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장·부장판사등 53명 대폭인사 의미(해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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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법관 재임명 앞둔 정지작업/장기간 인사적체에 숨통/세대교체로 새로운 활력/지자제선거대비 앞당겨 실시
대법원이 2월1일자로 전국 고법·지법원장급 16명과 고법부장급 37명의 승진·전보인사를 단행한 것은 그동안 법관인사가 적체돼 사기가 저하됐다는 법원 내부의 여론을 반영한 혁신적인 인사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번 법원간부들의 대폭인사는 김덕주 대법원장의 첫 작품인데다 법관 재임명을 앞두고 앞으로의 인사패턴 및 기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행정부의 차관급에 해당하는 고법부장급 이상의 간부인사에 따라 조만간 지법부장급과 고법판사·지법판사에 대한 후속인사도 있을 예정이어서 당분간 사법부는 인사회오리를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법원은 이번 인사배경에 대해 『후진을 위해 용퇴한 법관들의 자리를 보충하고 장기간 동일 법원에 근무한 법관을 순환시킴으로써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넣는 인사』라고 밝히고 있다.
또 인사기준에 대해서는 『대법관들의 의견과 해당 법관들의 서열·능력이 참고됐으며 고시출신 대법원장 등장에 따른 세대교체에 주안을 두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공식 설명과는 달리 이번 인사는 여러가지 면에서 눈에 띄는 점이 발견된다.
우선 인사규모가 당초 예상을 웃도는 대폭이라는 점이다.
승진·전보된 고·지법원장급 16명은 전국 19개 법원장급중 수원·대전·전주지법원장만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
고법부장급은 전국 67명중 37명이 자리를 옮겨 대폭적으로 「물갈이」됐다.
이같은 인사이동은 88년 이일규 전 대법원장 취임후 있었던 인사이래 가장 큰 폭이다. 직접적으로 김석수 법원행정처 차장의 대법관 승진과 허정훈 사법연수원장·김윤경 서울고법원장 등 고법원장급 4명과 홍성운 서울가정법원장을 비롯한 고법부장 6명의 무더기 사표가 인사요인이었다.
지난해에는 1년간 법관 40명이 법복을 벗었으나 올해에는 이번 11명을 포함,벌써 15명이 사표를 낸 셈이다.
이에 따라 법원간부들의 시험횟수도 종전 고시 13회까지였던 법원장급이 14회(김성일 제주지법원장)로 내려갔고 지금까지 사시 6회 이상이던 고법부장은 사시 8회(이융웅 광주고법부장)까지 승진했다.
매년 3,9월 있어왔던 정기인사를 앞당긴 것은 고위법관들의 대량 사표와 함께 올 봄 실시될 예정인 지자제선거를 앞두고 시·도 선거관리위원장을 당연직으로 지법원장들이 맡게되므로 가급적 빨리 부임,업무를 파악케 하려는 고려로 풀이된다.
더욱이 고법부장 이상 고위법관들중 일부가 연령정년(원장급 63세,고법부장 60세)이 얼마 남지않아 오는 4월에 있을 법관재임명이 이들에게 별 의미가 없다는 점도 인사를 앞당긴 요인.
한편 이번 인사에서 기존 인사관례와는 달리 서울고법부장 3명과 부산고법 부장 1명이 대구·부산 및 광주고법으로 전보된 것도 관심거리.
지금까지는 지방고법부장이 서울로 전보되고 서울 고법부장은 계속 그대로 있거나 지원장·지법원장으로 나가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오는 4월의 법관 재임명을 앞두고 일부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법관과 건강상의 이유로 업무수행이 곤란한 법관들이 자연스럽게 사퇴할 수 있도록 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볼 수 있다.<김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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