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정서의 대표성 등 고려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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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문화부가「우리 소리 찾기」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전통음악 중 당악 풍의 기본음을 황종(국악기본음의 이름)259Hz로 정한데 대해 음악관계자들의 논란이 분분하다. 전통음악의 기본음설정에 관한 한명희 교수의 소견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한국음악의 표준음 설정작업의 행보가 빨라지는가 하면 이에 대한 이론도 분분하다.
옛날 그리스에 아울로스(고대그리스의 관악기)를 잘 부는 여인이 있었다. 음악에 흘린 남자들이 수시로 그녀의 집을 월담해 들어갔다. 피타고라스가 그녀에게 지시해 반 음정을 낮춰 불게 하니 그때부터 무뢰한들의 등쌀이 없어졌다. 비록 반음의 높낮이일망정 음정의 높이가 인간심성에 얼마나 막중하게 기능하는가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예 화라고 하겠다.
뿐만 아니다. 『조선조실록』에 보이듯이 세종대왕은 정확한 황종관(황종관)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토록 고심했다.
막판에는 대나무가 아닌 동으로 모든 음의 조종인 황종율관을 만드는 실험적인 시도까지 했다. 왜 그랬을까. 물론 음악적인 효용이나 경제적인 이유도 컸을 것이다. 여기서 경제적인 측면이란 곧 황종의 음높이가 도량형의 원천인 황종척(황종척)이 되기 때문이다. 범상한 듯한 하나의 음높이가 백성들의 생활을 좌지우지할 도량형의 기준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정확한 기준 음을 설정한다는 것은 기실 여간 막중하고도 의미심장한일이 아니다. 정확한 표준음에 연연했던 것은 비단실용적인 효능에서만이 아니었다. 관념적이며 상징적인 의미가 보다 강렬했다. 황종, 즉 중심 음의 위상이 있어야할 좌표에서 일탈된다는 것은 곧 예악의 붕괴는 물론 정치적 난세이며 우주적 카오스를 뜻한다. 황종은 곧 우주질서의 축이자 조화의 원천인 상징적「우주목(우주목)」인 셈이다.
우주목의 말뚝이 잘못 박혔기 때문에 풍속이 황음 해지고 끝내는 왕권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역대 왕조가 바뀔 때마다 기본음 재 설정에 신경을 썼던 더 큰 이유는 바로 이 같은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굳이 고전적인 실례들만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
음향학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표준음의 설정은 곧 음고(pitch)의 확정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고 하겠다.
음색의 문제, 강약의 문제 등 개체 음 자체가 이미 본유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제반문제들이 동시에 해결돼야한다고 본다. 문제는 또 있다. 일상언어의 음 고가 높은 이탈리아에는 테너가 많고 음 고가 낮은 북구에는 바리톤이 많다.
우리네 일상언어의 평균음고도 역시 국민적 표준음의 설정자리에서라면 의당 참작돼야 한다. 음항 심리 학·생리학·사회학 등에서 거론될만한 여러 가지 중요한 점들도 총체적으로 배려되고 전제돼야 함도 물론이다.
결국 표준음의 설정문제는 음악가들의 실용적 효용성도 배제될 수 없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표준음이 함축하게될 철학적 상징성과 정서적 대표성의문제라고 하겠다.<서울시립대교수·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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