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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층 책임 제대로 묻자/한상진 서울대교수·사회학(논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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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잇단 비리 엄격한 법적용 따라야
어느 나라치고 범죄와 비리가 없는 나라는 없지만 사회지도층이 나태해져 비리의 온상에 빠져 있다는 증거가 나온다면 이것은 나라의 장래와 사회의 기강확립을 심각히 위협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 터진 국회의원 뇌물외유사건과 예체능계 대학입시부정 등 지식인사회의 비리는 몇가지 점에서 충격적이고 우려스러운 일이다.
첫째,의원들의 행태가 도덕성 면에서 너무 한심하다는 것이다. 여행경비와 자금을 자동차공업협회로부터 받았다는 사실도 문제지만 이것이 말썽이 되자 이를 해명하는 방식이 고루하기 짝이 없다.
요컨대 그들은 잘못된 관행을 고치기보다 그 관행을 이용하여 기득권을 누리고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는데 급급했던 것이다.
둘째,이번에 터진 일련의 대학비리는 대학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교수에 대한 사회적 존경과 신뢰를 허물어뜨림으로써 가뜩이나 불신풍조로 중병을 앓고 있는 우리사회의 정신적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지 않을까 염려된다.
그러나 입시부정과 교수채용등에 관한 비리는 언제 터져도 터져야 할 대학의 암적 요소임에 틀림없다. 황금 만능주의가 만들어낸 이런 범죄행위가 어느정도 대학에 일반화되어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으나,설령 국부적이라 하더라도 모든 대학과 교수들은 이번 기회에 대학으로부터 비리를 추방하기 위해 단호한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셋째,뇌물외유같은 권력층의 비리는 사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공개될 수 없는 부정의 타성과 관행들이 권력을 행사하는 많은 조직들의 오래된 체질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뇌물외유사건만 하더라도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의원세명만이 관련되었다고 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같은 협회로부터 같은 명목의 자금지원을 받은 의원만도 20여명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검찰이 다른 로비단체에 의한 유사한 비리에도 수사를 공정하게 확대한다면 몇명의 의원이 살아남을 것인지,또 정부고위인사들도 과연 안전할지에 대해 강한 의문이 제기될 만큼 부정과 비리의 고리들은 권력의 핵심부에 넓게 구조화되어 있다.
탈법적 방식으로 검은 돈을 긁어모으는 기회가 제도화되어 있을뿐 아니라 유관단체 또는 개인으로부터 경비지원·보조·사례·알선·촌지·헌금 등 다양한 형태로 뇌물을 받는 관행이 정착되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사회의 치명적인 약점이자 발전의 딜레마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정의를 위해서는 부정부패의 척결이 요구되나 문제를 잘못 건드리면 제도권 전체가 공멸하고 사회조직들이 와해될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 약점은 지난 5공비리 청문회때 이미 극명하게 드러난 바 있다.
당시 일해재단등을 둘러싼 정치자금 스캔들이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했으나,5공 핵심인사들은 정치자금에 관한 진실을 모두 공개할 경우 제도권전체가 궤멸될 것이라는 협박을 가했고 결국 부정부패의 진상규명은 어정쩡한 정치적 타협으로 종결되고 말았다.
이번 사건에서도 제도권과 검찰은 유사한 방식의 사태수습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제도권은 다같이 상처를 받기보다 적당히 타협하려 할 것이고 세명의 희생양으로 사태를 종결하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면서 검찰은 수사의 방향과 초점을 대학이나 다른 사회조직의 비리에로 돌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식의 대응이 반복되면서 우리사회의 도덕적 기강이 더욱 문란해 졌음을 우리는 똑바로 직시할 필요가 있다. 정치인에 대한 불신,검찰수사의 배후에 관한 의혹이 갈수록 커졌고 급기야 전면적인 물갈이론이 세를 얻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여론은 검찰수사의 공정성과 성역없는 수사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국회의원들뿐 아니라 권력층의 비리를 도려냄으로써 실추된 도덕성회복의 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국가의 마지막 기강은 사법정의에 달려있으며 사법정의의 핵심은 법의 공평한 집행에 있다. 뇌물외유가 불법으로 구속사유가 된다면 걸린 사람만 재수가 없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여야를 초월하여 모든 관련자를 공정하고 철저하게 수사하여 진실을 모두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사건의 정치적 의도가 또 의심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지도층의 비리가 뇌물외유에만 국한될 수 없다는 것,일반범죄에 못지않게 권력층의 비리도 다양하다는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차제에 국회의원이건,장·차관이건,고위관료건,기업인이건,교수건 간에 사회지도층의 비리를 고발하는 창구를 개설,활성화시켜 검찰이 힘없는 민중에게만 추상같은 법집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류층의 비리에 대해서도 정의의 칼을 매섭게 휘두른다는 것을 보여 주기를 요구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회복될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이제 어느정도 근대화가 된만큼 이제는 공개성의 원칙에 특별히 관심을 가질 때가 되었다고 본다.
아무리 관행이라 하더라도 공개되었을때 합리적으로 변호할 수 없는 떳떳지 못한 행동을 지도층인사들이 생활의 신조로 금하는 새로운 윤리의 실천이 요구된다.
또한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회를 만들려면 구조화된 비리를 감시 극복하면서 새로운 가치관을 실천하는 사회 세력이 성장해야만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과도기적 혼란이 심하지만 그럼에도 이점에서 미래가 있다고 본다. 원칙없는 타협을 거부하면서 민중적 감수성으로 변화를 요구하는 근대적 집단이 밑으로부터 계속 성장하여 사회조직으로 파고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지식인의 도덕적 재무장이 시급하다. 지식인들이 배금주의등 저질 상품화의 논리에 함락당하지 않고 인간을 참된 인격주체로 존중하면서 부정과 비리에 대항하여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데 힘을 모아야만 사회의 도덕적 기강을 바로 세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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