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중구조 사회」로 부터의 탈출/신성순(중앙칼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우리사회가 최근 몇년처럼 심한 갈등의 와중에 휩싸인 때도 일찍이 없었을 듯 싶다.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 노사분규로 상징되는 소외계층의 형평배분요구로 인한 진통이지만 그밖에도 우리사회가 겪고 있는 구조적 변화의 물결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소득수준의 향상으로 소비행태가 변하고 젊은이들이 힘든 일을 기피,산업현장을 떠나고 있다. 기능인력의 부족으로 목수와 벽돌공 등 한때 저소득계층에 속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일당소득면에서 대회사 중역의 그것을 밑돌지 않는다는 얘기나 신입사원들이 입사 몇년만에 자가용승용차를 몰고나와 직장마다 주차난을 겪고 있는 것도 사회구조변화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가시적 변화보다 더 큰 변화는 구시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젊은 세대의 저항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같은 저항의 저변에는 과거 우리 사회가 안고 있던 규범과 현실의 2중구조에 대한 회의와 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젊은이다운 의지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새세대의 저항에 부딪치고 있는 우리사회의 2중구조란 예컨대 입으로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권위주의가 판을 치던 정치행태를 비롯,숱한 규제조치가 결국 관료들의 주머니를 불리는 기능을 하는데 불과했던 관가의 행태,하루저녁 술값이 한달 월급을 웃돈다는,정상적인 계산방법으로는 도저히 아귀가 맞지 않는 사회현상 등이 모두 포함된다 할 수 있다.
어찌보면 우리는 과거에 법률이나 규칙,그밖의 사회규범은 규범대로,그리고 실제생활은 그같은 규범과는 아무 관계없이 돌아가는 기이한 풍토속에서 생활해 왔고 지금도 적지 않은 부문에서 그같은 괴리를 겪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사회가 겪고있는 갈등의 가장 큰 줄기는 바로 이같은 과거의 관행과 이를 부인하려는 의지와의 마찰에서 빚어지는 것이라 보아 틀림없다.
수서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이것이 정치권과 정부에 대한 의혹과 불신을 증폭시켜 위기론까지 대두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이 사건도 기존의 관행과 이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새로운 사회적 흐름의 마찰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보아 틀림없다.
국회의원들의 뇌물성외유사건이나 음악특기자들의 부정입학사건 등 최근 이 사회를 들끊게 했던 부정사건들이 모두 같은 범주에 속한다.
이같은 사회적 마찰에서 비롯된 사건들의 공통된 특징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데 있다.
뇌물외유사건으로 구속된 국회의원들이 「관행인데 무슨 소리냐」는 항변을 한 것이나 수서사건이 여야당을 포함한 정치권,정부조직,그리고 이 나라 최고 권부라 할 수 있는 청와대까지 연계된 조직적인 비리사건인데도 당당히 합법적 절차를 거치는 형식을 취했던 것은 모두 이들이 범죄의식을 크게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같은 일들이 과거의 2중구조 사회에서는 크게 문제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어찌보면 당연하기까지 한 일이었음을 우리는 숱한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도 하다.
수서사건이 쉽게 매듭지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진상이 밝혀지는 경우 그 미치는 파장에 대한 두려움도 있겠지만 동시에 과거의 타성에 젖어 사태의 중대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측면도 있으리라 여겨진다.
시중은행이 엄연한 민간기업인데도 정부가 은행장 인사를 마음대로 하려들고 또 은행들이 이를 용납하는 불가사의한 현실도 우리사회의 2중구조에 의해서만 그 이유의 해명이 가능하다.
문제는 이같은 2중구조에 대한 저항이 비단 범죄사건에서 뿐만 아니라 일반사회 관행을 모두 바꾸려는 형태로 나타나는 추세에서 어떻게 그 갈등을 원만히 처리하고 새로운 관행을 정착시킬 것이냐는 점에 있다.
이에 대한 해답은 우선 우리사회에서 시행되고 있는 관행의 합리성 여부를 현실적 바탕위에서 재점검하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되리라 믿는다.
수억원대의 뇌물을 받고 특정기업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일이 용납되어서 안되는 것은 물론이지만 동시에 한달 경조사에 나가는 꽃값이 5백만원에서 1천만원대에 달하는 국회의원들의 세비가 2백만원을 겨우 넘는다는 사실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우리는 제헌국회 헌법에 이미 근로자의 이익분배 균점권을 규정할 정도로 사회규범이 현실보다는 이상에 치우치는 경향을 보여왔다. 40여년전 헌법에 규정됐던 규범이 지금에 와서야 합리성 여부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은 이사회의 규범이 실용성보다는 상징성에 더 비중이 주어졌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따라서 2중구조 사회로부터의 탈출은 사회를 규제하는 규범이 현실에 맞도록 고치고 일단 정해진 규범은 작은 것이라도 철저히 지키는 관행이 정착되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심야영업 금지나 불법주차 단속,자가용 10부제운행 등 몇가지 작은 원칙이 착실히 지켜지는 현실을 대견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많은 것도 그것이 바로 사회를 바른길로 이끄는 기초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