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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기 이란 도피 속타는 미국(걸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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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란선 종전까지 억류 강조/이라크와 짠 계획적인 대피 의심/반미성전 여론높아 이란선 불똥튈까 걱정
이라크와 이란 사이에 비밀거래가 있는게 아니냐는 의혹이 증가하고 있다. 이라크의 공군기들이 다국적군의 공습을 피해 이란으로 대거 들어가고,이란은 이를 받아주는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가 중립적 입장을 지켜온 이란의 태도변화 결과라면 걸프전쟁은 새 차원으로 바뀔게 분명하다. 미국의 시각과 이란의 이해관계 등을 살핀다.<편집자주>
미국 정부는 이라크 비행기들이 왜 이란으로 도피하고 있느냐에 대해 지금으로선 명쾌한 분석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이란이 유엔결의를 준수,중립을 지키겠다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난 26일부터 시작된 이라크 전투기의 이란으로의 도피는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고 있다.
처음엔 39대였던 것이 28일 오전까지는 80대 이상인 것으로 미 국방부가 확인했으며 영국의 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미 1백대 이상이 이란으로 피했다고 한다.
더욱이 도피한 전투기들은 대부분 이라크가 보유한 전투기중 미그29,미그25,미라주F1 등 최신예기들이며 수송기도 20여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수송기에는 전투기용 부품을 포함,주요인사들이 탑승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미국 정부는 이들 비행기들이 이란에 들어간 것이 계획된 피신이냐,아니면 탈출이냐에 대한 판단을 아직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유엔의 결의를 준수하겠으며 걸프전쟁에서 중립을 지킨다는 입장을 다시한번 확인하면서,도피한 이라크 공군기들을 몰수,전쟁이 끝날때까지 압류한다고 밝힌 바 있다.
말린 피츠워터 백악관 대변인은 29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이 문제를 놓고 스위스를 통해 이란측과 대화하고 있음을 밝히면서 『지금으로선 이란의 이러한 말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으며 그들의 말이 과연 신뢰할 수 있느냐에 대해선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를 이라크 조종사들의 탈출로 분석하는 측의 논리적 근거는 지난 17일 다국적군의 첫 공습피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이라크 공군 지휘관 2명이 처형당했다는 설과 잇따른 공습으로 이라크 공군의 사기가 저하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1백대 이상의 비행기가 조종사의 의지만으로 계속 탈출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이란­이라크 전쟁의 구원을 고려할때 그들이 피신처를 구태여 이란으로 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더 유력하다.
미국은 겉으로는 이란의 발표를 일단 믿어보자고 말하고 있으나 속으로는 이것이 탈출 아닌 계획적 도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노먼 슈워츠코프 사령관도 『피신했던 공군기들이 다시 전쟁에 투입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그럴 경우 우리는 이 비행기들을 공격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미 국방부는 『이란이 왜 이러한 도피를 허용하고 있으며,양국간에 어떤 사전협의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일부전문가들은 이란이 이라크와 비록 8년간의 전쟁을 치렀으나 걸프전에서 이라크의 일방적 패배가 이란에 결코 이롭지않다는 판단하에 이라크 비행기의 도피를 받아주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란은 이라크가 일방적으로 패배할 경우 중동지역에서 전후 처리를 미국과 연합국 마음대로 할 것을 우려하고 있으며,특히 이 지역에 미군이 장기간 주둔할 것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라크가 무력화될 경우 터키와 시리아가 이라크의 세력판도를 양분,중동의 세력균형이 파괴될 것을 우려한다는 것이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걸프전에서 중립입장을 표방해온 이란은 최근 자국영토로 속속 날아들고 있는 이라크 비행기의 처리문제와 국내 회교강경주의자들의 반미성전 촉구 움직임속에서 전쟁의 불똥을 회피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란은 지난 8년전쟁의 숙적 이라크의 비행기들을 받아 들임으로써 「뜨거운 감자」를 손에 쥔 셈이 됐다.
이란은 이들 비행기를 이라크에 그대로 반환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이란­이라크 밀약설」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미국등 서방각국의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으로 우려하는 듯 하다.
이는 또한 걸프사태의 어부지리로 영국과의 외교관계 재개,유럽경제공동체(EC)의 제재조치 종식 등 서방과의 외교·경제적 유대복구를 얻어낸 라프산자니 이란 대통령으로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다.
이란은 걸프전이 끝날때까지 이라크기들을 억류해달라는 리처드 체니 미 국방장관의 요청에 대해 이라크기를 이라크측에 넘겨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중립성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회교 시아파가 주요 세력인 이란은 이라크국민의 65%에 달하는 시아파 회교도들이 미국등 다국적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짐에 따라 반미성전을 촉구하는 국내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는 처지다.
현재 이란은 걸프전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공식적 입장을 견지하고는 있으나 그 의도와는 달리 점점 전쟁의 「불똥」이 자신에게로까지 번지는게 아니냐는 우려속에 무언가 대응책을 내세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로선 이란이 이번 전쟁에서 이라크와 손잡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만일 이스라엘이 대 이라크전에 참전할 경우 이란은 다른 회교 국가들과 함께 이스라엘에 맞서 싸울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이 개입할 경우 이란은 개전을 촉구하는 국내 회교강경파의 압력을 더이상 누를 수 없을 것이며 대외적으로도 전후 「이슬람 수호자」 및 「이슬람 맹주」로서의 등장을 노리고 이라크편에 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박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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