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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공부] 기다릴 줄 아는 엄마가 '논술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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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교육계의 큰 이슈는 역시 논술. 그만큼 말도 무성하다. 제목에 '논술'이 들어가지 않은 참고서는 잘 팔리지 않는다는 소문도 떠돈다. 이런 와중에 딱부러진 논술 대비법에 목말라하는 부모들은 더 애가 탄다. 앞으로 가르칠 일이 '구만리'인 초등학생의 학부모일수록 막막하기 그지없다. 독서를 많이 하면 된다지만, 다른 과목 때문에 책을 많이 읽히는 게 여의치 않다. 게다가 아이가 별로 의욕을 보이지 않는다면 부모의 고민은 더 깊다. 하지만 학교 교과과정을 잘 따라가면서 아이가 서서히 독서에 젖어들도록 하면 논술 대비는 의외로 어렵지 않다고 말하는 엄마들이 있다.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는 엄마의 '소신'이 있으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학원을 기웃거리지 않고도 '학교 논술왕'으로 아이를 키운 초등학생 5학년 엄마 세 명을 만나 그 '기다림의 미학'에 대해 들어봤다. 이 엄마들은 학원에 의존 안 하고도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도록 만들었다.

책을 친숙하게 만들면 절반은 성공 ▶이희정(38.구일초 5 학부모)

초등학교는 책을 많이 읽으면서 생각하는 시기여야 한다. 기다려 주자. 서울대 논술 1등, 교수들, 교육전문가들도 다 그렇게 얘기하지 않나. 그런데 실천하긴 어렵다. 두 살 때 엎드려 있는 아이에게 책으로 병풍을 쳐 놓을 정도로 책과 친숙하게 만들었다. 책으로 도미노 놀이를 하는 등 책을 갖고 장난을 하게 했다. 엄마와 책 읽기 습관이 다르다고 해서 강요하지는 않았다. 나는 천천히 읽기를 좋아하고 좋은 글귀가 나오면 반복하는데 아이는 책을 빨리 읽고 많이 읽는다.

역사.과학 시리즈 등은 부모가 아무리 읽었으면 해도 아이가 선뜻 잡으려고 하지 않는 책이다. '삼국유사'는 선사시대만 몇 번을 읽었다(웃음). 그래도 사주고선 놔둔다. 자기가 읽고 싶을 때 언젠간 읽을 거다.

4학년 2학기 역사 수업이 시작될 때 암사동 선사유적지부터 중앙박물관, 서대문 형무소 등 교과서에 나오는 곳을 찾아가봤다. 이런 경험을 일기로 쓰면 선생님이 댓글을 달아줬다. 바로 이게 가장 좋은 글쓰기 공부인 첨삭지도다. 아이는 선생님의 반응에 힘입어 힘들고 지겨운 일기를 즐겁게 인식한다. 검사는 하지 않고 도장만 찍어주는 게 문제다.

반 탐구보고서로 간판 종류를 분석하는 숙제가 있었다. 종로, 인사동 등지를 실컷 돌아다니며 들어가서 사진 찍었다.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런 탐구활동을 할 때는 컴퓨터 워드 대신 자필로 쓰도록 하는 게 좋다. 논술 시험 등에 참가하도록 권유해 볼 수도 있다. 운이 좋으면 큰 상도 받을 수 있다.어디까지나 본인이 관심있어 할 때의 일이다.

학교 교과과정 따라 책 읽어 봤나요 ▶주홍자(45.대치초 5 학부모)

대치동엔 학원은 가도 학교는 빠지는 아이들이 있다고 한다. 그
곳에선 '역사로 시작하는 논술' 등 팀을 짜서 학원에 들어간다. 그런 학원에서는 단테의 '신곡' 등 필독서 단기완성반을 만들어 전세버스로 아이들을 실어 나른다. 초등학생들이 문자해독은 할 수 있겠지만 정말 이해할까 의심된다. 영어.수학에 이어 논술 필독서까지 주입식 교육이 되고 있다. 논술은 분류.통합.나열 등이 다 돼야 하는데 이렇게 읽어서는 나열밖에 못할 텐데 말이다. 단기간 학원교육으로 '비공(공부 못하는 아이)'을 '열공(공부 잘하는 아이)'으로 만들 순 없다.

초등학교는 '다독'이 아니라 '정독'이 돼야 한다. 학교 교과과정이 지침서인데 무시되기 일쑤다. 우선 엄마가 초등 교과과정부터 놓치지 말자. 알림장을 보고 숙제부터 챙기다 보면 교과과정에 대해 알게 된다. 교과서엔 '더 나아가기' '되돌아가기' 등의 코너가 있다. 여기서 생각 넓히기를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러다보면 부교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교과와 연계된 책을 사주면 된다.

아이의 학년이 올라가면서 느끼는 것은 언어에서 사회.과학으로 넘어가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창작동화 등 읽기 쉬운 책을 편식하는 거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실험을 많이 할 수 있는 과학책을 사줬다.

사회는 체험학습을 많이 다녔다. 우리 아이는 6.25 전쟁기념관에서 원시시대부터의 싸움의 종류를 다시 알게 되고서 전쟁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박물관도 여러 번 가면 생활사.예술사 등을 나눠 찬찬히 볼 수 있다.

아이 손 미치는 책 위치 자주 바꿔봤나요 ▶조용숙(39.강월초 5 학부모)

아이가 어렸을 때 책 읽어줄 마음만 있었지 퇴근하고 돌아오면 피곤하다는 이유로 그냥 자기 일쑤였다. 그런데 어느날 보니 아이가 어려운 글자는 알아도 쉬운 글자를 모르고 있더라. 각성하고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턴 하늘이 무너져도 하루 3권씩 읽어줬다. 설거지도 미루고 전념했더니 효과가 크게 나타났다. 누나에게 읽어주다 보니 작은애는 자연스레 따라했다.

내 비법은 아이가 책을 친숙하게 여기도록 했다는 거다. 선행학습이 아니라 책을 자기 수준보다 한 단계 낮게 사줬다. 아이는 두 번, 세 번 읽어주니까 어느 순간 '삼국유사'를 스스로 책장에서 빼보더라. 아이가 재미 붙인 책은 책장에서 아이 눈높이에 맞게 꽂아뒀다. 그러려면 한두 달에 한 번씩은 책의 위치를 바꿔야 한다. 교과서에 나오는 책들 중 읽었으면 좋겠다 싶은 책은 방바닥에 쌓아둔다. 아이는 그림 그리는 걸 워낙 좋아해 책과 연결시켜 그림일기를 썼다.

아이의 창조력을 길러주는 데는 엄마의 소신이 가장 중요하다. '천천히 가기' '같이 있어주기' 미학이 중요하다고 본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같이 울고 같이 웃어 주자.

이원진 기자<jealivre@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논술맘'들이 말하는 초등 논술 잘하려면

1.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여유 시간을 충분히 준다.

2. 아이책을 엄마도 읽고 주인공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 나눈다.

3. 책에 대한 질문을 할 때는 부담스러운 질문을 하지 않는다.

4. 좋은 책이라도 아이가 지루해하면 기다린다.

5. 연령에 비해 너무 빠른 책을 권하지 않는다.

6. 학원가 추천서 리스트에 현혹되지 않고 정독을 한다.

7. 일기를 읽고 트집잡지 않는다. 대신 댓글을 달아주면 좋다.

8. 나오는 장소, 실험 등 경험을 많이 쌓아준다. 교과서 '되돌아가기' '더 나아가기'를 같이 생각해본다.

9. 글씨를 또박또박 쓰는 연습을 한다. 심사위원이 읽기 편해야 하기 때문이다. 논술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깨끗한 글씨다.

10. 때로는 부끄러운 이야기가 더 좋은 글감이 될 수도 있다 는 걸 알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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