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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좌절(걸프 종전후의 세계: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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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또 패전”… 깊어지는 「반미」/이라크 참패… 민족감정에 상처/이스라엘 공격 후세인 영웅시
걸프전의 종전을 바라보는 아랍인들의 일반적 민족감정은 이라크의 패전으로 인한 좌절감을 간접체험으로 맛보고 있는 분위기다.
아랍인들은 미국지원하의 이스라엘과 벌인 지난 네차례의 중동전쟁에서 이미 쓰라린 패배를 경험했었다.
이라크의 완패로 끝난 걸프전에서 아랍인들의 자존심은 또 한번 상처를 입은 셈이다.
지난달 개전이래 요르단·알제리·모로코·예멘·수단 등에서는 반미·이라크 지지시위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심지어 다국적군에 가담중이었던 시리아·이집트에서는 친이라크시위 주모자들이 당국에 의해 체포된 사례도 있을 정도였다.
이들은 「후세인」이라는 대역이 미국등 서방외세를 물리쳐 손상된 아랍민족의 긍지를 되살려주길 기원했던 것이다.
『이것은 테러라는 또다른 전쟁의 서막이다. 미국은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다. 그들이 얻은게 무엇인가』(레바논의 한 주부).
『상황은 지난 67년 제3차 중동전에서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를 점령했던 때보다 훨씬 심각하다』(팔레스타인의 출판업자).
『후세인은 영웅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상징이다. 그는 서방에 맞서 분연히 「NO」를 외친 인물이다. 그가 광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때로는 그래야 할 경우도 있다』(튀니지의 작가).
『이제 이스라엘에 맞설(아랍)세력은 없다. 시리아도 그럴 능력이 없다. 이스라엘이 전쟁의 승리자가 된 것이다』(시리아의 기능공).
종전직후 외신들이 전한 아랍각국 사람들의 반응이다.
하나같이 패전의 깊은 좌절감과 함께 서방에 대한 강한 반감과 이 지역의 더 큰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다.
미국에 의해 해방된 것이나 다름없는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시리아 등에서는 승전을 환호하고는 있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자국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지,같은 아랍민족인 이라크의 패배를 기뻐하는 환호성은 아닌 것이다.
후세인을 지지했던 아랍인들은 이들 국가들이 같은 민족을 파괴하는데 동참함으로써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한다는 비난도 서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아랍인들은 또 다국적군에 의해 이라크에 가해진 무차별 파괴상에 대해서도 동족으로서의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다국적군이나 미국측이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는 않고 있으나 이번 전쟁에서 이라크인 사상자는 상상을 초월할만큼 엄청난 것으로 보인다.
○미 대량파괴에 반발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소식통은 이라크인이 8만5천에서 최고 10만명까지 사망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중 민간인이 얼마인지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다국적군의 사망자 1백26명에 비하면 얼마나 무참한 살육이었는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미 이란과의 8년 전쟁에서 7백50억달러에 달하는 외채를 짊어지고 있는 이라크 경제의 피폐는 말할 나위도 없다.
사둔 하마디 이라크 부총리가 지난달 19일 밝힌바에 따르면 이라크가 이번 전쟁으로 본 경제적 피해는 2천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다국적군의 무차별공습은 이라크 정유시설의 80%를 파괴했으며 발전설비·교량·도로·통신망등 중요산업기반시설을 거의 황폐화시켰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따라서 전후 각국에 의해 제기될 전쟁배상까지 계산할 경우 이라크의 전후복구비용은 수천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적어도 10년이 지나야 이라크 경제는 제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피해당사국인 이라크인은 후세인의 휴전제의를 환영하면서도 결코 「패배」나 「항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고 있다.
바그다드 라디오방송의 군코뮈니케는 정전직후 『우리는 전투중지를 기쁘게 생각한다』고 전하고 그러나 『우리 자손들의 피를 구하고 국민들의 안전을 구원하기 위해 정전한다』고 밝힘으로써 그 명분을 찾으려 애썼다.
○대규모 반미시위도
영국의 군사전문가 프랑시스 투사는 『다국적군측은 군사적 패배가 후세인에게 치욕을 안겨 주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아랍인들에게 있어서 후세인은 지난 42년간 이스라엘과의 투쟁에서 어느 아랍지도자도 해내지 못한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을 뿐 아니라 세계 32개국의 연합공격에 굴복하지 않고 한달여를 버텨온 영웅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사담,당신뒤에 우리가 있다.』『부시는 물러가라.』
정전직후 요르단에서 벌어진 대규모 반미시위에서 나온 이같은 구호는 아랍인들의 후세인에 대한 지지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편 이들의 깊어진 반미감정을 나타냄으로써 향후 중동지역의 불안한 미래를 상징해주고 있다.<박영수기자>PN JAD
PD 19910302
PG 03
PQ 02
CP 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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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 A10
BL 1022
GO 취재일기
GI 방인철
TI 뒤늦은 자위대 파견론 속셈/방인철 동경특파원(취재일기)
TX 일본신문들은 2일 일본정부와 자민당이 걸프전쟁후 공헌책으로 자위대파견을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해 관심을 모았다.
얘기인즉슨 자민당수뇌가 1일 일본기자단과의 간담회석상에서 『자위대가 토목공사등 복구사업을 하는데는 자위대법 테두리에서도 할 수 있고 국제긴급원조대 파견법을 개정,육상자위대를 파견할 수도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자민당내에는 걸프해에 이라크가 부설한 기뢰제거를 위한 해상자위대의 소해정파견이나 지뢰·불발탄처리 전문가 파견도 검토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1월중순 걸프전쟁이 발발할 기미를 보이자 일본정부는 서둘러 90억달러의 자금지원과 자위대 수송기파견등 기여방안을 미측에 제시했다.
그러나 그동안 국회심의를 이유로 질질 끌어온 일본정부는 이제 전투가 끝나자 「세계평화에 대한 공헌」을 내세워 또다시 자위대 파견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정부가 정작 걱정하고 있는 것은 「전후세계평화에의 공헌」이라기보다 이번 전쟁에서 다국적군에 끼지못함으로써 「전후특수에 일본기업이 소외되는 사태가 오지 않을까」에 대한 우려다.
일본통산성과 외무성은 최근 대기업무역담당자를 소집,『쿠웨이트 부흥사업에 일본기업이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말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약 1천억달러로 추산되는 쿠웨이트 복구사업에 이미 망명쿠웨이트정부 고관을 통한 발주작업이 시작되었다는 정보가 일본기업들에 입수되자 제각기 입찰에 참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실정과 어울리는 제스처인 셈이다.
쿠웨이트망명정부의 복구비즈니스 발주의 기본방침은 『다국적군에 참가해 피를 흘린 나라에 국한한다』는 딱지가 붙어있는데다 미·영·불 정부고관이나 경제인으로부터 『피를 흘리지 않은 일본의 돌출을 견제하라』는 뒷얘기가 흘러나와 이들 「다국적」기업과 일본기업의 충돌이 자칫 반일감정을 불러일으킬까 우려한다는 설명도 있었다고 한다.
일본정부가 뒤늦게 파견을 검토하고 있다는 자위대는 이들 일본기업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명분만들기에 동원되는 「척후병」인 셈이다. 「경제동물」일본의 철저한 이익추구자세는 이처럼 관민활동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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