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탈출 체스먼 특약특파원 바그다드 취재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민간희생 크다” 선전공세 안간힘/군인들 친지에 식량 얻어먹어/학교·병원·고속도에도 대공포
이라크 정부는 다국적군 공습에 의한 민간인 피해를 과장선전하는 홍보전에 광분하고 있다고 중앙일보 특약특파원 브루스 체스먼기자(영 데일리 텔리그라프지 서울특파원)가 2일 본사에 보내온 암만발 기사로 전했다. 체스먼기자는 지난달 17일 다국적군의 아라크공습 당일 이라크군에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2주간 고문등으로 조사를 받고 지난달 30일 무사히 요르단의 암만에 도착했다.<편집자주>
이라크 공보부는 거친 선전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선전은 다국적군의 공습이 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내고 있으며 상점과 일반가정을 파괴하고 있다고 전세계에 인식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사실 바그다드의 비관영 보도에 따르면 민간인지역의 피해정도는 다국적군의 광범위한 공습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매우 작다.
밤마다,때로는 아침까지 5∼6차례씩 이어지는 공습에도 불구하고 바그다드시의 주요 민간인지역은 놀랄 정도로 온전한 상태다.
지난주 수차례에 걸쳐 바그다드를 돌아보고 또 지난 28,29일 이틀간에도 돌아본 바로는 커다란 피해를 본 지역은 군사 및 정부건물이 대부분이다.
지금까지의 다국적군의 공습은 정확성이 놀라울 정도임을 증명하고 있었으며 많은 건물들 사이를 자동차로 지나가 봐도 대부분은 본래모습 그대로 멀쩡한 반면 한두 건물은 완전히 파괴됐음을 볼 수 있었다.
이라크 공보부는 주요 산업시설이나 군사시설의 피해정도를 상당수준까지 서방기자들에게 취재를 허용하는 큰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군사방어시설에 대한 취재는 거의 허용하지 않았다.
이라크공보부측에선 다국적군의 공습으로 인한 민간인피해를 크게 부각시키기 위해 신문·TV기자들을 시내 중심가 인구밀집지역으로 데리고가 구경시키려 했다.
그러나 공보부측의 이같은 시도는 이라크 국방부측으로부터 제지를 받았다.
국방부는 처음에는 아무곳이나 기자들을 데리고 다녔다가 바그다드시내의 이라크군 대공포대 위치가 누설될지 모른다고 생각,나중에는 기자들의 방문지역을 사전에 철저히 답사한 뒤 취재허용여부를 결정했다.
그들이 서방기자들을 데려간 장소중에는 바그다드의 상가,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상점들 서너개,그리고 그 옆으로 민간인 대피호가 있는 것들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전혀 군사시설 같지 않았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일반 대피호가 아니라 콘크리트로 견고하게 지어진 군 지휘소였다. 이곳은 적이 외부에서 차량으로 공격해올 것에 대비,출입로에 뾰족뾰족한 대못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지난 10일동안 외국기자들 가운데 이곳을 방문한 서방 기자들은 미 CNN­TV의 피터 아네트기자와 스페인 기자 한명이 고작이라고 국방부 관계자가 내게 귀띔했다.
그들은 이곳에 다국적군 공습 피해자들을 대기시켜 놓고 있었으며,기자들에게 질문을 하도록 허용했다.
서방기자와 함께 취재에 나선 아랍인 기자들(그들 대부분이 팔레스타인인이었다)은 민간인들이 본 피해를 주로 취재하려 했다. 그중 하나는 바그다드북부 모술에서 한 학교가 피격,어린이 3명이 사망한 장면을 찍은 필름이 있으니 사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바그다드 남쪽 1백55㎞에 있는 마자프시에선 실제로 민간인들이 다수 사망한 사례가 있었다.
회교 시아파의 성지인 이곳은 인구 25만명의 농업도시로 군사시설은 별로 없다. 그런데도 이곳에서 23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이라크정부의 선전공세는 또 바그다드가 거의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신화」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바그다드는 정상적』이란 말은 TV카메라 앞에 선 이라크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강조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 도시는 물이 고갈되고 주택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상태여서 「정상적」이라고 말하기에는 거리가 멀었다.
바그다드 군주둔지를 제외하면 바그다드시 어느곳에서나 음식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지난달 17일부터 2주간 이라크군당국에 스파이행위혐의로 체포되어 있는 동안 만난 많은 군인들은 식량을 친지들로부터 지원받아야 하는 실정이라고 불평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이라크군은 바그다드시 상공을 날아다니며 폭격지점을 찾고 있는 다국적군 조종사들에게 공격목표가 파괴된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속임수로 자동차 타이어등을 태워 연기를 내기도 하는 것 같았다.
학교와 병원 심지어는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는 교각난간 옆에도 대공포가 설치돼 있었다.
바그다드에 대한 폭격이 끊일사이 없이 계속되자 시민들의 사기가 눈에 띄게 동요하는 기색이었다.
인편을 통해 매일 요르단으로 보내지는 기사는 이라크관리들에 의해 철저히 검열받게 된다.
나는 실종으로 세계언론에 보도됐던 만큼 일단 내가 무사하다는 내용의 글을 보낸 뒤 부터는 일체 기사를 송고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라크검열관의 비위에 맞도록 폭격피해상황을 꿰맞춰서는 진정한 시민피해정도를 정확히 보도하기란 불가능한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이탈리아 일 문도지 알폰소 로조기자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