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서독/전차부활 늘어난다(특파원코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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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교통난 심각해 승용차보다 선호/구 동독선 재정난으로 폐쇄 위기
60년대말 우리나라에서 자취를 감춘 전차가 유럽,특히 동유럽 주요 도시에서는 아직도 주요 대중교통수단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구동독지역은 베를린등 28개 도시에서 전차가 운행돼 최근까지 대중교통수단 이용자의 55%가 이를 이용,세계 최고의 전차이용률을 기록했다.
구서독이 느리고 비싸며 장래성 없는 대중교통수단이란 이유로 전차를 대거 「퇴역」시킨데 반해 승용차를 구입하려면 10년이상 기다려야 했던 구동독 주민들에게 전차는 그야말로 빠르고 값싸며 안전한 「시민의 다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독일이 통일된지 5개월여가 지난 지금 이같은 상황이 역전돼가고 있다.
구동독의 전차들이 점차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반면 구서독지역에서는 미래의 교통수단으로 재인식돼 여러 도시들이 전차의 「재취역」을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구동독지역에서 전차가 운행단축과 운행중단 등의 수모를 겪고 있는 주된 이유는 구동독기업 공통의 어려움인 경영난 때문이다.
구동독정부의 막대한 재정지원으로 간신히 운영되던 전차는 통일후 본정부의 지원이 미미해지자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다.
게다가 통일이후 구동독주민들 사이에 중고차건,새차건 구서독제 승용차구입붐이 불어 전차승객이 크게 감소한 것도 경영난을 더욱 악화시킨 요인이 됐다.
안 데르 오데르 프랑크푸르트시의 경우 이와 같은 어려움 때문에 최근 전차와 시내버스의 운행을 대폭 줄였고 몇개의 전차노선은 폐지할 예정이다.
구동베를린 라이프치히·드레스덴등 구동독 주요도시의 사정도 이와 비슷하다.
이들 도시의 운수행정당국은 현재 터무니없이 싼 전차요금(구동베를린의 경우 20페니히,구서베를린의 버스와 지하철요금은 2마르크 70페니히)의 인상을 검토하고 있으나 재정난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게 중론이다.
결국 전차노선과 종사자들을 대폭으로 줄이는 방법밖에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진단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구서독의 도시들,예컨대 브레멘이나 카를스루에·프라이부르크·하이델베르크 등의 도시에서는 전차승객이 최근들어 오히려 늘고 있다.
시내의 교통지옥에 환멸을 느낀 시민들이 승용차 대신 전차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구서독에서는 한때 68개 도시에서 전차가 운행됐지만 이가운데 70% 정도가 60∼70년대에 폐쇄됐다.
그러나 최근들어 전차선호가 점차 늘어나자 전차노선을 폐쇄했던 여러도시들이 전차의 재취역을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67년 전차운행을 중단했던 구서베를린시는 기존의 구동베를린 전차노선을 연장,지하철·버스 등과 연계하는 전차노선건설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또한 78년 전차를 폐쇄했던 함부르크시도 곧 이를 재개할 예정이다.
오는 6월2일 시장선거를 앞두고 있는 함부르크의 시민­자민연정은 선거공약으로 「전차운행의 재개」를 내놓기까지 했다.
이들 구서독 주요도시들이 이처럼 전차운행재개를 계획하고 있는 것은 전차건설이 경제적으로 값이 쌀뿐 아니라 무공해 운송수단이란 점 때문이다.
즉 전차가 버스보다 공해가 적고 많은 승객을 실어나를 수 있으며 지하철 보다는 지형에따라 같은 거리를 10분의 1에서 1백분의 1까지 싼값으로 건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통일이후 동쪽과 서쪽의 전차는 이처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베를린=유재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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