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KT … 남중수 사장, 조직에 새 바람 불어넣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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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수 KT 사장이 15일 젊은 직원들 앞에서 색소폰 연주를 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남 사장(오른쪽 위에서 두번째)이 이날 테이블을 돌며 직원들과 스스럼없이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지난 15일 밤 서울 강남의 한 주점. KT 2004년 입사자 수십 명이 송년회를 하는 자리에 남중수(51) 사장이 나타났다. 한 직원이 남 사장 가슴에 'KT 짱'이라는 명찰을 달아줬다. 남 사장은 술을 잘 못하지만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술을 권하고, 건네오는 술잔도 흔쾌히 받았다. "최고경영자(CEO.Chief Executive Officer)는 '즐거움을 주는 경영자(Chief Entertainment Officer)'여야 한다"는 그의 평소 소신을 엿볼 수 있는 깜짝 이벤트도 있었다. 남 사장은 색소폰을 들고 무대로 나가 '사랑을 위하여'를 불었다. 초보 연주자이다 보니 가끔 실수가 있었지만 직원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남 사장은 앙코르 곡으로 '만남'까지 소화한 뒤 무대에서 내려왔다.

최근 남 사장의 대외 활동이 부쩍 늘고 있다. 지난해 8월 KT 사장에 취임한 뒤 1년여 동안 '안살림'에 주력했던 것과는 달라진 모습니다. 그는 지난달엔 올해 입사한 신입사원 일부와 두바이에 다녀왔다. 뜨거운 사막 한 복판에 스키장을 건설한 '상상력의 힘'을 KT의 미래인 신입직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청년 KT로의 변신=남 사장은 지난 1년여간 내부 조직을 다지는 데 많은 신경을 썼다. 100여 개 지사와 지점을 방문해 1만5000여 현장 직원들을 직접 만났다. 내부 의사소통을 위해서다. 지난 15일 송년회 참석도 그 일환이다. 고객에 대한 배려는 더 말할 게 없다. 최근 KT는 고객에게 보내는 이용대금 명세서를 '원더풀 레터'로 바꿨다. 이왕이면 고객이 기분 좋게 지갑을 열도록 배려한 것이다. 고객과의 마지막 접점을 뜻하는 업계 용어인 '라스트 1마일'도 '퍼스트 1마일'로 바꿨다. 고객 입장에서 보면 마지막이 아니라 첫 접점이라는 이유에서다.

KT는 내년엔 신사업 아이디어의 발굴에서 상용화까지 전 단계를 원스톱으로 진두지휘하는 가치혁신센터(Value Innovation Center)를 본격 가동한다. 임직원은 물론, 고객 등 외부 아이디어도 받게 된다. 채택된 아이디어에 대해선 획기적인 보상을 할 계획이다. KT는 곧 파격적인 상금을 걸고 공중전화 부스를 활용한 사업아이디어를 공개모집한다.

◆남 사장의 고민=KT는 내년 매출 목표를 올해(11조7000억원)보다 늘어난 11조9000억원으로 잡았다. 사실상 취임 첫 해였던 올해는 매출을 전년보다 줄여 잡았었다. 성장을 위한 숨고르기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주력 사업인 유선통신 시장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매출 증가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내년에만 IPTV 등 신사업을 중심으로 2조80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남 사장은 "어려운 환경이지만 성장 엔진 분야 투자는 지속한다"고 말했다. KT엔 아직도 과거 공기업 분위기가 일부 남아있다. 대표적인 게 인사 청탁이다. 남 사장은 지난달 연말 인사를 앞두고 인사 청탁을 경고하는 이메일을 임직원에게 보냈다. 그는 "청탁을 하는 사람은 '나는 못난이 바보'라고 떠들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런 사람들과 민영 KT를 함께 이끌어가기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인사 담당자는 인사 청탁이 들어온 사람에 대해 무언가 부족한 사람으로 생각하게 마련"이라는 말까지 했다. 하지만 인사 청탁은 없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남 사장은 "인사 청탁 내용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나와 인사부서가 공유하겠다"고 말했다.

◆"하쿠나마타타!"=남 사장은 요즘 '월드컵 괴담'을 자주 화제에 올린다. "2002년 월드컵 때 미국 2위의 유선 사업자인 월드컴이 파산했고, 2006년 월드컵 때는 세계 굴지의 통신회사인 AT&T마저 버라이존에 인수.합병됐다. 2010년 월드컵 때는 어떤 유선사업자가 문을 닫을지 모른다"는 게 요지다. KT가 넘어야 할 고개가 많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는 2003년 KTF 사장 시절부터 새벽 5시 출근을 계속하고 있다. 텅 빈 사무실에서 혼자 보내는 두세 시간을 그는 매우 중시한다. 왜 그리 일찍 출근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CEO가 곧 회사"라고 말했다. CEO가 성공해야 회사가 성공한다는 것이다. 남 사장은 지난 12일 기자간담회에서 "이제까지 예열 기간이었고 내년엔 (성장을 위한) 가속 페달을 밟겠다"고 선언했다. 남 사장은 15일 송년회에서 젊은 직원들과 건배하면서 "하쿠나마타타!"라고 외쳤다. 만화영화 '라이온킹'에 나오는 대사로 '걱정할 거 없어. 잘 될 거야(Don't worry, be happy!)'라는 뜻이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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