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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시한 고액권바꾸기로 소 전역이 「화폐작전」몸살(세계의 사회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우주비행사도 “내려가 돈 바꿔야”/죄수 비자금 교환요구/괜히 전보치고 소액권 챙기기 수법도
소련은 요즘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지난 1월22일 발표한 화폐개혁 제1단계 조치에 따라 한바탕 소동이 일고 있다.
1월22일 TV 저녁뉴스를 통해 전격 발표된 내용은 그날 밤 자정을 기해 50루블짜리와 1백루블짜리 지폐가 법적통화로서 효력을 상실한다는 것과 시민들에게 3일 이내에 은행을 통해 같은 액수의 새 은행권이나 소액권으로 교환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또한 부분적으로 예금인출을 동결시키고 1인당 기본교환비율을 5백루블로 한다음 자신의 월급등을 고려,추가금액을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교환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파블로프 총리는 당시 TV에 출연,『이번 조치의 목적이 암상인·투기자·밀수자 등을 뿌리뽑기 위한 것이지 성실한 근로자들의 재산을 강탈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하경제 종사자들뿐 아니라 대다수 시민들도 정부의 이러한 조치로 엄청난 피해를 보게됨에 따라 양상은 자못 심각해져 가고 있다.
소련에는 수표·신용카드 제도가 없고 은행의 이자율이 지극히 낮아 대다수의 시민들은 집에 현금을 보관하고 있다.
따라서 수십년동안 보관해온 루블화의 총량은 엄청나게 많은 경우가 보통이다.
이에 따라 대다수 소련 국민들은 『정직한 근로자들이 알뜰하게 모은 수십억루블의 돈을 강탈하려고 한다』는 의미로 이번의 정책을 평가하게 됐다.
또한 애써모은 돈이 위험에 처하게 됐다고 생각하자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루블화를 최대한 새로운 지폐나 소액화폐로 교환하기 위한 일대작전에 나서게 됐다.
이즈베스티야지는 시민들의 이러한 행동을 「화폐작전」으로 표현하면서 모스크바의 경우 자정으로 되어 있는 발효시간을 수시간 앞두고 시민들이 흡사 먹이를 찾아 떠도는 쥐떼처럼 떼지어 집을 나섰다고 보도했다.
시민들은 우선 밤새 문을 여는 중앙전신전화국으로 달려가 친척들에게 「급하지도 않은 전보」를 친다음 잔돈을 소액권으로 받아내는가 하면 새벽같이 기차역·항공권 예매소 등을 찾아가 소련 국내에서 가장 먼 종착역까지의 표를 수십장씩 예매했다가 다음날 5루블,10루블,25루블짜리 등 소액화폐로 표값을 환불받는 작전을 감행하느라 일대 소동을 일으켰다.
연금생활자들은 자신들의 월정 연금 2백루블의 수십배가 넘는 50루블·1백루블짜리 고액권 수백장을 들고 은행에서 장사진을 친채 소액권으로 교환해달라며 은행원에게 통사정을 해댔다.
문제의 심각성은 지방공화국으로 갈수록 더해졌다.
시베리아 지역에선 남편이나 아들이 사냥·벌목을 위해 겨울 일벌이를 나가 연락이 안된다며 교환시일을 연장해 달라는 주부들의 눈물어린 호소와 협박이 일고있다.
극동의 한 노동수용소에서는 죄수가 수용소내에 있는 학교의 여자교장을 인질로 잡고 자신이 숨겨둔 1백루블짜리 지폐를 바꿀 수 있도록 잠시 석방해 줄 것을 요구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지역의 한 형무소에서는 죄수폭동이 일어나 그들이 감춰놓은 돈을 교환할 수 있도록 석방을 요구했다.
뿐만 아니라 지구로부터의 연락을 받은 우주선 승무원들마저 자신들이 집에 보관해둔 고액권을 교환하기 위해 지상으로 내려보내줄 것을 탄원하는 등 온갖 해프닝이 일어났다.
결국 연방정부도 은행업무를 볼 수 없을 정도로 장사진을 이룬 사람들을 달래기 위해 교환기간을 이틀 연장했고,기업체·관공서·집단농장·노동조합 등에는 일단 계좌를 동결한 다음 추후에 기일을 정해 따로 보관분까지 교환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사냥·수렵 등을 나간 사람들이 돌아올 수 있는 기한까지 특별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김석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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