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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사기 살려야" 김 법무의 경제 마인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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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성호(사진) 법무부 장관은 최근 한 모임에서 금융감독위원회 윤증현 위원장을 만났다. 그러곤 "분식회계 유예기간(12월 31일)이 다 끝나가는데 기업들의 자진 고백이 잘 이뤄지고 있느냐"고 물었다.

윤 위원장은 "형사처벌을 완화해 주면 기업들이 고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김 장관은 "곧 좋은 소식이 있을 테니 기다려 보라"고 말했다.

며칠 뒤인 18일 낮, 김 장관은 기자 간담회에서 "기업의 사기는 살려줘야 하는 것 아닐까요"라며 '분식회계 고백 기업의 형사처벌 유예'를 발표했다.

12월 결산법인이 3월까지 분식을 자진 신고하면 불입건이나 기소유예로 형사처벌을 한시적으로 유예한다는 내용이다.

금감위 김용환 감독정책 2국장은 "법무부가 큰 결심을 했다"고 평가했다. 법무부는 그동안 형사처벌 완화를 주장해 온 금감위와 금융감독원의 입장에 부정적이었다.

김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법무부의 내년도 정책과제를 설명하며 상당 부분을 기업활동과 관련한 각종 규제 철폐에 초점을 맞췄다.

◆ 재경부 출신 보좌관 임명=김 장관은 8월 말 취임 직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도록 법률적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다. 평소에도 "법무부가 부당한 규제 철폐에 나서 기업을 도와야 한다"며 '유연한 기업관'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가 내년 정책과제로 내놓은 것 중 회사 창업과 관련, ▶주금납입보관증명서 제출 의무 삭제 ▶설립 등기 관련 표준양식 보급 ▶유사 상호에 대한 규제완화도 그의 '소신'에서 나왔다고 한다. 소송 남발로 피해를 보는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민사소송법 개정을 통한 반소(反訴.맞소송)를 확대하는 방침도 같은 맥락이다.

소신을 정책으로 펼치기 위해 김 장관은 재정경제부 소속 서기관을 자신의 정책보좌관에 임명했다. 법무부에 경제 전문가가 채용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실무 전문가를 통해 경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천정배 전 장관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추진한 상법 개정도 최근 들어 재계의 의견을 반영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그동안 재계에서는 "법무부가 도입하려는 이중대표소송제는 해외에서도 입법 사례가 없는 등 무리한 측면이 많다"며 반대해 왔다.

이에 법무부는 김 장관의 주문에 따라 재계와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조정위원회를 구성해 재협의에 들어갔다.

천 전 장관과는 확실히 달라진 것이다. 천 전 장관 때는 경제 분야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 방침이 여러 차례 나왔으나 ▶이자제한법 도입 ▶보증인 보호 특별법 제정 등 기업보다는 서민보호에 초점을 맞췄다.

◆ 기업비리 수사통 출신 장관=김 장관은 검사 시절 대형 기업비리 사건 때마다 수사팀에 파견될 정도로 대표적인 특수 수사통으로 통했다. 평소 골프를 즐겨 80타 중반의 수준급 실력을 갖춘 김 장관은 기업인들과의 자리를 피하는 등 자기관리로도 소문이 나 있다. 김 장관은 신문의 경제면을 꼼꼼히 읽으며 기업 현장에서 벌어지는 법적 걸림돌을 파악한다고 한다.

김 장관을 보좌하는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기업 활동을 법과 제도로 뒷받침해 국민을 잘살게 하고, 행복하게 해야 국가가 신뢰를 얻게 된다는 것이 평소 김 장관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안혜리.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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