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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주자 동행 인터뷰 <3> 고 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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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고건 전 총리가 15일 광주시 하남공단 내의 한 중소기업체를 방문해 생산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15일 오전 11시 광주 하남공단 내 ㈜한국닉스 회의실. 진공 청소기를 생산하는 이 공장을 방문한 고건 전 국무총리와 회사 간부들 사이에 가벼운 실랑이가 일었다. 좌석 배치 때문이었다.

회사 측은 'ㄷ'자로 테이블을 마련, 고 전 총리가 중앙에 앉고 간부들이 양옆으로 도열해 앉도록 자리를 배치했다.

고 전 총리는 "다른 곳에서도 이렇게 앉은 적은 없다"며 "사장님하고 나란히 앉겠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회사 측은 자리 배치를 바꿨다.

점심은 구내 식당에서 직원들과 같이했다. 계란말이와 김치.겉절이에 동태찌개가 반찬으로 나왔다. 고 전 총리는 저고리 안쪽에서 알약을 꺼냈다. "원래 축농증이 좀 있는데…최근 코감기에 걸렸다"고 했다.

오후 1시. 다음 행선지는 나주의 멜론 단지. 전날 저녁 비행기 편으로 광주에 온 그는 서울에서부터 기자들을 태우고 온 대형 버스에 몸을 실었다. 운전석 바로 뒷자리가 고 전 총리의 고정석이다. 지방을 다닐 때 그는 거의 승용차를 타지 않는다. 기자단과 수행팀, 지지자들이 모두 한 차로 움직인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운좋게 '번개 인터뷰'가 이뤄졌다.

◆ "정당 기반 없어 갈수록 단점"=1년 전만 해도 1위를 달렸던 그는 요즘 3위로 밀려났다.

-지지도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 박근혜 전 대표에게 역전당했는데.

"복합적 요인이 있다고 본다. 정당 기반이 없다는 게 크고 국민이 정부.여당에 크게 실망하고 화가 나 있어 그런 정서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6개월 전부터 언론이 나를 여권 후보로 취급해 국민의 부정적 평가가 (내 지지율과)연동 상태에 있다."

-손해 본다고 생각하나.

"앞으론 새로운 정치를 표방하는 중도개혁세력이나 새로운 대안정치세력으로 표현해 달라."

-한때는 정당 기반이 없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나.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단점이 되고 있다. 여론조사 할 때 '내일 당장 투표하면 누굴 찍겠느냐'고 물으니까 정당 소속이 유리해진다."

-이제 당적을 가져야 할 때가 온 건가.

"새로운 정치를 위한 통합 정당의 모습이 갖춰지면서 (내 지지율도) 올라갈 것이다."

-그간 몇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좌고우면하다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이 있다.

"과연 그럴까. 5.31 지방선거에 불참한 것은 지금도 잘했다고 생각한다. 현재 정치권은 한나라당 독과점 시장이다. 여기에 대항할 경쟁력 있는 대안정치 세력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 대통합 신당이 돼야 한다. 지방선거 앞두고 독자 신당을 만들어 정치에 참여했다면 대통합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고건 독자 신당'이 통합에 방해가 된다는 얘긴가.

"그렇다. 2, 3년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모를까. 극좌와 극우를 제외한 경쟁력 있는 대안정치세력이 뭉쳐 새로운 정치 질서를 잡아 달라는 게 시대적 요청 아니냐."

- 내년 3~4월께 통합 신당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 확신이 있나.

"반드시 될 것으로 본다."

-2002년 후보 경선 때 이인제를 꺾고 '노풍(노무현 바람)'이 불었다. 통합 신당의 오픈 프라이머리(국민경선제)에서 제2의 노무현 같은 깜짝 후보가 나오면 거품이 꺼질 것이란 분석도 있다.

(묘한 표정으로 웃으며) "국민은 검증된 후보를 뽑을 것이다."

◆ 고건발 정계개편 수순=마침 이날 열린우리당 중도 성향의 김성곤 의원이 국회에서 기자회견 열어 고 전 총리 중심의 '중도 포럼' 창립을 천명했다. 김 의원은 "당내 중도세력과 고 전 총리.민주당.국민중심당 등 4개 그룹이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당내에서도 40~50여 명의 의원들이 동참할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고 전 총리는 이에 대해 "김 의원과 수차례 만나 중도성향의 정치적 연대를 위한 대화 논의의 틀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앞으로도 의견을 교환할 것이다"고 똑 부러지게 얘기했다.

흥미로운 건 고 전 총리의 접촉 방식이다. 측근들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만나는 사람.장소.방식을 은밀하게 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서를 통하지 않고 본인이 휴대전화로 직접 연락을 하고, 이동할 때에도 승용차 대신 택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고 전 총리의 움직임이 더 은밀하고 신속해졌으며 '중도 포럼' 말고도 고 전 총리만 아는 추가적인 수순이 예비되고 있을 것이란 얘기가 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 "전남 도민들 사랑 가슴에 간직"=고 전 총리는 '본인이 이명박 전 시장이나 박근혜 전 대표의 능력보다 위에 있다고 판단하느냐'는 질문에 주저함 없이 큰 소리로 "예"라고 답했다.

오후, 그는 목포로 이동해 유달산에 올랐다. 그는 "전남도지사 시절 유달산을 자주 찾았는데 오랜만에 와보니 감개가 무량하다"며 "지사를 하면서 지역 발전을 위해 땀을 쏟았기 때문에 도민들의 사랑을 받는 것 같다. 늘 도민의 사랑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 경총 조찬 강연→하남공단→나주 세지 멜론 단지→목포시청으로 이어지는 강행군은 저녁 늦게 끝이 났다. 오후 9시 고 전 총리는 서울로 올라가는 KTX에 몸을 실었다.

광주=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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