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것 폰테인(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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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세계를 대표하는 발레단의 우열을 엄격하게 구분지을 수는 없다.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발레예술도 기교뿐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적 특성,그리고 민족적 배경과 바탕이 예술로 승화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오늘날 세계의 3대 발레단을 꼽으라면 누구나 서슴없이 클래식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의 로열발레,뛰어난 기교로 환상적인 율동을 펼치는 소련의 볼쇼이발레,그리고 현대적 감각의 생동감이 넘치는 미국의 뉴욕시티발레를 들 것이다.
창단이후 이렇다할 주목을 끌지 못했던 로열발레가 이처럼 세계 3대 발레단의 하나로 발돋움하는 데는 마것 폰테인이라는 불세출의 한여성 무용수 때문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금세기 최고의 발레리나,만년청춘의 발레리나로 불리는 폰테인이 로열발레와 인연을 맺게된 것은 1934년 그녀의 나이 15세때 로열발레 전신인 새들러스웰스 무용학교에 입학하고서 부터다. 그리고 그녀는 그해 겨울 성탄절공연때 『호두까기 인형』의 눈송이로 데뷔,주목을 끌었고 1년도 못되어 『백조의 호수』에서 오데트역을 맡는등 이 무용단의 주도적 역할을 했다.
날씬하고 유연하며 검고 작은 머리에 큰 눈과 섬세하고 우아한 팔 다리를 갖춘 그녀는 무용수로는 가장 이상적인 몸매를 지녔다.
그뿐 아니라 그녀는 능숙하고 우아한 선의 조화를 익히고 있어 아무리 어려운 동작도 쉽게 표현한다. 그게 바로 폰테인을 40여년간 무대에 서게 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폰테인이 만년청춘의 발레리나로 군림할 수 있었던 또하나의 이유는 그녀가 소련의 망명 무용수 루돌프 누레예프를 만난 것이다.
자신보다 20세나 연하인 누레예프와 62년 코벤트가든에서 가진 『지젤』공연은 그녀로 하여금 제2의 무용 인생을 살게했다.
그녀는 지난 78년 로열 발레의 한국공연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언제나 바쁘게 일을 하다보니 나이나 시간의 흐름같은 것을 특별히 생각해 본적이 없어요.』 그때 그녀의 나이는 우리나이로 60세였다.
그녀는 휠체어를 탄 남편을 25년간이나 뒷바라지한 착한 주부며 위대한 생활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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