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전 불똥 중소무역업계"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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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걸프전쟁이 터지자 중동지역을 무대로 뛰던 중소 무역업체들에 초비상이 걸렸다.
수출거래상담이 뚝 끊겼다. 몇 달에 걸친 노력 끝에 신용장까지 받았는데, 선적도 못하고 물거품이 됐다.
이라크·쿠웨이트는 물론 주변 중동국가들에 대한 외환매입이 각 은행에서 사실상 중단돼 자금압박은 날로 심해가고 있다.
『인슈알라.』
「신(알라)의 뜻대로」란 의미의 아랍어다.
중동지역에 연간 1백만 달러 정도의 자동차부품을 수출하고있는 중소무역업체 맥산교역의 모윤종 사장(38)은 끝내 터지고만 걸프전쟁이후 하루에도 몇 번씩 이 말을 되뇐다.
걸프전쟁발발이후 모든 수출업체에 비상이 걸린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도 덩치가 큰 종합상사는 중동의존도가 낮은데다 다른 지역으로 시장다변화를 꾀할수도 있어 중소기업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숨돌릴 여유가 있는 편이다.
그러나 사장을 포함, 10명도 채 안 되는 직원들이 숨가쁘게 뛰어야하는 많은 중소업체들은 걸프전쟁의 전개양상에 회사의 존립을 걸어야 할 판이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지 두 달쯤 뒤인 지난해10월 무역진흥공사가 주관한 중동지역 시장개척단으로 나가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 쪽으로 거래를 많이 텄는데 전쟁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맥산은 당장 오는2월말까지 중동지역에 8만 달러 어치의 자동차부품을 선적해야 한다. 그런데 전쟁이 한 달 이상 끌 경우 상당한 타격을 보게된다.『그래도 우린 동남아 쪽 시장이 연간 2백만 달러 이상으로 중동지역보다 커 형편이 나은 편입니다.』
중동 쪽에 폴리에스터섬유를 주로 수출하는 한진·서은실업 등도 걸프전쟁발발이후 상당히 고전하고 있는 무역업체들이다.
중동지역에 대한 한국의 주된 수출상품은 섬유(폴리에스터·원사·스웨터)·타이어·가전제품·자동차부품·식료품 등. 상공부는 22일 현재 한일합섬·삼성물산 등 11개 대기업과 18개 중소업체 등 29개 대 중동 수출업체의 수출차질 액은 5억 달러 선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했다.
무역진홍공사는 전쟁이 1개월 안에 끝나고 그 후유증으로 인한 실질적인 거래행위 중단이 6개월 정도 간다고 볼 때 올 대 중동수출은 잘해야 20억 달러정도일 것으로 보고 있다. 작년의 24억 달러보다 4억달러정도가 줄어든다.
또 걸프전쟁이 나지 않고 평화적으로 해결됐을 경우 예상했던 올 전망치 27억 달러와 비교하면 7억달러나 줄어들리란 예상이다.
전쟁발발 후 대 중동수출 차질은 무역진흥공사의 현지보고로도 입증되고 있다.
이란 테헤란 무역 관의 경우 이곳을 찾는 바이어가 전쟁 전 하루 20∼30명 선에서 전쟁발발 후에는 그 10분의1인 2∼3명으로 줄어들었다. 수임관련업무는 거의 중단상태며 일본상사들은 거의 철수한 상태라는 것이다.
국내 종합무역상사들도 전쟁발발 후 비상대책본부를 통해 걸프정세에 일일점검체제로 들어갔으나 선적·네고 중단 등으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상사 주재원들을 대부분 요르단·이집트 등 주변국가에 배치, 일본이 떠난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여지와 전후복구사업참여, 수출만회가능성 등을 탐색하고 있다.
수출업체들은 지금의 전쟁이단기전으로 끝날 경우 큰 우려를 하지 않고 있다.
중동사람들은 처음만나 상담할 때 쉽사리 믿지않는(가격을 깎으려드는 등 의심이 많은)편이지만, 일단 거래를 트고 신뢰가 쌓이면 신의가 두터워 이제까지의 신뢰로 수출을 계속 이어가기는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이는 현대 등 국내 건설업체들이 이란-이라크간의 긴 전쟁 속에서도 계속현장을 지켜준 결과 전후복구사업에 쉽게 뛰어들 수 있었던 데에서도 입증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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