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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괴담' 당신의 낙태 병력,인터넷에 뜬단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인터넷 조회 창에 주민등록번호만 넣으면 병원에서 진찰 받은 기록이 다 뜬대요. 원치 않은 임신 때문에 남몰래 낙태 수술 하신 분은 어서 거부 신청하세요."

요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병원 괴담'이 떠돌고 있다. 의료비 소득공제 간소화 명목으로 국세청에 제출된 환자 진료기록을 누구나 인터넷에서 열람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보건 당국은 올해부터 근로자들이 연말정산 서류를 쉽게 준비할 수 있도록 일선 의료기관에 개인별 의료비 지출 명세를 제출토록했다. 일선 의료기관은 오늘(6일)까지 건강보험공단에 관련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괴담의 진원지는 포털 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게시판에 올려진 글이다. 자신을 산부인과 의사라 밝힌 '린'이라는 닉네임의 네티즌은 "국세청이나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연말정산을 간소화 하기 위해 환자 내원 기록을 모두 보내라고 한다"며 "저는 제 소중한 환자들의 기록을 넘길 수가 없다"는 글을 남겼다. 이 네티즌은 "자신들의 의료기관 방문 기록이 국세청에서 공개되길 원하지 않으면 직접 신고해야 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라고 물으면서 "전국민의 의료기관 내원기록이 전산으로 관리된다는 것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썼다.

이와 같은 글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확실하지 않은 글들이 덧붙여졌다. 덧붙여진 글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주민등록번호 치면 본인확인절차 거치지 않고 누구나 다 진료내역 알 수 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배우자 될 사람 주민등록번호 쳐보면 임신중절수술 몇 번 했는지 알 수 있겠네요", "12월 8일까지 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에 거부 신청하지 않으면 인터넷에 공개된대요. 많은 사람들에게 퍼뜨려주세요"라는 등의 내용이다.

'병원 괴담'을 접한 네티즌들은 "주민등록번호만 알면 병원 진료기록을 모두 알 수 있다니 이것은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반발하고 있다. 한 네티즌(ID 오키로만가져가)은 "정말 대한민국은 살기 힘든 나라네요"라며 "성범죄자들 공개도 인권침해라고 반대하고 있는 가운데 왜 이런 것은 그냥 넘어가고있는지 정말 화가 난다"는 리플을 남겼다. 또 다른 네티즌(ID 담임샘이야)도 "나 이제 무슨 병 걸려도 병원 안 갈 거예요"라는 글을 남겼다.

하지만 많은 네티즌이 우려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국세청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설명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의료비 지출 정보를 알기 위해서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뿐 아니라 공인인증 과정도 필요해 인터넷뱅킹 이상의 보안체계를 갖추고 있다"며 "공인인증과 아이디, 패스워드를 통해 로그인한 자신만이 정보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자료 제출 항목에 병명이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에 관계 기관 역시 병명은 알 수 없으며 병원에서 지출한 의료비만 표시된다"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도"의료비 부담 내역서에는 총 금액만 표시되고 세부 항목을 조회해도 병원 이름 중 앞 두 글자만 표시된다"며 "신용카드 사용금액이나 현금영수증 사용 금액이 국세청에 전달되는 것처럼 의료비를 공제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근로자 자신이 본인의 의료비 내역과 관련된 자료 제출을 원하지 않는 경우 국민건강보험공단을 통해 거부할 수 있다. 거부 등록은 국민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를 통해 12월 8일까지, 공단지사에 방문 또는 우편.FAX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12월 7일까지 신청해야 한다. 제출거부 등록시 의료비에 대한 연말정산 간소화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결국 '병원 괴담'소동은 미확인된 정보가 인터넷에 퍼지면서 일어난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네티즌 일부는'병원 괴담'이 의료비 지출 명세 제출을 꺼리는 의료기관 관계자의 의도적인 반대 여론 만들기가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풀지 않고 있다. 이들은 "환자의 정보를 보호하겠다는 얘기는 의사들의 소득을 숨기기 위한 군색한 핑계일 뿐"이라며 "개인 정보가 유출됐을 때에는 국세청과 관계 기관이 책임을 질 것이니 일단은 솔직히 자료를 제출하라"고 의견을 모으고 있다.

김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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