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판 유전무죄 사건 7년 만에 '사필귀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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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인도판 '유전무죄(有錢無罪)' 논란을 일으켰던 여성 모델 살인사건은 발생 7년 만에 사필귀정(事必歸正)이 됐다.

19일 인도 일간지 타임오브인디아에 따르면 뉴델리 고등법원은 전날 유력 정치인의 아들인 마누 샤르마(31)가 고급 술집 바텐더로 일하던 모델 제시카 랄(당시 34세)을 살해한 혐의가 인정된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샤르마의 친구 2명에게 살인 방조와 범인 도피 혐의를 인정했고 나머지 6명에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보석 중이던 샤르마를 체포하도록 명령하고 법정 형량이 사형 또는 종신형인 형량 선고는 27일에 하기로 했다. 이 판결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기소된 9명의 피고인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한 올 2월 원심을 뒤집은 것이다.

<본지 3월 16일자 10면>

인도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번 판결은 1999년 4월 상류층이 출입하는 뉴델리의 술집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에서 시작됐다. 당시 술집에선 정치인과 경찰 간부들이 유명 여배우들과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자정이 넘어 술집을 찾은 샤르마는 "문을 닫아야 한다"며 술을 내놓지 않자 바텐더를 권총으로 살해했다.

경찰은 설탕업체를 운영해온 유력 정치인의 아들인 샤르마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관련자를 함께 기소했다. 7년간 끌었던 이 사건은 목격자들이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는 바람에 2월 무죄 선고를 계기로 영구 미제로 종결되는 듯했다.

그러나 인도 여론이 들고 일어나고 만모한 싱 총리까지 관심을 표명하면서 극적인 반전의 계기를 맞았다. 당시 시민들은 "누구나 (약자라는 이유로 억울하게 죽은) 제시카가 될 수 있다"며 판결 불복종 운동에 동참했다.

인도 중산층도 "사법 정의를 살려야 한다"며 촛불시위에 가담했다. 결국 법원은 재심에 착수해 10개월 만에 묻힐 뻔한 진실을 밝혀내 불법을 일삼아 온 인도 상류층의 월권행위는 사필귀정이 됐다.

장세정.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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