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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전과 미국 외교/김기정박사 연세대강사·국제정치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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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탈냉전시대 미 위상 “실험무대”/군사력 우위 통해 패권 확인/분쟁 관리능력·세계 리더십 과시/“중동의 미 경제기지”사우디 보호
전 세계적 관심속에 걸프전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국제학술원(원장 이동원)은 27일 「전쟁과 미국동맹외교의 변천­한국전·월남전·걸프전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김기정박사(연세대강사·국제정치학)가 발표한 「걸프전과 미국외교」라는 주제발표문의 내용을 요약,소개한다.
걸프전은 미국외교에 있어 「변화와 지속성」의 두 단면을 보여준다.
미국의 걸프전 개입을 「변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2차대전 이후 지금까지의 미국외교정책 결정에서 근원적 인식틀이었던 냉전구도가 이번 참전결정에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즉 미국은 이 전쟁을 탈냉전시기의 세계구도 속에서 미국의 위상이 어떻게 자리를 잡아갈 것이냐를 결정하는 실험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걸프전은 미국외교사의 변천과정에서 또하나의 획을 긋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와 함께 미국의 걸프전 개입은 미국외교정책의 「지속성」도 보여주고 있다.
우선 경제적 요인이다.
이른바 「문호개방정책」이라는 원칙으로 대표되는 미국 외교정책은 자본주의적 경제양식과 정치군사적 수단의 결합이 근간을 이루고 있다.
미국의 역사학자 윌리엄스가 지적했듯이 자본주의의 발전상 제국주의적 해외팽창은 필연적이었고,그 필연성이 근대 미국외교정책의 기본틀이 돼왔다.
이같은 해외팽창이 미국내의 자본주의 번영과 피할 수 없는 연계를 가진이상 미국외교정책은 이를 유지,확대시키는 방향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중요한 경제적 이익이 관련된 지역에서는 정치·군사적으로 적극 개입함으로써 미국의 자본주의가 핵심적 부분으로 운용되고 있는 세계경제의 본질적 구조를 유지하려 해온 것이다.
이번 걸프전 개입도 사우디아라비아라는 중동지역에서의 미국의 중요한 경제기지를 확보하겠다는 점이 군사적 개입결정을 유도했다고 보여진다.
사우디는 미국 원유수입의 최대수출국이고 사우디 원유수입·판매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이 미국의 4대 석유기업이라는 점을 고려할때 미국은 이 방대한 시장을 미국의 정치적 영향권 밖으로 두는 것을 용인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1950년대 아시아­태평양에서 미국의 교두보로 기대되던 일본을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한국전에 참전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다.
두번째는 국지적 분쟁에 대한 미국의 관리능력 과시와 세계적 리더십을 자임하겠다는 점이다.
미국의 걸프전 참전결정은 새로운 국제질서 아래의 국지적 분쟁에 대해 강력한 힘의 과시를 통한 결연한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이같은 분쟁을 관리할 수 있는 세계적 리더십을 보유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려는 심리적 압박에서 기인됐다고 파악된다.
아울러 미국의 「대외신뢰성」에 대한 집착도 참전을 유도했다고 보여진다.
이는 한국전에서도 나타났다.
트루먼은 북한의 남침을 스탈린이 조종하고 있는 공산주의의 국제적 전략의 하나로 보고 미국의 대 공산주의 봉쇄에 대한 신뢰성을 과시하기 위해 참전했다.
마찬가지로 부시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에 대해 이는 미국의 주도로 새롭게 구축되어가는 세계질서에서 미국이 갖는 국제분쟁 관리능력에 대한 시험이라고 판단한듯 하다.
따라서 세계적 지도자로서의 능력과 아울러 국제분쟁 관리에 대한 미국의 능력을 과시하려는 의도에서 참전결정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세번째는 미국 정책결정자들의 「자민족 중심적인 인식경향」이다.
이같은 인식은 넓게는 사회의 구성원 전체가,좁게는 핵심적 정책결정자들이 가지는 문화적 편견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외교정책에서 이같은 인식은 백인우월주의·유럽중심적 세계관등의 상징과 결합되면서 경우에 따라 비합리적 결정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특히 2차대전후 미국의 대 제3세계 정책에는 이같은 편견이 신생 약소국 민족주의에 대한 철저한 배타성으로 나타났다.
이는 제3세계의 민족주의적 물결을 대소봉쇄정책의 이념적 렌즈를 통해 파악했던 냉전구도라는 국제적 환경요인도 있었으나 보다 근원적으로는 비서구지역에 대한 이해의 결여에서 오는 자민족중심적 인식의 산물이었다.
이같은 인식적 왜곡은 부시행정부의 대중동정책결정에 중동전문가의 참여가 거의 없다고 하는 사실에도 잘 드러나고 있다.
즉 세계전략의 입안과정에서 그 대상이 중동지역이라는 점이 내부적인 규제를 받지 않고 있어 아랍문화에 대한 이해,아랍권의 민족주의나 자결주의같은 요소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편 레이건행정부 이후 표출된 미국보수주의적 경향도 참전의 한 요인이 됐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80년대 들어 레이건의 이른바 「위대한 미국의 부활」이라는 구호아래 한편으로는 군비확충을 통한 대소강경책으로 선회했고,다른 한편으로는 제3세계(그라나다침공·리비아폭격)에의 적극적 개입을 추구해왔다.
부시행정부의 대 이라크 강경책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데,이는 어찌보면 쇠퇴하고 있는 패권국가의 반등현상처럼 보인다.
여러 학자들이 지적하듯이 미국의 쇠퇴는 피할 수 없는 수순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재정적자의 증폭,생산성 증가율의 상대적 열세등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이번 전쟁이 장기화되면 재정적자의 폭은 엄청나게 증폭될 것이다.
폴 케네디가 경고하고 있는 것처럼 미국은 걸프지역에 미국의 경제적 자원을 과도하게 팽창시키고 있다.
특히 이번 전쟁을 통해 나타난 미국의 현대식 무기의 성능,그중에서도 패트리어트미사일의 성능에 도취돼 이를 포함한 SDI계획등 군비증강정책을 확충할지 모른다.
그렇게되면 경제적 능력을 초과해 군사력을 팽창,유지하려했던 국가의 쇠퇴를 주장한 케네디의 가설이 다시한번 경험적으로 입증될 수 있다.
미국이 아직까지는 세계 제1의 군사강국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번 전쟁이후 진정한 의미의 Pax­Americana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예단처럼 들린다.
왜냐하면 아프로 도래하는 새로운 국제질서아래에서는 안보적 이유만으로 패권을 유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국제체계는 경제적 상호의존도가 높아지는 경향으로 변동해 왔고 이같은 추세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상호의존적 국가간 체계에 있어 주요한 이슈는 군사적인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것이고,이같은 경쟁상태를 군사적 수단으로 해결하기에는 경제적 의존도가 너무 높아져 있다.
따라서 미국은 앞으로 아마 3극체제의 한 구성원으로 그 위상이 재조정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걸프전에의 미국참전은 그 군사적 우월성을 통한 패권적 지위를 확인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한편 미국은 이번 걸프전에서 참전명분을 한국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유엔결의라는 측면에서 찾고 있다.
유엔이 정치적으로 걸프전에 개입한다는 것은 탈냉전 시기에서 유엔이 갖는 정치적 의미를 시사하는 일면도 있으나 70년도이후 유엔에서 거의 소외당해온 지도적 지위를 회복하려는 미국의 의도도 엿보이고 있다.
아울러 유엔결의안은 미국내 반전여론을 무마하려는 정치적 의도도 숨어 있다고 보여진다.<정리=안희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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