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언론 로비설」 파헤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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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 2월24일 걸프 전쟁이 지상전으로 확전 되자마자 우리 언론에서 수서 사건 보도는 일제히 꼬리를 감추고 말았다. 마치 언론과 권력 사이에, 또는 언론끼리 묵계를 한 것이나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렇게 일사불란할 수가 없었다. 이런 의혹을 살만했던 까닭은 다른데 있었던 것이 아니다. 걸프 지상전이 발발하자 여당의 대변인은 즉각 「수서 지상전」이 끝날 때도 되었다고 희색이 만면하여 총평을 했다고 알려졌는가 하면 한보가 수서와 관련하여 일부 언론인들에게 모두 5억원에 이르는 돈을 배분해 주었다는 설이 보도를 통해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증거는 없지만 그런 오해의 여지는 얼마든지 있었다.
특히 한보 측의 대 언론인 로비설은 그 이전에도 언론 자체와 검찰 측에 의해 간헐적으로 비쳐지기도 했지만 걸프 지상전 이후 언론과 검찰에 의해 본격적으로 논란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언론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더욱 짙게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뿐 아니라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라는 비판을 언론이 받게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 언론에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수서판 언론 비리설」이 증폭시키고 있는 의혹을 말끔히 씻어내지 않는다면 언론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걷잡을 수없이 깊어져 언론이 설 땅을 잃게될 것이다. 언론도 바로 이 점을 잘 인식하고 있는 까닭에 스스로 수서와 관련된 언론인 수뢰설의 진상 규명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수서판 언론 비리설」의 진상 규명과 그 결과에 따른 부패의 척결을 위해 다음과 같은 조치들이 있어야할 것이다.
첫째, 언론들이 일제히 요청하고 있는 바와 같이 검찰은 진상을 규명함은 물론 그에 따른 적절한 사후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수사 결과 형사 처벌의 대상이 있다면 법에 따른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것은 법적 용의 형평을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
만약 형사 처벌의 대상이 없다고 할지라도 수뢰 언론인들의 명단을 해당 언론사에 통보해 주는 것이 옳다.
그럼으로써만 언론이 스스로의 비리를 척결할 수 있게 되겠기 때문이다. 이같은 조처를 검찰이 외면하는 경우 검찰은 두가지 오해를 살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는 검찰이 언론인의 비리를 위협의 수단으로 오용한다는 비판일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언론이 수서 사건을 계속 파헤치지나 않을까 두려워 언론과의 충돌을 회피한다는 비난이라 하겠다.
어느 쪽이든 그것은 검찰에 대한 불신으로 귀결된다.
둘째, 언론 비리의 진상 규명을 검찰에만 맡길 일이 아니라 언론 스스로도 밝혀내는 노력을 해야한다.
이미 비리설과 연관되어 거명되고 있는 언론인들과 로비의 대상이 되었다고 알려진 서울시청 출입 기자단 기자들에 대한 진상 규명을 언론이 미룰 까닭이 없다.
셋째, 이번 일을 계기로 언론 자체에서 자정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수서판 언론비리」는 우리 언론이 거듭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언론은 언론 민주화 운동의 하나로 언론 노조나 기자 협회가 주장했던 자정운동이 흐지부지되고만 경험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앞에서 지적한 국민의 의혹을 풀기 위해서라도 수서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한 언론의 탐사 보도는 계속되어야만 한다. 그럼으로써 부수적으로 우리 언론의 고질인 건망증도 치유되는 첫걸음이 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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