절차를 글과 그림으로 남긴 보고서 형태의 '의궤' 191종 296권이다. 특히 의례의 전체 과정이 천연색 그림으로 제작된 데다 사용 물품과 인건비 목록까지 자세히 기록돼 우리 민족 생활사를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또 이 책에 담긴 각종 도구와 물품의 이름을 통해 사라진 옛 어휘까지 파악할 수 있어 국어사에도 요긴한 문화유산이다.

그래픽 크게보기


남은 과제=우리나라는 그동안 문화재 환수에 큰 역량을 보여 주지 못했다. 협상 전문가가 부족하고 국제적 반환 정보 수집에 능동적이질 못한 탓이다. 이제는 국제법.문화재 관계법 등에 밝은 전문가와 외교관.시민단체가 참여하는 기구를 만들어 유출 문화재 환수 운동을 적극 펼쳐야 한다.

또 국제회의나 포럼에서 우리의 문화재 상황을 알리는 홍보도 확대해야 한다. 이집트.인도.중국 등 약탈당한 문화재가 많은 나라와 연대할 필요도 있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