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저축은행 '화려한 시절' 저무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좋은 시절'은 겨우 1년 반 만에 끝나려나…. 부동산 개발과 관련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과 부동산담보대출로 짭짤한 수익을 올리던 저축은행들이 요즘 수익 모델을 찾지 못해 고민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식은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급속히 몸을 불려온 선두권 저축은행들은 해외 진출 등으로 살 길을 모색하고 있다.
부동산으로 일어났지만=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5년 6월 말 저축은행업계는 3379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으나 1년 뒤인 올 6월에는 순익 6043억원을 거뒀다.

<표 참조>

또 올 7월부터 연말까지는 약 3500억원의 순익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2005년 상반기까지 수천억원대의 순손실을 기록하던 저축은행업계가 이후 1년 반 동안 1조원에 가까운 순익을 기록한 것이다. 저축은행들은 6월 말이 결산일이다. 이들의 순익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PF다. 올해 6월 말 결산에서 전체 순익의 43%가 PF에서 나왔다. 총대출금(36조9000억원) 중 PF대출은 6조6000억원으로 전체의 17.9%를 차지했다. 주택담보대출의 비중도 12.6%나 된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수도권 저축은행의 경우 PF 대출이 전체의 30%를 차지하는 곳도 상당수다. 지난 1년 반 지속됐던 저축은행들의 호황이 부동산 경기에 힘입었다는 얘기다.

부동산으로 깨질 판=PF와 담보대출 의존도가 높은 저축은행들은 부동산 경기가 식을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부터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할 판이다. 그간 70%이던 주택담보인정비율(LTV)도 11.15 부동산규제책 강화 조치로 50%로 낮아졌다. 금감원은 저축은행들이 이를 초과하는 대출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저축은행으로 몰려들던 대출 신청도 거의 끊긴 상태다.

저축은행업계의 한 관계자는 "내년엔 사실상 먹고 살 사업이 없다"며 "말 그대로 가만히 앉아서 손가락 빨게 생겼다"고 호소했다.

저축은행중앙회 김석원 회장은 "내년에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으면 그간 저축은행의 주수익원이었던 PF도 크게 줄 것"이라며 "이제 새로운 업무를 찾아 수익원을 다양화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시중은행은 수수료 수입이 전체의 30%가량이지만 저축은행은 거의 없다"며 "직불카드와 수익증권.공채 판매, 부동산신탁 등으로 업무를 다양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외에서 활로 찾기도=일부 대형사는 해외 PF 사업 진출과 개인신용대출 등으로 수익 모델 찾기에 부심하고 있다. 한국저축은행은 9일 사이판에서 신한은행.BTX리조트개발 등과 해외 PF 업무조인식을 열고 필리핀 세부 막탄섬의 '임페리얼팰리스 세부 리조트' 공사에 80억원 한도로 자금을 공급하기로 했다. 지난달에는 우리은행과 컨소시엄을 맺어 카자흐스탄에 200억원 규모의 아파트 건설 사업에 자금을 지원했다.

부산저축은행은 내년초 신한은행과 함께 300억원 규모의 캄보디아 신도시 개발공사에 대한 금융 지원에 참여할 예정이다. 동부저축은행은 지난달 중국 선양의 주상복합아파트 재개발 사업에 하나은행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10억원을 투자했다.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의 경우 다른 저축은행들이 외면하고 있는 저금리 소액신용대출에 올해 초부터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해외 진출은 110개 저축은행 중 자산규모 1조원이 넘는 선두주자들만 시도하고 있다. 나머지 저축은행들엔 아직도 먼 얘기다. 인력이나 자산 규모에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이정하 상호저축은행감독팀장은 "저축은행은 그동안 너무 쉽게 돈을 벌어 왔다"며 "정부에 규제를 풀어 달라고 요구하기 전에 스스로 사업을 개척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