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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프로야구 스타들|전쟁서도 "용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미국프로스포츠 대명사인야구의 스타들도 전쟁에 참큰 몫을 해낸 것으로 밝혀져 화제.
지원제인 오늘과는 달리 징집제있던 시절 유명한 스타플레이어들이 전쟁에 참여,군인들은 물론 국민의사기를 드높임으로써 진정한 스포츠정신을 빛냈다.
미국프로야구는 2차대전당시에도 「국가적인 사기」를 위해 그대로 진행됐었다.
그러나 당시의 스타이던 마릴린 먼로의 남편 조디마지오 (뉴욕 양키스·57·게임연속안타 기록보유자), 보브 휄러 (클리블랜드인디언스·아메리칸리그 다승투수 5회수상) 등은 국가의 부름을 받고 전쟁에참가 했었다.
또 통산타율 3할4푼4리를 기록, 역대타자중 6위를 차지한 좌타자의 대명사 테드 윌리엄스 (보스턴 레드삭스) 도 2차대전과 한국전에 파일럿으로 참전, 용맹을 떨쳤으며 미국프로야구 초창기인 지난1910년대의 스타 크리스티 매튜슨 (뉴욕자이언츠투수) 은 1차대전에 참전했다 가스공격을 받아 이듬해 페병으로 숨지기도 했다.
이밖에 9백90경기에 출장했던 내야수 에디 그란프는 1차대전에 참전, 프랑스 아르곤느 전투에서 사망했으며 (1918년10월)필라델피아 애술레틱스에서활약하던 헨리 오닐과 워싱턴 세너티스의 외야수 엘머 기디온등은 1차대전중 프탕스전선에서 장렬히 숨졌다.
좌완인 휄러는3년간(42∼44년) 군복무의 핸디캡에도 불구, 통산 2백66승을 기록하며 대투수대열에을랐고 좌타자 윌리엄스도5백21개의 홈런을 날리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워싱턴 세네티스의 내야수 세실 트래비스는 2차대전 참전으로 명예의 전당 후보에서 누락될뻔 하기도 했다.그는 통산 3할1푼4율의 타율을 올렸으나 버지전투에서 발에 심한 동상이 걸려 야구계로 복귀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후일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작고한 전커미셔너 페이빈센트씨는 89년 월드시리즈를 앞두고 샌프란시스코에 대지진이 일어나자 즉각 경기를 연기시키고 『대참사를 겪고 있는 와중에서 프로야구경기일정을 연기하는 일은 당연한 의무』 라고 언급, 국가적인 위기를 맞았을때 스포츠인들이 취해야할 모범을 보이기도 했다.
미국은 지금까지 큰 전쟁때마다 프로야구를 계속진행시켜 국민의 사기를 높이는 방편으로 이용해 왔다.
그러나 당시에는 TV나 기타 대국민홍보용 매체가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스타선수들의 참전도 당시는 징집제였기 때문에 불가피했으나 베트남전부터는 모병제 (모병제)여서 사실상 사라겼다.
그럼에도 불구 미국스포츠계에서는 최근 걸프전쟁의 여파로 「전쟁과 스포츠의 존재」 에 대한 논쟁이 일고 있다. 논쟁의 핵심은 『전쟁으로수많은 젊은이가 죽어가고 있는데 스포츠가 웬말이냐』는 근원적인 회의론에서부터 『스포츠스타들도 다른 젊은이처럼 전쟁에 참여해야한다』 는 비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에따라 여론은 전장에서 죽어가는 젊은이와 스포츠스타들의 위치를 비교,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권오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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